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동화 '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

clint 2015. 11. 8. 12:54

 

 

박동화는 일제시대부터 연극운동에 참여했고 이광래와 함께 극단 '중앙무대'를 조직해서 극단 운영도 해왔지만 극작가로 알려지기는 1959년 국립극장에서 현상 모집한 희곡 "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로 그 이름을 굳혔다고 봐야 하겠다. 그 후 여러 편의 희곡을 쓰고 또 지금도 연극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老益壯의 劇作家이다.


6.25사변 후 검사로 있었던 민의균은 자기가 맡은 형사공판에서 오판으로 말미암아 한 인간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 일로 인해 그는 뒤늦게 자신의 오판을 깨닫자 양심의 가책과 죄의식 때문에 인생을 포기하고만 고민하는 知性이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인 실업가 민규상의 여비서로 채용된 박경순이 그 앞에 나타나게 된다. 박경순은 바로 민의균의 오판으로 사형된 피해자의 딸이다. 민규상은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어 박경순을 민의균과 혼인시키려고 한다. 처음엔 서로가 원수로 대했으나 차츰 그것이 애정으로 번해가고 마침내 민의균은 극도의 신경쇠약증에 빠지게 되고 박경순의 품에 안겨 죽어간다.

 

 

 

"내 몸뚱어리에 죽음이라는 이름의 화려한 상장(喪章)을 둘러 마지막의 내 호흡이 끊어진다면 나와 동일한 다른 운명의 소유자가 나의 독백을 이어받아 나의 독백은 두고두고 끝나지 않을 것이다"
박동화 선생의 대표작 '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의 한 부분이다.

 

 

 

 

사건 설정이며 대사가 중압감을 느끼게 하고 어떤 면에서는 퍽 심각하고도 난해한 철학성 마저 풍기게 한다. 특히 현직검사가 민간인에게 무고하게도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죽게 하는 설정은 우리에게 현실에 대한 뼈아픈 사려와 절규마저 느끼게 한다. 다만 이 작품에서 자주 되풀이되는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는 말의 내용이 모호하고 추상적이어서 어떤 면에서는 관념적으로 흘러 버린 느낌이 든다.

 

 

 

박동화 (1911~1978)
작가이자 공연예술가로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59년<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가 국립극장 희곡부분에 당선되어 공연되면서 등단하게 되었다. 1961년 전북대 극예술연구회 중심으로 창작극회를 창단하여 초대 대표로 취임하였다. 1964년<두 주막>의 극작과 연출을 맡아 전국연극경연대회 최우수상, 향토문화예술공로상 등을 수상하였다. 1978년 6월 작고할 당시 장례는 전북에서 최초로 ‘문화예술인장’으로 거행되었다.
• 대표작품
<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두 주막><농촌봉사대><나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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