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요코야마 다쿠야 연출로 자신이 대표로 있는 연극 유닛 iaku 제작으로 2018년 11월 29일~12월 9일 도쿄 미타카시 예술문화센터 호시노홀, 12월 21일~22일 오사카 야오시 문화회관 프리즘홀에서 초연되었다. 도쿄 공연 중에 호평을 받아, 재공연이 결정되어 2021년 4월 17일~25일 도쿄의 같은 극장에서 초연 배우 그대로 재공연되었다. 코로나19 긴급사태 선언으로 5월 8일~9일 오사카 문화회관 메인시어터 재공연은 취소되었다. 이 작품으로 2019년 제22회 쓰루야난보쿠 희곡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OMS희곡상 가작을 수상하였다.
제목에는 '만나러 갈게(逢, 아이니 이쿠)'와 발음이 유사한 ‘하필이면(生僧, 아이니쿠)'을 생각하는, 언어적 유희를 담고 있다고 작가는 서면 인터뷰에서 밝혔다. 만나러 가려는데 공교롭게 비가 온다는 상황을 암유하고 있으나, 제목의 운율감이 비가 지닌 울적함의 무게를 다소 줄여주고 있다. 큰 틀로 보면 연애, 친구, 가족 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거짓과 기만, 죄의식 등이 반복하며 굴절되는 모습에 대한 이야기이다. 거기에 돌발적으로 일어난, 운명을 돌려놓은 사고로 인하여 인물들 사이에 묘한 균형을 이루며 가해자와 피해자를 단순히 구분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간다. 어떤 보상과 세월로도 해결될 수 없는 복잡한 연결고리들이 마음의 문제를 깊숙이 펼치기 시작한다.
요코야마 다쿠야는 초연 프로그램에 희곡 구상 포인트를 “대본은 ‘용서하다'를 고찰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용서하다’를 묘사하려면, 동시에 용서받는 측을 묘사하게 되고, 또한 용서라는 행위는 용서받고자 하는 사람이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용서하다’는 도대체 누구의 무엇을 만족시키는가 하는 질문에 맞닿았다.”고 설명한다. 이 무거운 주제를 기능적 언어(명사)가 아닌 소통적 언어(형용사, 동사)를 중심으로 일상적이고 보편적으로 구사하여 불어나는 감정을 드러낸 점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풍부한 은유적 표현이 해석의 여지를 부여하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친하게 지내던 두 가족이 아이들 사이에 발생한 사고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버린다. 사고 당시인 1991년과 27년 후 초연 당시 시점인 2018년을 교차하며 서로 벗어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두 가족의 모습을 그리고, 용서란 무엇인가를 조용히 질문하는 대화 중심의 극이다. 두 가족이 품고 있는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면서 관계가 무너져가는 모습을 섬세한 대화로 쌓아간다. 순간의 우연으로 친밀한 인간관계가 맥없이 붕괴하여 버리는 두려움과 치명적인 사건의 영향은 오랜 시간 후에도 일상의 곳곳에 스며든다는 사실이 작품에 깃들여 있다. 사고 당시와 약 27, 8년 후의 현재는 높이가 있는 계단으로 제작된 무대장치에서 진행된다. 목재를 사용한 타원형 계단이 마치 하늘까지 닿을 듯한 세트로 좌우 양쪽에 등·퇴장로가 있어 가나모리와 오사와 의 집, 야구장, 공원 등 다양한 공간으로 변신한다. 이러한 추상적 무대 세트를 시공간으로 양분하여 서사를 교차하는 방식은 요코야마 다쿠야의 희곡 특징으로, 심리적 거리감을 잘 담아내 극의 밀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준과 기미코가 초등학교 4학년인 1991년 여름, 2박 3일간의 미술학원 캠프에서 기미코가 가져간 글라스펜 때문에 사고가 발생한다. 기미코는 5년 전 엄마 요코를 여의고, 이모 마이코에게 보살핌을 받고 있다. 대학 동기인 준의 엄마 와코와 기미코의 아빠 유타로는 가끔 만나는 사이지만, 이를 준의 아빠 히데노리와 기미코의 이모 마이코가 못마땅하게 여기던 차에 사고로 미묘한 관계가 표면화된다. 준의 실명사고 후 준 가족은 안과 전문 병원이 있는 사이타마로 이사를 하고, 두 가족의 교류는 단절된다. 준의 부모는 이혼하고, 기미코는 이모가 양육하게 된다. 기미코는 사고로 의안을 쓰게 된 준에게 사과를 못한 채 성장하여 그림책 작가가 되고, 책 출판을 계기로 두 사람은 2019년, 28년 만에 조우한다. 