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강경은 '내 영역에서'

clint 2015. 11. 9. 15:31

 

 

 

 

 

 

‘내영’(來迎)이라는 이름의 지하철 역. 내영 역을 찾은 70대의 한 여인. 그러나 매표소엔 아무도 없다.
무임 표를 구하지 못해 머뭇대는 찰나, 오래전 사별한 남편이 그녀 앞에 나타난다. 그는 그녀에게 갈 길을 재촉하지만 그녀는 고집대로 역무원을 기다린다. 기다리는 동안, 그녀의 곁에 머무는 남편. 생전 그리 살갑게 지내지 못했던 부부는 오고 가는 핀잔과 농담 속에 못다 한 이야기를 하나 둘씩 풀어간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설 때까지 그들의 대화는 계속된다. 자식 먹일 거라고 음식을 만들어 바리바리 싸들고 길을 나섰으나
그 자식들은 노모의 걸음따윈 그닥 신경도 쓰지않아 누구도 함께 하지않는다. 그저 외사랑 마냥 무거운 짐도 마다않고 노모 혼자 자식을 찾는 것이다. 그렇게 자식 집을 가기 위해 길을 나선 '내영 역'이란 어느 지하철역. 그곳에 갑자기 나타난 그녀의 남편. 처음에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아는 사이? 했다가 그것과는 뭔가 또다른 느낌에 남편임을 짐작하게 되는데 곧 둘의 대화를 통해 부부임을 알수있다.

 

 


교통카드를 이용하면서 매표소에 역무원이 사라진지도 이젠 꽤 오래되었다. 대신 자동발매기만이 늘어서있는 것이 어느새 자연스런 모습으로 바뀌었다. 무임승차권을 받기위해 아무리 기다려도 역무원이 나타나지 않는 매표소를 두드리며, 저들 편하기 위해서만 만들고 노인은 푸대접 한다며 원망의 하소연을 한다. 발매기도 역사마다 다른 기종이라 본인조차 간혹 당혹스러울 때가 있는데 노인의 불편함이나 서러움은 말해 뭣하겠는가? 그 모습에 남편은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초조한 듯 역무원 기다리지 말고 한장 사던가 아님 어차피 돈 안내고 타는 거 그냥이라도 어여 들어가길 재촉한다. 젊었을 때 그리도 속을 뒤집고 결국 다른 여인네 집에서 죽음을 맞기까지 하며, 죽는 날까지 웬수 같은 남편이더니 갑자기 나타나 옛날 일 꺼내 다시 한 번 복장을 뒤집고, 갈 길을 재촉하며 자꾸 잔소리에 귀찮기도 하지만 그래도 옆에 있는 게 아주 싫지는 않은 듯하다. 어쩐 일인지 생전에 하지도 않던 '보고 싶었어...'하는 남편의 말도 듣고, 장난 끼 섞인 핀잔과 농담에 발끈해 옥신각신 하다가 깔깔~ 웃기도 하면서 모처럼 남편과의 곰살 맞은 시간을 보내며 그동안의 맺힘은 자연스레 풀어진다. 죽음이 정말 그토록 두려운 일 일지는 잘 모른다.

 

 


우린 매순간 조금씩 죽어가는 것이라고도 한다. 삶과 죽음은 별개가 아닌 늘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에 늘 깨어있고 인지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그닥 많지 않다. 그래서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명백한 사실은 부정하지 않으나, 제대로 된 죽음을 준비하여 맞이하는 경우가 드물다. 게다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을 혼자 맞이한다는 것에 그저 더 두렵고 무서울 뿐이다, 이런 갑작스레 닥친 두려운 상황에 안심시켜줄 동행인이 함께 한다면? '무서워. 영감도 있었고, 자식새끼, 손주 새끼 다 있었어도 나는, 사는 것이 무섭고 외로웠어..' '근데 죽는 것도 나 혼자서 해야 되는 거잖어.' 모두 있었어도 무섭고 외로웠는데 죽는 것은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니 더 무섭다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아내의 손을 꼬옥 잡아주면서 안심시키는 남편. 천하의 한량 차만식! 철천지 웬수!  남편의 빈소에서 '꼭 마중 나와요. 죽을 때만큼은 쓸쓸하기 싫어요.' 라고 했던 아내의 그 얘기를 들어주기 위해 마중 나와 외롭지 않도록 옆에서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가슴 뭉클하고 따스한 마지막을 보여 준다.

 

 

 

 

작가의 변
죽음은 누구나 혼자서 맞이해야 하는 고독한 여정(旅程)이다. 그러나 그 여정에, 누군가 동행해 준다면 조금은 덜 쓸쓸하지 않을까. 한 인생의 쓸쓸하지 않은 마지막을 그리고 싶었다. 허무와 회한이 남지 않는, 온기(溫氣)가 있는 그런 마지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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