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 포인트>는 부제인 '소현세자, 흔적과 표적'처럼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가 청나라에 들어온 서양문물을 익히고 들어와 대신들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죽게 되는 이야기다.
예나 지금이나 나라보다는 끼리끼리의 정권야욕을 위해 붕당을 결성하기는 마찬가지다. 조선왕조 중엽 친 청 친 명 중립적 외교를 펼치던 광해군을 축출하고, 바보군주 인조를 왕으로 모신 무리들이 조선 5백년 간의 종주국 노릇을 하던 명나라만 추종하고, 신생 후금국을 오랑캐라 업신여긴다. 당시 후금국은 명나라를 정벌하고 중국을 통일해 청나라가 된다. 조선은 명을 추종하던 무리들이 정권을 잡았으니 청의 개국을 당연히 도외시한다. 이에 분노한 청은 조선을 침략해 그 국력을 과시하고 인조의 항복을 받아낸다. 인조의 장자 소현을 비롯해 수많은 남녀가 인질로 청나라 수도인 심양으로 끌려간다. 아버지인 인조와는 달리 명석한 인물인 소현은 청나라에 들어온 서양 여러 나라의 신문물을 받아들여 조선을 혁신시키고 발전적으로 이끌려 한다. 그러나 국가의 이익보다 붕당의 이익과 안위만을 꾀하는 무리에게 둘러싸여 있는 바보군주 인조로서는 소현의 의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사할 수밖에 없게 되는 비극적 내용이다.
소현세자의 볼모생활은 심양일기에서 자세히 전해진다. 병자호란의 패배로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고, 아버지 인조에게 독살당했다는 설이 떠도는 왕세자. 소현세자의 인생은 문자 그대로 극적인 삶이었고, 그만큼 많은 작품의 소재가 되고 있다. KBS <최강칠우>와 <추노>는 모두 인조를 악역으로, 소현세자를 도탄에 빠질 조선을 구할 성군이 될 인물로 묘사했다. 최근 방영하는 tvN <삼총사>에서는 소현세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며 소현세자에 대한 아쉬움을 더욱 강하게 내비친다. 정말로 소현세자가 살아 있었다면, 그는 패전으로 피폐해진 조선을 개혁할 인물이었을까? 소현세자를 다루는 작품들에서는 그를 명민하고 인정이 많은 인물로 소개하곤 하는데, 덕이 많은 사람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1637년 <소현 심양일기>에는 소현세자가 병자호란 이후 청으로 끌려가면서 지나치는 촌가의 백성들에게 "마을 사람 1백여 명이 병화를 피해 석굴에 숨었는데, 세자가 쌀 몇 말을 나누어 주었다"고 적혀 있다. 일기 곳곳에는 이런 일화들이 자주 등장한다. 또한 함께 지낸 신하가 관직에서 물러나면 끊임없이 사람을 보내 건강을 챙겼다 한다. 소현세자가 삼전도에서 왕이 직접 머리를 조아리고 이마를 땅에 찧는 항복 예식을 치를 때 눈물을 참지 못한 것은 그의 성품을 보여준다. <인조실록>은 "이때 세자가 상(인조)의 곁에 있다가 울음을 터트리자 상이 달래었다"고 기록한다. 백성에게 베푸는 것을 아끼지 않고, 주변 사람을 두루 챙겼으며, 아버지의 치욕에 울음을 참지 못하는 심성을 가졌으니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연극 <카운터 포인트>의 소현세자의 모습도 이런 성품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무대는 수많은 가리개와 높은 단위에 있는 어의로 꾸며져 있다. 가리개를 이동시켜 장면변화에 대처하고, 어의는 하수 쪽을 향해 기울어진 형국이고, 어의가 놓인 높은 단은 바퀴가 달려 출연자들이 회전을 시키고 객석 가까이 끌고 오기도 한다.
연극은 도입에 희랍극에서 보듯 수많은 남녀 코러스가 백색 의상차림으로 등장해 마치 시를 읊듯 하는 대사로 연극을 이끌어 가고 극의 중간과 대단원까지 코러스가 등장한다. 병자호란 전후해 벌어지는 왕과 대신들의 모습과 청나라 홍타시 황제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인조의 모습이 연출된다. 극의 후반 심양에 볼모로 끌려간 소현세자의 활동은 가로로 연결된 가리개 앞부분 객석 가까이에서 연출되고, 서양신부 탕약망과의 대화도 무대 전면에서 이루어진다. 극의 말미에 소현세자가 귀국하면, 만국전도가 그려진 병풍이 펼쳐지고, 무대 전면에 지구의, 십자가 조형물, 성모상, 신문물을 수록한 책자 등이 나란히 놓인다. 대단원에 사약을 마신 후 세자빈에게 기대어 수명을 다하는 소현의 의연한 모습과 함께 코러스의 시를 읊는 듯싶은 마지막 대사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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