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정한 효(孝)란 무엇인지를 작가 김희창은 짧은 단막을 통해 말한다.
전 첨지는 이 지방의 유능한 비석 석공의 명인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눈이 침침하고 기력이 예전만 못하다.
그의 아들 광배는 그런 아버지를 알고 무뚝뚝하지만 아버지를 도우려하나
전 첨지는 자긴 늙지 않았다며 아들의 호의를 무시하고
성 영감에게 아들의 불효를 말한다.
광배는 친구인 경오를 시켜 가져온 돌을 최고의 돌이라며
자신의 아버지인 전 첨지를 위한 비석을 만들겠다고 하나...
이 마을의 효자로 소문난 얼치기 효자인 상주가 이 돌을 보고 욕심을 내서
자신의 효자비 삼으려고 탐내고 또 마을의 사또도 찾아와 효자비를 세워달라는
상주에게 만냥이란 큰돈을 요구한다.
결국 이 돌을 자신의 공덕비로 쓰려는 욕심 나타낸 것인데...
이 돌로 인해 광배는 사또나 상주한테든 아무에게도 못준다고 하다가
광배가 아버지를 위한 비석으로 쓰려한다는 걸 알고
지아비를 빨리 죽게 하려는 불효자로 몰려서 벌을 받게 된다.
결국 전 첨지는 아들의 진정을 알게 되고
또 광배가 구한 돌이 최고의 명품 석인 것을 알게 된다.


효란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탐관오리의 악행 역시 예나 지금이나 비슷함을 보여주고 단막의 제약 속에서도 전체 흐름을 재미있게 풀어가는 작가의 재치가 돋보인다. 1970년대 극단이나 대학 극에서 몇 번 공연되고 거의 묻혀진 작품이다.

김희창
1908년 서울 교남동 출생
1932년 원우전 문하에 들어가 연극과 인연. ‘극예술 연구회’,‘토월회’에 관여
1933년 ‘라디오 플레이 미팅’조직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방군(房軍)당선
1947년 중앙 방송국 전속 작가. 일요연속극 ‘대원군’집필
1951년 동경 UN군 사령부 전속 작가
1958년 ‘로맨스 빠빠’,‘또순이’,‘탑’등을 집필
김희창은 우리나라 라디오 시대의 대표적인 방송 드라마 작가이다. 그는 방송국에서 작가생활을 하는 동안,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냉엄할 정도로 자기를 절제하면서 작품성을 추구했던 순수한 인물이었다. 그러기에 1989년 방송위원회가 방송전문지(지금의「방송 21」)를 창간하면서 「방송인물사」를 연재할 때, 방송작가 가운데 가장 먼저 선정되었다. 그 때 그에게 주어진 제목이 ‘한국 방송극의 터를 일군 드라마의 선구자’였다.
김희창은 이중방송 실시 첫해인 1934년 8월 29일 방송극「노차부(老車夫)」를 집필하여 방송을 했다. 그는 그 당시 동인 ‘토월회’의 일원으로서 순수한 방송극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라디오 플레이 미팅’을 결성하기도 했다. 토월회는 첫 방송극의 표본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여 창작극으로 「노차부」를 선정하고 그 연출에 신예 연출가 박진을 내세웠다. 이 작품은 종래의 패턴에서 벗어나 라디오 드라마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김희창이 방송계와 다시 인연을 맺은 것은 해방 이후의 일이다. 미군정하의 서울중앙방송국이 1946년 3월 조직개편을 단행하여 기획과가 신설되면서 ‘스크립트 라이터’ 제도를 만들자, 여기에 김희창이 참여한 것이다. 그는 ‘스크립트 라이터’로 활동하면서 1948년 3월 서울중앙방송국이 주최한 방송희극 각본 공모에 1등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응모작품 200여 편 가운데 「꿈의 공덕」이라는 작품으로 1등을 차지했다. 김희창은 안기도(安基道)라는 가명을 사용했는데, 이 상황을 「한국방송사」는 기록으로 남겼다. 이 당시 김희창은 단막물 「세계명작」,「꿈의 공덕」,「삼대의 합창」등과 연속물「대원군」등의 수준 높은 작품을 남긴 후, 잡지사로 이적했다. 그러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일본 동경의 유엔군사령부 심리전과에서 작가로 활동했다. 그가 귀국하여 방송극 집필에 전념하기 시작한 것은 1956년이다. 김희창은 1950년대 말 라디오 드라마 중흥기에 격조 높은 작품을 대량 쏟아냈다. 그 역작의 단막물로는 「전화 있는 사무실」,「소슬한 바람」,「회나무」,「지새는 달」,「후기 인상파의 밤」,「코리안 파이프」 등이 있다. 그가 귀국하여 내놓은 「깊은 산속에서」라는 첫 작품은 음악이나 효과도 없이 단 둘이 출연하는 심리극이었는데, 이 드라마 한 편으로 김희창은 그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김희창이 집필한 연속극으로는 「로맨스 빠빠」,「파도」,「행복의 탄생(또순이)」,「열두 냥 짜리 인생」,「시계 없는 대합실」,「당쟁비화」등이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방송이 될 때마다 크게 히트해 방송문예의 중흥기를 구가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특히 「로맨스 빠빠」는 작가 특유의 유머와 위트가 발휘되어 전편에 걸쳐 웃음이 가득 차게 한 코믹 홈드라마이다. 이 작품은 곧 영화화되었고 유행어를 제조해 내기도 했다.
김희창은 이 드라마에 힘입어 1959년 제2회 방송문화상 문예부문 수상자가 되었다. 이 드라마는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지만 온 가족이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면서 살아가는 가정을 그렸다.
김희창은 텔레비전 시대에도 「기러기 가족」,「1남 1녀」,「유랑극단」,「열풍지대」,「탑」등의 작품을 남겼다. KBS-TV를 통해 방송된 이 「탑」은 그 시대 일간지들이 ‘격조 높은 TV드라마의 정형’, ‘한국TV 사상 최고 걸작’ 등의 격찬과 함께 대서 특필하기도 했다.
김희창은 1970년 초반에 부조리한 사회를 정면으로 고발한 「고려인 떡쇠」를 무대에 올린 적이 있다. 그 작품은 그의 무대인다운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연극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작품의 연출을 맡은 허규, 최상현 등 후학들이 김희창의 8순 기념으로 작품집 3권을 출간하기도 했다.
김희창은 1980년대 들어서 거의 작품을 쓰지 않았다. 그는 누가 물으면 ‘나는 옛날 사람’이란 표현과 함께 칩거생활로 일관했다. 그는 고등보통학교를 1년 중퇴한 학력에 공사장에서 뼈가 굵은 사람이었지만 역사, 문학, 예술 등에 해박한 지식인이었다. 그는 비록 과작이었지만 작품 집필시에는 조용한 심야를 택하여 온 정신력을 집중해 혼신을 다하는 완벽주의를 추구한 작가였다.
김희창은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간적으로도 평생을 강직하고 당당하게 살았다. 그는 만년에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오고,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해서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 인간됨이 소박하고 순수해야 합니다”라고 한 일간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피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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