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현숙 '조국의 어머니'

clint 2022. 4. 13. 13:33

 

 

 

<조국의 어머니>, 작품의 제목이 시사하듯이, 우리 시대의 갖가지 아픔을 가슴에 한으로 묶고 살아온 우리 어머니들의 보편적 삶을 형상화한다. 6·25를 전후한 정치적 전환기에 가족들이 겪는 갖가지 아픔을 한없는 넓이로 포용하면서 살아온 어머니 오산월'의 모습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어머니들의 삶과 그리 먼 거리에 있지 않다. 정치판을 맴돌며 가정조차 돌보지 않는 남편 대신에 집안 살림을 힘겹게 꾸려가야 하는 어머니, 큰아들이 죽은 줄도 모르고 언젠가는 돌아온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어머니, 자신이 다니던 학원의 원장에게 성폭행당한 채 말도 못하고 살아가는 딸의 힘겨운 고뇌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감싸주는 어머니, 3 · 15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시위 도중 중상을 입은 둘째아들을 꿋꿋이 지켜보는 정의로운 어머니, 오산월이 이처럼 힘겨운 상황에서도 가정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어머니의 보이지 않는 인내와 희생과 사랑의 힘이었다.

이 작품은 드러내지 않으면서 한없이 희생하고 사랑하는 어머니의 힘을 주제의식으로 깔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런 주제가 초점화되지 못하고 뚜렷하게 형상화되지 않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을 상징하듯이. 주제의 이러한 불투명성은 오산월'의 인생역정보다는 6·25를 전 후한 정치적 혼란기를 살아가는 가족 구성원들의 삶을 다루는 데에 무대를 과도하게 할애한 데 기인하고 있다. 큰아들 '박세영은 자기 집에 세 들어 사는 여대생 '민숙희'를 사랑하게 되고, 민숙희를 사이에 두고 친구 '박병태'와 삼각관계에 놓이게 된 결과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 공산당이 된 병태'에게 끌려가게 되었다. 그리고 딸 박정애''공하수'의 사사로운 욕정의 희생물이 되고 만다. 정의와 합리성이 통하지 않는 격동기를 겪어오는 가운데, 어머니 '오산월'은 이러한 시대를 다음 세대에는 물려주지 않아야 한다며, 둘째아들 박세완의 부정선거 반대 시위를 지지한다. 이 작품은 가정의 질서를 회복하고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을 지향한다. 둘째아들이 시위 도중 중상을 입고 응급실에 실려가고 민숙희가 찾아와 큰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비극적인 결말을 가져올 듯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전환국면을 가져옴으로써 희망적인 상황을 암시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매일 술 냄새만 풍기며 돌아오던 아버지 '박천우'가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시위에 참가하고, 비록 불구로 살아갈지언정 둘째아들이 의식을 찾게 되며, 민숙희가 큰아들의 유복자를 데리고 오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여러 사건들은 하나의 주제를 향하여 유기적으로 짜여져 있지 못하고, 작품 배경과도 긴밀한 유대관계를 구축하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이 작품을 무대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관건은 어머니의 역할 창조이다. 가족 구성원 각자의 삶을 사랑으로 보듬으면서 자신을 희생시켜 나가는 그야말로 '조국의 어머니'로 새롭게 형상화 시켜야 할 것이다. 또한, 인물들의 성격을 드러낼 수 있는 생생한 대사 만들기도 이루어져야 한다. 박병태가 실수로 박세영을 죽이고 자기도 죽게 되는 장면에서는 행위에 대한 필연적 동기도 부여해야 하고, 학원장 공하수의 욕정에 정조를 유린당한 딸의 고뇌도 그려 넣어야 한다. 그리고, 큰아들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 상태에서 시위대열로 뛰어드는 둘째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리적 갈등도 생생하게 살려야 한다. 대본 수정이 이와같이 이루어진다면 이 작품의 사건들은 유기적으로 싸여져서 비로소 하나의 주제로 응축되어 되살아날 것이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현숙 '태양은 다시 뜨리'  (1) 2022.04.14
박현숙 '생명의 전화를 받습니다'  (1) 2022.04.13
박현숙 '여자의 성'  (1) 2022.04.13
박현숙 '땅 위에 서다'  (1) 2022.04.12
김준호 '편의점'  (1) 2022.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