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오태영 '매춘'

clint 2022. 1. 6. 17:55

 

 

 

막이 오르면 붉은 치마와 흰치마 두 등장인물은 제의적이고 주술적인 차원에서 그들의 죄를 심판받기를 원한다. 과연 그들의 죄는 어디에서 출발한 것이며 어디서 끝을 맺을 것인가에 대해서. 이어 매춘은 인간의 사랑을 근거로 한 것임을 상징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매춘을 강요당하는 그들이 보인다. 그들은 자신과 자신들이 속해 있는 사회에 힘없는 항거를 해보인다. 순수한 두 젊은 여인이 창녀로 전락해 가는 과정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구인광고에서의 함정, 그리고 영혼을 팔기보다는 육체를 원하는 그들. 그들에게 향하는 폭력과 생과 사이 이율배반적 이론이 그들 앞에 대두된다. 이어 완전히 창녀로 전락한 그들의 생활이 보여지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자신의 육체를 팔음으로써 많은 인명을 구해 낸다. 그 과정에서 신성함과 추악함의 극단적인 이행이 그 자신을 이길 수 없는 고통에 휩싸이게 한다. 이어 술좌석에서의 옷 벗기 게임은 비록 몸을 파는 여자에 불과할지라도 일본인 앞에서는 벗을 수 없다는 민족적 자존심을 내세우다 그렇게 죽어가고 만다. 수용소에서 많은 인명을 구했던 그녀가 오히려 살아남은 그들에게 버림받음으로써 매춘의 가치가 그들로 하여금 추악하고 타락적인 것으로 만들어져 버리고 만다. 원인과 이유와 동기가 어떻든 매춘을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추악한 근본의 행위힘을 매도해 버리는 사회의 그릇된 관념과 사고방식을 대표하는 한 사나이의 무자비한 폭행으로 이 극은 끝난다.

 

 

 

작가의 변 - 오태영

세상이 너무 복잡하며 너무 빨리 돌아가는 탓일까. 사람들은 각자 자기만의 문제에 힘겹게 매달려 타인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으며, 옆 사람의 고통에 눈 돌려볼 여유가 없다. 누가 어떠한 이유로 절망하며 어떤 모습으로 허물어지기 시작해 끝내 죽어가는지를한 작가의 언어가 어떠한 이유에서 신경질적으로 거칠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며, 끝내 어떠한 모습으로 황폐해지는가를. 그리고 그 황폐한 언어의 끝이 어디인가를.

연극은 오락인가, 아니면 교양인가, 대체 연극이 언제까지 오락이어야 하며 교양 수준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가. 더 이상 앞으로나 뒤로 갈 수는 없단 말인가작가의 언어가 이 사회에 아무런 힘이 될 수 없을 때, 작가는 이 땅에 존재할 가치가 없으며, 존재 이유 또한 없다. 모든 작가는 자기 언어에 책임을 져야 하며, 나는 분명 작가고, 나는 내 언어에 책임을 진다. 이 책임은 작가의 의무이지 권리는 아니다. 이 책임의 의무를 박탈당할 때 모든 작가는 살아남지 못한다. 모든 작가는 오직 죽어갈 뿐이다. 어떠한 형태로든……

 

 

당시 리허설 사진

 

 

 

매춘이 어떻게 생성되고 창녀가 사회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가를 파헤쳐 매춘을 통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한 연극 매춘(오태영 극본·채승훈 연출)이 공연윤리위원회의 대본 수정지시를 정면으로 거부, 공연 허가를 받지 않고 지난 4일부터 공연되고 있어 연극계에 또 한번의 표현 자유파문이 일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작품은 오씨의 작품으로 공륜 측은 대본을 심의한 결과 ▲「콘돔」 「옷을 벗어라등 저속· 외설 대사 창녀를 채찍으로 학대하는 장면 우리나라 최초의 양공주는 미국 셔먼호 사건 당시 미국인을 접대하기 위해 동원된 평양기생이라는 등의 반미 성향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 극단 측에 내용 수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극단 측은 이에 불복, 서울시에 공연 신고 없이 공연을 강행하고 있다.

현행 공연법에 따르면 공륜의 심의필증과 서울시의 공연 신고필증 없이 극장에서 공연하면 공연단체 등록취소나 정권, 작품의 공연정지·공연장 허가취소 또는 폐쇄를 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한편 공륜 측은 극단 측이 공륜의 심의필증 없이 공연을 강행하려는 자세를 보이자 서울시에 행정 계도를 요청했고 서울시는 극단 측에 일단 공연을 정지하고 행정절차를 밟으면 공연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종용하고 있으나 극단 측은 차제에 예술 작품에 대한 공륜의 지나친 표현 자유 침해 문제를 본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 당국에서 행정조치를 내린다면 사법부의 판단에까지 맡겨 보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가 공연작품· 단체에 행정처분을 한 경우는 84년 극단 연우무대의 공해풀이 마당굿 나의 살던 고향은이 공연 2개월 후에 공륜 심의대본과 실제 대본이 다르다는 이유로 6개월간 극단 공연 활동 정지를, 지난해 5월 극단 시민의 세대 풍자극 이 고문을 빗댄 대사를 임의로 삽입했다는 이유로 1개월간 활동 정지 처분을 한 것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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