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비우스의 띠'란 긴 띠 모양의 종이의 한쪽 끝을 180도 뒤집어 다른 한쪽 끝에 붙인 특수한 도형이다. 그 표면을 손가락으로 훑어가다보면 앞면에서 뒷면으로, 다시 뒷면에서 앞면으로 이어져 가게 된다. 따라서 어느 쪽이 앞면이고 어느 쪽이 뒷면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그런 성질로 인해 영원 혹은 무한의 반복을 뜻하는 비유로 쓰이곤 한다. 한편, 이 희곡은 극작가 겸 연출가 다니 겐이치가 2019년에 초연한 '후쿠시마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이다. 3부작 중 제1편은 <1961년: 밤에 뜨는 태양>으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건설이 결정되던 해의 이야기를 담았다. 마지막 제3편 <2011년 말해지고픈 말들>은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그 직후의 상황을 그렸다. 세 편 모두 후쿠시마 현 후타바 읍에 사는 호즈미 일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제1편은 장남 다카시, 제2편은 차남 다다시, 제3편은 막내아들 마코토가 주인공이다.
원자력발전소가 생긴 지 어언 15년 세월이 흐른 후쿠시마 현의 작은 마을 후타바. 지방의회 선거에서 연거푸 낙선의 고배를 마셔온 호즈미 다다시는 지금까지의 강경한 원전 반대 입장을 조금 누그러뜨리고 읍장 선거에 나서서 당선된다.
1986년 4월, 체르노빌 원전 사고 소식을 접한 후타바의 새 읍장 호즈미 다다시는 후타바의 원자력발전소를 가동 중지하고 안전 점검을 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그러나 그의 주변 사람들은 다다시의 그런 생각에 반대하는데……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에 일본 동북부 지방에 일어난 리히터 9.0의 대지진은 거대한 지진해일을 일으켰고, 그 지진해일은 후쿠시마현 바닷가에 있는 원자력발전소를 덮쳤다. 이튿날인 3월 12일, 전원 및 냉각 시스템이 마비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1호기가 수소폭발을 일으킨 것을 시작으로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끔찍한 원전 사고가 이어졌다. 방사성 물질은 대량으로 유출되었다. 도쿄전력의 서투르고 어리석은 대처가 이 재앙을 더 키웠다. 이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1986년에 일어났던 구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더불어 인류 최악의 사고로 기록되고 있다. 그리고 그 재앙은 현재진행형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이 있는 후타바마치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불모의 땅이 되었다. 극작가 겸 연출가 다니 겐이치가 이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게 된 건 후쿠시마현이 바로 작가 자신이 태어난 지역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 어머니의 고향이 후쿠시마고, 아버지는 원자력발전소에서 일한 적이 있는 기술자"라며 "내 안에는 원전사고로 고향에서 쫓겨난 쪽과 원전 사고를 일으킨 쪽의 두 핏줄이 흐르고 있는 셈"이라고 말한다.
2016년 여름부터 다니 겐이치는 후쿠시마와 그 원자력발전소 50년 역사에 관한 취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문헌 조사에서 그치지 않고 관련 인사들을 찾아가 만났고, 두 차례 현지 조사를 다녀오기도 했다. 2년 반에 걸친 집요한 취재 끝에 대망의 '후쿠시마 3부작' 희곡을 탈고한 그는 2019년 여름에 자신이 이끄는 극단 덜-컬러드 팝(Dull-colored Pop)에서 스스로의 연출로 이 ‘후쿠시마 3부작'을 한꺼번에 상연했다. 후쿠시마, 도쿄, 오사카에서 올린 이 공연은 큰 성공을 거두어 총 1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또, 이 3부작 희곡으로 제64회 기시다구니오 희곡상을, 이중 제2편인 <1986년: 뫼비우스의 띠>로 제23회 쓰루야난보쿠 희곡상을 받으며 다니 겐이치는 일본 연극계의 주목을 한몸에 받는 극작가가 된다. 3부작 중 제1편인 <1961년: 밤에 뜨는 태양>(1961年:夜仁昇太陽)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부터 50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1961년의 이야기를 담는다. 1961년은 후쿠시마현 후타바 군의 작은 마을 후타바마치와 오쿠마마 치의 읍의회가 원자력발전소 유치를 의결한 해다. 그해 가을, 후타바마치에 있는 호즈미 일가의 집에 도쿄전력 원자력개발부장 사에키, 후타바마치의 읍장이자 건설회사를 경영하는 다나카 등이 찾아와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위해 토지를 팔 것을 요구한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원자폭탄 투하의 비극을 경험했던 일본이 원자력발전을 통해 부흥할 수 있으리라고, 또 일본 내에서 정치- 경제적으로 소외되어 왔던 후쿠시마 지역이 원전 유치를 통해 번영을 꾀할 수 있으리라고 역설한다.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다 잠시 귀향해있던 호즈미 가의 맏아들 다카시는 그들의 청사진에 이러저런 의문을 제기한다.
