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현숙 '생명의 전화를 받습니다'

clint 2022. 4. 13. 16:35

모노드라마.

 

 

요즘 세간에 유행하는 말 가운데 '마처족'이 있다. 이 말은 마지막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세대이며, 처음으로 자식에게 버림받는 세대를 일컫는 풍자어인데, 현대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치관의 혼란과 그로 인하여 갈등하는 세대를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박현숙의 <생명의 전화를 받습니다>를 대하면 이 속의 주인공이 제기하는 문제 또한 마처족의 처지와 다를 바 없다고 여겨진다. 이 작품은 작가가 수십 년간 가정법률 가사조정위원으로 일하면서 겪은 다양한 가정 문제를 삽화 식으로 전개시켜 나가는 모노드라마이다. 모노드라마는 여러 명이 등장하는 작품과는 달리 연출가의 연출력보다는 배우의 연기력이 작품의 성패에 큰 영향을 준다. 이 작품 또한 예외 없이 배우의 연기력이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특히, 지금까지의 패미니즘 적 모노드라마들이 보여주었던 하소연적이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식의 사건 전개가 아니라, 병렬식 구조를 취함으로써 배우로 하여금 연기 포인트 확보에 어려움을 더하고 있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 박진숙은 모두 네 통의 전화를 받는다. 고향 선배, 아들, , 동창생들로부터 걸려오는 생명의 전화는 인생의 황혼기에서 제기되는 문제 남편과 아내의 불평등 문제, 아내로서의 남편에 대한 불신 문제, 노부부 사이의 문제 등 가정에서 흔히 겪는 일상적인 내용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을 현대인들은 전혀 일상적인 문제로 흘려보내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보고야 말겠다는 태도를 취하는데, 바로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릴 경우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인 분할로 다룰 것인가, 아니면 다 같은 어울림의 공간으로 다룰 것인가에 먼저 고민을 해야한다. 다시 말해, 작품의 초점을 어디에다 맞출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단정적으로 제시한다면, 이 작품은 지금까지 제기해온 가정 문제의 확대보다는 그러한 문제의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의 중심에 인생의 황혼기, 그야말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한 여인, 그것도 가정법원 가사조정위원으로 근무하는 갈등의 해결사가 있다. 이 여인을 통해서 작가는 문제를 제기하고, 싸우고, 헤어지고, 그것으로 적대시해버린 지금까지의 가정 문제를 양보와 인내로써 화합의 장을 만들어 가자고 은유적으로 제시한다. 그러므로, 요즘과 같은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배타주의가 만연하는 혼돈의 사회에서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양보할 줄 아는 전통적 미덕의 회복을 이 작품을 통해서 드러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가지 더 욕심을 낸다면 이러한 큰 줄기에다 마치족으로 갈등을 느끼는 박진숙의 모습도 형상화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진숙이 받는 '생명의 전화는 다른 사람에 대한 생명 부여의 의미도 강하지만, 자신이 그것으로 인하여 새 생명을 부여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주제를 연결하는 문제는 연출가의 연출력에 달렸지만, 고려해 보기 바란다. 그리고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릴 경우 좀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부분이 배우의 분장이다. 가정법원 가사조정 위원으로 근무할 만큼의 지적인 분위기도 풍겨야 하는 반면,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이미지 창출이 작품의 성공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일반적인 사건 전개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관객들에게 지루함을 제공해버릴 수가 있다. 그 부분을 배우 자신의 내면의 연기를 통하여 극복해야만 한다. 모든 모노드라마 그러하듯이 이 작품 또한 상당히 세밀한 연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대본 중간중간에 불필요하고 시대에 맞지 않는 내용 또한 정리가 필요하다. 특히, 남북 관계의 내용은 현 상황에 맞추어서 좀 더 희망적인 내용으로 고쳤으면 한다. 그리고 밋밋한 극의 내용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 이면적 등장인물을 스크림 기법으로 제시하는 방법도 고려해 보기 바란다. 이 기법을 통하여 그들이 갈등하는 모습을 행동으로 제시하면서 박진숙의 포용력 있는 연기가 무대에 펼쳐질 때 한껏 생동하는 무대가 창출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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