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에서 맘에 든 것은 소재가 ‘광고’라는 점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꿈이 자주 바뀌어 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광고계’라는 곳이 참 매력적이게 보인다는 이유로 ‘광고인’을 꿈꾸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99%>는 참 흥미 있는 이야기로 다가왔다. 학교에서 늘 전교 1등을 하고, 회사에서도 재주꾼, 아이디어 뱅크라고 인정받던 최대리.
어느 날 스티브 킴이라는 강적이 나타난다.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미국에서 건너온 말재주도 뛰어나고 세련된 실력파였다. 회의에서 빛나는 아이디어로 광고를 뚝딱 만들어내고, 경쟁 PT에서도 밀리는 법 없이 맡은 광고를 따내는 그는 누구나 인정하는 인재로 추앙받게 된다. 이쯤 되면 슬슬 올라오는 게 있다. 바로 ‘질투’다. 우리는 아무나 질투하지 않는다. 누군가 나보다 뛰어나지만, 그 상대가 만약 교수님이거나, 뭔가 범접할 수 없다면 그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심리는 ‘질투’가 아닌 ‘동경’으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상대와 나의 미묘한 간극은 ‘질투’가 된다. 바로 최 대리의 경우가 그렇다. 분명 만년설에서 컵라면을 먹자는 광고나, 융프라우와 이글루 등에서 컵라면을 먹자는 광고나 엇비슷한 것 같은데, 스티브 킴의 ‘세계인이 즐기는’이라는 컨셉을 가미하니 모두를 사로잡을 만큼 강력해진다. 그 간극이 ‘나’로 하여금 스티브 킴을 고등학교 시절 동창이었던 ‘김태만’이라고 몰아붙이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선’의 경우는 다르다. 그녀는 스티브 킴을 ‘동경’한다. 그녀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내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내의 여직원들도 그를 ‘동경’한다. 하지만 ‘질투’만으로 ‘나’의 끊임없는 퍼즐 맞추기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사실 ‘미선’과 같이 ‘동경’하는 자들이 보는 시선이자 시각이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티비 속 연예인들을 보고 ‘저 연예인 코했네’라고 할 때마다 옆에서 남자들은 ‘열폭(열등감 폭팔) 하지 마’라고 한다. 열등감 때문에 더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고 빈정거리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열폭’이라고 보기엔 의심을 하는 근거가 꽤 타당해 보인다. 여러 근거들이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그가 베니스를 못알아 들은 것, 초등학교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그의 본명인 김현빈이 옛날 김태만이 쓰던 펜팔용 이름과 같다는 것, 짝짝이 발을 가졌다는 것 등)
만약, 스티브 킴이 ‘김태만’이라고 가정한다면, 현재 사내에서의 상황은 고등학교 시절과는 정반대다. ‘나’가 G시에서는 교장의 총애를 받았으며 1등을 독차지 한 ‘질투의 대상’이고, ‘김태만’은 그로인해 자신의 1위를 빼앗긴 입장이기 때문이다. ‘영역을 침범당한 수컷의 적의와 자신의 것이 아닌 찬사에 대한 질투’는 김태만의 것이었다. 따라서 그가 만일 진짜 스티브 킴이 되었다면, 칼날을 갈고 옛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적에 대한 복수를 하러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나로서는 그게 맞는다면 이 소설은 3류 소설로 전락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건 말 그대로 ‘뻔’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점은 ‘복수’에 맞춰져있지 않다. 그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끊임없이 의심하고 추측하는 ‘나’의 내면에 맞추어져 있단 사실이 이 소설에 맛을 더한다. 마지막에 사우나에서 그의 거웃 밑에 새겨진 닻을 확인하려는 ‘나’의 모습으로 소설은 끝난다. 아마 그곳에 닻이 있든 없든 나는 ‘씁쓸’했을 것이다. 초콜릿에 카카오 함량이 ‘99%’인 것은 ‘달콤함’이 아닌 ‘씁쓸함’이었다.
제목 ‘99%’는 ‘1%’에 대한 ‘동경’ 혹은 ‘질투’를 의미하기도 하며, 내면의 난쟁이들이 속삭이는 끊임없는 의심과 추측에 사로잡혀 결국 ‘99%’에 달했을 때의 ‘씁쓸함’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 같다.

김경욱
1971년 광주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1993년 중편 '아웃사이더'로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면 등단했다. 소설집 '위험한 독서', '장국영이 죽었다고?',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 '베티를 만나러 가다', '바그다드 카페에는 커피가 없다', '천년의 왕국', '황금사과', '모리슨 호텔', '아크로폴리스', '동화처럼', '주머니 속의 송곳(리틀빅혼 연대기)'(공저) 등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종합예술학교 협동과정 서사창작과 전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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