그로부터 25년 후, 제2편 <1986년: 뫼비우스의 띠>에서 다루는 1986년은 구소련에서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일어난 해다. 이 희곡의 주인공은 그즈음 후타바마치의 새 읍장으로 선출된 호즈미 가의 둘째 아들 다다시인데, 이는 실존인물인 당시의 후타바 읍장 이와모토 다다오를 모델로 삼은 것이다. 젊은 시절부터 이 지역에서 원전 반대운동을 가열차게 해왔던 다다시는 사회당 선배인 마루토미와 보수 여당인 자민당 소속의 책사 요시오카의 권유를 받아 원전반대 목소리를 누그러뜨리고 읍장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한다. 이때 요시오카는 원전의 위험성을 경계하는 다다오의 신념을 교묘한 논리로 회유해 가는데, 어떤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회피하는 일본 사회 특유의 문화가 그의 궤변에 작용한다. 결국 새 읍장으로 당선된 다다시는 취임 반년만에 멀리 구소련의 체르노빌에서 일어난 끔찍한 원전 사고 소식을 접하게 된다. 작가 다니 겐이치는 이 이야기를 통해 왜 일본 사회에서 반(反) 원전, 탈원전의 목소리가 묻히고 말았는지, 왜 일본은 체르노빌 사고를 반면교사 삼아 원전의 위험성을 심각하게 따져보지 못했는지를 애타는 마음으로 되짚는다.
마지막 제3편 〈2011년: 말해지고픈 말들〉은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그 직후의 상황을 그린다. 제1편에서 어린아이로 등장했던 호즈미 가의 막내아들 마코토가 이제 50대의 언론인이 되어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관한 취재를 한다. 특히 이 제3편은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고향을 잃어버린 산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목숨을 잃은 죽은 자들의 목소리까지도 적극적으로 무대로 끌어온다.
이렇게 25년씩 시차를 두며 호즈미 집안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50년 동안의 이야기를 해나가는 이 세 편의 연극은 그 표현 방식에 각기 조금씩 다른 점이 있다. 제1편 〈1961년: 밤에 뜨는 태양〉에서는 인형극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한편 높은 텐션으로 절규하는 식의 연기를 많이 한다. 다니 겐이치는 제1편의 시대배경인 1960년대에 일본 연극계에 새로이 대두되었던 이른바 앙그라 연극(언더그라운드 연극)에 대한 오마주로서 그런 연기 스타일을 택했다고 한다.
제2편 <1986년 뫼비우스의 띠>는 제1편과 연극 스타일이 크게 다르지는 않으나, 후반부에 다다르면 갑작스럽게 뮤지컬 풍의 장면, 혹은 뮤지컬을 '패러디하는 장면이 튀어나온다. 물론 그런 전개는 연극의 내용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인데, 한편으로는 1980년대 당시 이른바 거품경제 시대를 구가했던 일본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하고자 하는 발상을 더한 것이라 한다. 마지막 제3편 <2011년 말해지고픈 말들>에서는 드라마적인 재현하는 장면에 비재현적인 퍼포먼스와도 같은 표현들이 갈마든다. 역시 그 시대의 예술 경향을 반영하여 선택한 표현 방식일 것이다. 이 제3편의 무대에서 들려지는 죽은 자들의 목소리는 ‘언령’(言靈), 즉 영적인 힘을 지닌 말로서 관객들에게 전해진다.
