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두 명의 소녀와 두 개의 세계가 있다. 둘은 창문 청소를 통해 처음 만나게 된다. 그날은 소녀1이 거실 소파에서 엄마의 시체를 발견한 날이다. 둘은 서로 다른 듯 같은 구제불능의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소녀들은 일련의 무계획적인 사건을 올해 엄마를 얼떨결에 납골당에서 구출하게 된다. 둘은 그렇게 유골함을 옆에 끼고 '루루'를 찾아 별로 위험하지 않아 보이는 모험을 시작하기로 한다. 모험할 수 없는 세상에서 이상한 모험을 만드는 소녀들, 그들은 부조리한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만든 환상의 세계에서 계속 머물 수 있을까.
정민지 작가의 토끼굴은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보다 꼭 150년 뒤에 나온, 앨리스보다 5살쯤 많은 소녀의 모험담이다. (앨리스식의 엉뚱한 계산을 하자면) 앨리스보다 백오십 살 하고도 다섯 살을 더 먹은 소녀가 여전히 엉뚱하고 우스꽝스럽지만 조금은 더 어른스러워진 세계를 여행하는 이야기이다. 이미 아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른도 아니었던 소녀는 엄마의 죽음으로 어른의 세상의 길목까지 밀려와 버리게 된다. 때문에 소녀의 여행은 더 이상 꿈꾸는 대로 이루어지는 해리포터와 같은 판타지로 채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나도 어른이 되어가는 걸까?‘ 라는 회의(懷疑)를 불러오는 은밀한 경험, 즉 타인을 만나 그의 세계를 경험하고 그 마음의 어두운 구석에 침입해보다 결국엔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회귀하는 진퇴의 여정으로 채워진다.
작가의 말 - 정민지
살아남아라, 개복치를 아세요? 3억 마리의 동료들은 모두 죽었는데도 살아남으라고 말하는 이것은 모바일 게임입니다. 개복치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개복치가 되고 싶어 합니다. 개복치의 특기는 돌연사입니다. 개복치는 몸과 마음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연약하여 주변 환경과 스트레스에 민감한 물고기기 때문이에요. 유저들은 여기서 멘탈 붕괴가 되지만 곧 회복합니다. 왜냐면 개복치는 게임이기 때문에 죽어도 더 강력한 포인트를 얻고 부활하니까요. 많이 죽으면 죽을수록 강해집니다. 그래서 개복치는 안심하고 성체가 되기 위한 모험을 계속합니다. '리얼 월드‘는 어떤가요 우리도 개복치처럼 성체가 되기 위해 어떤 모험을 감행할 때가 있지요. 하지만 우리는 개복치가 아니라 사람, 모험하다가 실패나 실수를 하게 된다면, 단 한 번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 나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생명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HP를 알지 못하며 어떤 것을 먹고 어떤 일을 해야 MP가 쌓이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모으는 것이에요. 도처에 돌연사가 도사리는 세계는 같지만 철저하게 다른 조건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개복치에게는 그다음의 플랜, 즉 '진화'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다음 플랜인 '진화'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통해 성체가 되는 법을 알 수 있을까요. 언젠가는 개복치처럼 완전한 성체가 될 수 있기는 할까요. 될 수 없다면 그냥 아무것도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앞으로 자라 무엇이 되어버리는 세계에 살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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