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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홉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clint 2023. 1. 17. 17:50

 

얄타에서 ‘개를 데리고 다니는’ 멋진 여인을 유혹하여 목적을 달성한 그가 교외의 벤치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며 자연의 영원한 무심함과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명상에 잠기는 모습을 보라.

자신이 얼마나 매혹적인 여자와 만났는지 자랑하고 싶지만 아무도 들어줄 사람이 없어

상심하고 심지어 분노하는 구로프의 모습을 보라.

그에게 안나와의 예기치 않은 사랑은 ‘무료하고 시시한 날들’,

더 나아가 무의미한 인생의 구원처럼 여겨진다.

얄타에서 헤어진 안나를 다시 찾아가는 이유다.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이 한번 끊어졌던 인연을 다시 이어나간다.

안나는 남편을 속이고 지방에서 모스크바로 와서는 호텔방을 잡아놓고 구로프를 부르고,

구로프는 안나에게 가는 길에 딸을 학교까지 바래다준다. 그들의 이중생활이다.

남들 앞에 내놓고 사는 공적인 삶과 그들만의 비밀스런 삶이 공존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안나는 그들의 밀애가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는 없으리란 두려움과

남들의 눈을 피해야 한다는 처량함에 울음을 터뜨린다.

구로프는 안나를 어루만지며 달래다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어느새 머리가 세기 시작한데다 늙고 추해진 모습이다.

안나의 인생도 곧 시들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난생 처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다니!


이들의 이야기가 어떤 결말에 도달하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체호프가 즐겨 다루는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이다.

정확하게는 ‘어려운 가능성’이다.

분명 새로운 인생은 아름다울 테지만, 우리는 대개 그 새로운 인생의 문턱에서 주저앉는다.

그게 체호프가 바라본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