한국희곡

김수미 '고래가 산다'

clint 2023. 3. 9. 09:13

 

 

고된 일상의 쉼터인 한강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들은 거대한 도시의 감춰진 욕망에 꿈을 빼앗겼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치유할 없는 상처를 입었다. 교감할 없고 소통하지 못한 파편화된 그들의 일상은 한강에 갇혀 질식해가는 고래를 닮았다. 스스로의 삶에 이방인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찾아온 한강에서 고래 소리가 들린다. 한강에 갇힌 고래가 우리들에게 한강은 희망일까, 절망일까?

 

 

서울 한강에 고래가 산다면? 물론 고래는 살지 않는다. 그럼 왜 극작가 김수미는 '고래가 산다'는 제목을 붙였을까. 고래라도 나타나기를 바라는, 그래서 다시 희망을 가져 보려는 벼랑 끝 도시인의 사무친 소리를 들려주려는 것 아닐까.

‘고래가 산다’는 삶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도시인들의 자화상을 이야기한다. 휴식과 치유의 공간으로 연상되는 한강공원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죽어가는 공간으로 바라본다.

 

 

고된 일상의 쉼터인 한강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극을 이끈다. 꿈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다. 소통과 교감의 끈을 잃은 채 파편화된 사람과 일상을 한강에 갇혀 질식해가는 고래에 비유한다

한강은 대한민국의 역사이자 우리 삶의 한가운데를 유유히 흐르는 젖줄 한강. 각종 문화행사가 열리는 일상의 쉼터지만 또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꿈과 희망, 아픔과 슬픔이 공존하는 이곳 한강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전거 타는 남자, 노숙자, 작업 중인 인부, 구두남, 수질검사원, 매점녀, 기획자, 여행자, 기혼자, 발목을 다친 발레리나 등 삶의 막다른 길에 내몰린 상처 입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자화상을 조명하고 민낯으로 드러난 그들의 상처와 그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았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한강으로 모여들고 한쪽에선 시민들을 위한 음악회 준비가 한창이다. 기획자는 이것저것 작업 지시를 내리고 무척 분주해 보인다. 누군가 공연에 대해 문의하자 귀찮은 듯 얼버무리고 그 태도에 화가 시민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음악회냐고 항변한다. 기획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작업자2는 하던 일을 내팽개친 채 휴식을 취하고 작업자1은 같이 쉬자는 말에도 묵묵히 하던 일을 계속한다. 그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금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두 사람 대화를 들어보면 누굴 탓할 필요가 없다. 현실이 그러니까뭔 놈의 음악회냐며 툴툴대는 수질검사원의 손에 생수통이 들려있다. 한강의 수질 검사하는 그조차도 수돗물을 믿지 못하고 생수를 마시는데 이는 아이러니일까현실이 그러하니까. 여중생이던 딸이 성폭행 당한 후 생을 마감한 한강에서 삶의 끈을 놓고 싶던 남자는 벤치에 구두를 두고 떠난다. 한쪽 구석에 찌그러진 듯 누워있던 노숙자는 구두를 가져가려는 어떤 남자에게 폭행을 당한다. 경찰에 신고하라는 사람들의 말에 매점녀는 신고해도 소용없다고 말한다. 그가 술 마시고 행패 부리는 일이 다반사여서 신고해도 오질 않는다고 한다. 잘 나가는 피아니스트였지만 한계에 부딪혀 여러 나라를 다녔다는 자칭 여행가인 여자가 그의 곁에 다가가 무슨 얘기든 들어줄 테니 얘기해보라며 말을 건넨다.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는 이는 전직 법대 교수로 자신이 한때 신봉하던 법에 실망해 거리를 전전하고 있다. 그는 여자에게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진정한 용기가 생긴다 충고하고 정의의 가치와 도덕적 실현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이 밖에도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아픔과 상처가 밝혀지고 모두 폐부를 찌르는 날 선 질문들이지만 압축되고 집중됐다기 보다는 조금은 산만한 느낌도 있었다
자신이 진짜 말하고 싶은 속내를 털어놓을 땐 선이 끊어진 공중전화를 이용하는데 그때 사람들은 하던 동작을 멈추고 주시하지만 주시만 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무관심이다군중 속의 고독처럼 애처롭고 쓸쓸한 모습이다바다가 아닌 한강에 갇혀 질식해가는 고래는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이다. 고래가 한없이 넓은 바다를 힘차게 유영하고 우리의 아픔과 상처도 치유되길 소망한다.


극작가 김수미는 한강을 도시의 소외자들, 상처받은 사람들, 벽에 갇혀 질식할 것 같은 사람들의 피안으로 설정한 것 같았다. 현대인들의 소통부재와 피폐된 삶을 연금술사처럼 단어와 문장으로 뽑아내는 김수미의 희곡은 대사연극의 특성이 강하다고 본다.
스스로의 삶에 이방인이 되어 버린 현대인들이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기 위해서 한강을 찾지만

한강에서 고래가 살 수 없듯이 결국 해답을 찾지 못한 채 한강에 갇힌 고래처럼 피폐해져 간다는 메시지를 담으며, “고래가 나타났다!”란 외침이 포근하고 희망찬 메시지를 같이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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