극작가 겸 연출가 다니 겐이치는 일본의 메이지대학와 영국의 켄트대학 교에서 연극을 전공했다. 일본에서는 대학 교육제도에 연극이나 영화가 거의 들어와 있지 않은 편이기에 대학의 정규 교육을 통해 연극을 학습한 연극작가가 드물다. 그런 가운데 영국 유학까지 다녀온 다니 겐이치는 귀국 후 소극장 연극, 상업연극 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정력적인 활동을 이어왔다. 또 극작, 연출뿐만 아니라 영어 희곡의 번역자로도, 해외 연출가를 초청한 국제간 공동제작 연극의 협업자로도 활약을 해왔다. 다양한 연극의 전통을 폭넓게 학습해온 그는 동서고금의 연극으로부터 얻은 다채로운 표현법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자신이 이끄는 극단의 이름을 ‘덜-컬러드 팝'이라 지은 것에서 우리는 다니 겐이치가 지향하는 연극 세계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아무튼지 그는 현학적인 연극보다는 파퓰러한 호소력을 띤 연극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알고 보면 그는 ‘조용한 연극'으로 알려진 극작가 겸 연출가 히라타 오리자가 이끄는 극단 세이넨단(青年団)의 일원이기도 하여 이른바 히라타 오리자 키드 중 한 명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연극 스타일은 상당히 차별된다. 섬세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보다는 선명하고 선 굵는 연기, 연극적 약속과 상상력에 따른 표현을 추구하며, 때로는 연극적 과장도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1986년 뫼비우스의 띠>는 호즈미 일가의 애견 모모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고 끝난다. 극작가 스스로 희곡 본문의 주석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 내레이션은 미국 극작가 손 와일더의 명작 희곡 <우리 읍내>에 나오는 '무대감독'의 대사를 차용한 것이다. <우리 읍내>의 '무대감독'은 공연을 진행하는 스태프로서 극중에 나오는 죽은 자들과 객석의 관객들을 이어주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희곡의 모모는 연극이 시작하자마자 자신이 죽어버렸다는 것을 알린다. 그런 연후에 모모는 이미 죽어버린 존재의 넋으로서 극중의 산 사람들을 바라보고 때론 그들과 교감한다. 다다오가 스스로의 신념을 꺾고 변절하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금지 못하던 모모는, 연극의 마지막에서 이 세계에는 산 사람들과 더불어 죽어버린 존재들이 공존하고 있다고 관객들에게 역설한다. 후타바마치에서 살다 죽은 이들뿐만 아니라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희생자들의 넋도 땅 위에, 또 허공 중에 함께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다니 겐이치는 이 '후쿠시마 3부작'의 공연 경험을 통해서 연극이란 오락도 아니고 교훈도 아니며, 본질적으로 일종의 '의식'(儀式)이라는 점에 새삼 눈떴다고 말한다. “죽음으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만든 것이 제2편이었다. 애견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을 서로 공유하는 것으로 이 이야기는 시작하며, 죽은 자의 시점과 죽은 자의 목소리가 시종일관 극중에 개입한다. 관객들은 어느새 1986년을 살았던 인간의 시점이 아니라 죽어버린 개 모모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바라보게 된다. 이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2011년: 말해지고픈 말들>에서는 죽은 자들을 더 적극적으로, 대대적으로 극중 세계로 불러들인다. 그럼으로써 극장의 무대는 죽은 이들의 뜻과 목소리가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매개의 공간, 산 자들이 죽은 자들의 넋을 달래는 의식의 제단이 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대한 치열한 취재로부터 시작했던 이 '후쿠시마 3부작'은 이렇게 그 마지막 제3편에 실향의 노래, 희생자들을 위한 진혼의 의식을 담음으로써 완결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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