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해방 직전의 일제 치하다. 그리고 무대는 조그만 마루와 방 두 개가 달린 집이 된다. 마님이라 불리는 여인이 가장이고, 할아버지 대부터 이 집 일을 돕는 일꾼 식구들이 등장하고, 일꾼의 미모의 여식은 유치원 선생이다. 시대적 배경에 따라 종군위안부 문제가 이 여식에 의해 대두되고, 형사들은 일본으로 일하러 가게 되는 것이라고 동원된 여인들을 속인다. 마님의 아들이 독립운동을 하는 것을 빌미로, 조선인 형사와 일본인 형사는 마님 댁을 자주 들락거리고, 일꾼의 미모의 여식에게 치근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여식이 바로 마님의 아들인 독립운동을 하는 청년과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을, 청년이 피신하다가 집에 잠시 들르면서, 열정적인 키스로 여식에게 입을 맞추는 광경을 보고, 관객은 비로소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일경에 의해 여식은 일본으로 끌려가고, 청년은 체포되어 감옥으로 가게 된다. 두 사람이 서로 떨어져 있던 세월, 우리 모두가 겪어야 했던 역사적 암흑기와 여명기, 그리고 개발도상과정과 경제성장, 88올림픽, 월드컵 등을 숨 가쁘게 지나 보내며, 현재 이 순간에 이르러, 3.1절 기념식 노인들을 위한 장기자랑이 펼쳐진다. 여러 노인 중, 맹인 노인 한 사람이 흰 지팡이를 짚고 다가와 흘러간 옛 노래를 구성지게 부른다. 모두 박수갈채를 하고 흥겨워할 때 휠체어를 탄 여자 노인이 등장해, 소월 시 한편을 낭독한다. 여느 낭송가보다 더 절실한 노파의 시낭송은 좌중을 압도한다. 그녀의 시낭송이 끝날 무렵 맹인노인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가까이 다가간다. 이름을 불린 노인과 부른 노인이 다가가 서로 상대를 확인하는 순간, 서로 얼싸안고 오랫동안 헤어졌던 두 사람이 다시 만나 으스러지도록 포옹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작가의 글
작품을 쓴 2009년은 1920년 구한말 구권을 일본에 빼앗긴 후 탑골공원에서 1919년 기미년 독립 선언서를 선포한 지 90년을 맞은 3.1절 기념의 해가 된다. 이 작품은 일제 36년 간의 악정을 많이 보고 느낀 사람들을 나름대로 한 편의 희곡으로 엮어 이름 없이 떠나간 많은 순국 선열열사들에게 위로와 진혼의 글로 바치고자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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