떨리는 목소리로 필사적으로 사과하는 기미코에게 준은 달관자처럼 “용서한다든가, 용서하지 않는다든가, 그런 게 아니고. 난, 내 눈을 나 스스로 받아들였을 뿐이거든”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격양되게 처리해도 좋을 이 장면을 오히려 담담하게 표현하는 기법이 요코야마 다쿠야 작품의 진면목인 듯하다. 그래서 더욱 눈시울이 뜨거워진다는 관객 리뷰가 적지 않다. 재공연을 본 산케이신문(2021/4/22) 기자 이즈카 도모코는 “격정적으로 흑백을 가리지 않고, 일필로 농담을 더 해가듯 이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섬세한 감정의 변화를 묘사하여, 관객도 당사자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만든다.”고 평단과 관객이 주목하고 있는 포인트를 강조하였다. 그 중심에 준이 보여주는 질투심보다는 진심 어린 부러움, 그리고 적정한 삶을 지향하며 다양한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심리적 여유가 보여주는 용서의 울림을 밀도 있게 전달한다. 견해가 다를 때 각을 세우기보다는 회피할 주제를 생성하여 일상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심리로, 현안에 집중하면서 진정성 있는 대화로 연계하여 그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뉘앙스를 치유의 톤으로 관객에게 스며들게 하는 작가의 작법 특징을 잘 담고 있다.
코로나 19로 지구촌이 고통 받고 있는 2021년, 요코야마 다쿠야는 재공연 프레스 릴리스에서 “이 작품은 용서와 용서받음을 주제로, 소꿉친구였던 남녀가 약 30년 만에 재회하여, 초등학교 때 발생한 사고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드라마입니다. 지금, 모든 곳에서 분단이 일어나는 시대에, 철저하게 내면을 속속들이 드러내며 대화를 거듭하는 모습을 느껴주시길”이라고 밝혔다. 친한 친구, 가족과의 여행에서 아들이 곤충채집용 망으로 친구 아이 눈 주변을 부딪쳤던 가슴 철렁한 경험이 작품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요코야마 다쿠야의 작품은 누구든 주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일을 실마리로 삼으며, 관객에게 '용서' 라는 보편적인 명제를 화두로 건네고 있다.
이 작품은 ‘사과하다’와 ‘용서하다’를 정면으로 다루어, 하나의 비극이 유발한 관계성의 파괴와 긴 시간에 걸쳐 변모하는 죄와 분노를 치밀하고 섬세하게 보여준다. 전 교토통신사 기자이자 평론가인 사카 기요가즈는 초연 리뷰에서 “현재와 과거라는 다른 시공간이 뒤얽혀, 마치 각각 다른 방향에서 비극의 진상을 향하여 다가가는 것 같은 서스펜스, 관객을 끌어들이는 고도의 서사적 기법으로 스케일이 커졌다. 현시점에서 최고 걸작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 만듦새이다.”라고 언급하였다.
또한 초연을 본 야마시타 하루키(연극·영화 프로듀서)는 “사고를 일으켜 장애가 남으면 원래로 돌아갈 수 없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언제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사람은 어떻게 그 현실과 마주하는가에 관한 요코야마 다쿠야의 사고 전개가 본 작품에 그려져 있다.”고 평하였다. 초연에 이어 2021년 도쿄 재공연에서는 “타인을 용서한다는 일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죄의식을 품고 지내는 일은 어떤 것인지? 죄를 보상하는 일은 가능한 것인지? 속죄라고 불리는 일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등의 의문을 느꼈다고 언급하였다. 작품 속에 이에 관한 작가의 설명적인 메시지가 없음을 주목하며, 인간이 지닌 마음의 본질을 발췌하여 관객에게 각자가 생각할 몫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관계성과 감정의 변화를 섬세하게 다루는 대사로 여운을 남기는 요 코야마 다쿠야의 필력이 우리를 주제에 관한 고찰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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