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유진 '시대의 영웅'

clint 2015. 11. 9. 15:26

 

 

 

자신의 평범한 삶에 진절머리를 느껴 자살을 결심한 재열(P) 재열은 자신의 마지막을 장식할 인상 깊은 자살방법을 찾아다닌다. 투신, 분신, 장기기증 등 고민하던 재열은 우연히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뉴스를 듣게 된다. 지하철 선로에 떨어져 죽은 사람을 구하고 대신 죽은 한 남자. 사람들은 모두 그를 시대의 영웅이라며 칭송했다. 이에 재열은 자신도 '시대의 영웅'이 되어 죽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좀처럼 지하철에 떨어지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고, 기다림 끝에 재열은 조금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어차피 내가 빨리 구해주면 될 테니까' 재열은 어린 소녀를 살짝 밀어 떨어뜨린 후 바로 자신이 구해주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선로 앞에 선 0.5초, 재열은 망설이게 되고 결국 소녀는 죽게 된다.
패닉에 빠진 재열은 소녀의 죽음을 정당화하려 애쓰고. 이후 평범하고 지루했던 재열은 일상에 변화가 온다. 아무도 모르는 거대한 비밀을 간직한 특별한 인간처럼 느껴지는 것. P는 자신을 무시하던 사람에게 대들거나 불의를 보고 맹렬히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점점 위태해져가는 재열. 그러면서도 소녀에 대한 악몽에 시달리던 재열은 결국 자살계획을 완료시키기로 마음먹는다. 역사에 여대생을 밀어 떨어뜨린 재열은 역무원에게 걸리게 되고 회사 옥상으로 도망친다. 회사 아래에는 경찰들과 재열을 내려오게 하려는 동료들이 몰려들었다. 옥상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던 재열은 이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을 위해 자신을 우러러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대로 투신한다. 재열이 죽은 후 그날 밤 라디오에는 여자들을 골라 지하철 선로로 떨어뜨려 죽이려 하던 한 연쇄살인범이 범행을 들켜 투신자살했다는 뉴스가 방송된다. 그 뉴스에는 결코 재열이 기대하던 칭송이나 시대의 영웅 같은 칭호는 없었다.

 

 

 

 

수상소감
이대로 사라져버리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죽이고 싶다는 감정과 죽고 싶다는 감정. 인간의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탐구해보고 싶었습니다. 자신이 교실의 액자나 분필 한 조각 같은, 사라져도 금새 알아채지 못할 작은 존재라는 생각이 든 적이 없나요. 주인공 재열이 느끼는 박탈감과 권태, 그리고 이어지는 죽음에 대한 감정들은 우리에게 결코 생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한낱 엑스트라일 뿐인 이 공간에서 세상의 모든 소리는 낯설고 시끄러운 소음일 뿐입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이 이야기를 성신극회에서 쌓은 음향, 연출 등의 연극적 경험을 바탕으로 음향적 특징이 많은 희곡을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습니다. 늘 쓰던 시, 소설이 아닌 희곡이라는 장르에 처음 도전했는데 이렇게 당선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감사합니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은성 '목란언니'  (1) 2015.11.09
강경은 '내 영역에서'  (1) 2015.11.09
이윤설 '불가사의 숍'  (1) 2015.11.09
원춘규 '열두번째 내일'  (1) 2015.11.09
조수빈 '앨리스는 이제 여기 살지 않는다'  (2) 2015.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