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나라(Un Sitio Aleatorio)'에 사는 보통 남자(Tipo Corriente)'에게 일어난 이야기다. 경제소설이자 철학 소설이며 사회풍자 소설이다. 짧은 분량에 부담 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작가의 의도를 곰곰이 되짚어가며 깊이 생각해보면 허무맹랑한 이야기 속에 현대 자본주의 사회체제에 대한 비판, 그리고 풍자 요소가 굉장히 많이 담겨있다. 또한 기발한 상상력은 마치 상상력 마술사이자 베스트셀러작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를 보는듯 하다.
책에서 나오는 주인공 보통 남자(TC)는 자신의 살 집 한 칸(18평)을 마련하기 위해 35년이라는 자신의 인생을 빚져서 마련했다. 소설 속 이야기이지만 작가가 어떤 나라의 보통 남자(TC)를 주인공으로 삼은 것은 주인공 보통 남자(TC)가 바로 우리의 모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주택 대출이라는 커다란 융자를 받아 18평 남짓 되는 조그만한 네모박스 건물에 옹기종기 모여 살면서 매달 상환해야 하는 이자 걱정에 하루하루 빠듯하게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마저도 내 집이 아닌 전세나 월세라면 집주인의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게 되고, 해마다 바뀌는 경제 수장들의 경제 정책 변화와 국회 의원들의 패권 다툼 속에서 ‘한국은행이 기준 금리를 올릴 것이냐? 말 것이냐?’가 나의 생계를 위협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렇게 수년을 고생해서 대출금을 다 갚고 나면 남는 것은 바로 ‘아파트’라는 이름의 네모난 상자 속에 한 공간을 얻는 것에 불과하다. '슬프지 않은가? 어떻게 평생을 몸 바쳐 일해서 얻는 결과가 고작 18평 남짓되는 조그만 집 한 칸뿐이란 말인가?'
책에서 등장하는 '어떤 나라'는 특정 나라를 지칭하진 않았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평범한 한 나라의 표상을 나타냈을 것이며, 아마도 작가 본인의 국적인 스페인을 가장 흡사하게 묘사했을지 모른다. 스페인이란 나라는 GDP 규모(13위, 대한민국 15위), 인구수(28위, 대한민국 25위) 등 많은 면에서 우리나라와 사회적인 상황들이 유사하다. 그렇기에 책 속의 현실은 바로 우리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왜 우리는 돈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노예가 될 수밖에 없을까?' '그 결과로 왜 우리는 소중한 내 인생을 내 소유로 만들지 못할까?' 많은 철학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책에서의 결말은 해피엔딩이였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 일상을 이런 암울한 관점에서 본다면 한없이 슬프기만 하다. '우리가 돈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내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지금 이 시간을 소중히 활용하자' 이것이 결국 작가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좋아하는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체홉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1) | 2023.01.17 |
---|---|
와타나베 준이치 '실락원' (0) | 2023.01.16 |
김호연 '불편한 편의점' (1) | 2023.01.14 |
기욤 뮈소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0) | 2023.01.13 |
안나 가발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1) | 2023.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