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작 파에 속하는 한로단의 작품세계는 다양하다.
'전원 교향곡'에서부터 '정혼소동'에 이르기까지
그의 극작가로서의 연륜은 가장 오래된 측에 속한다. '
전유화(戰有花)'는 그런 가운데서도 6. 25 동란을 소재로 한 이른바 전쟁문학에 속한다.
전화(戰火) 속에서 생사를 가리지 못하는 극한상황을 설정하여
부상당한 UN군을 사이에 두고 한 형제가 국군과 괴뢰군으로 갈라서게 되던
뼈아픈 동족상쟁(同族相爭)의 상처를 주제로 한 이 作品은
얼핏 보기에 반공사상을 고취하는 교육 극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학생 劇으로 자주 공연된 바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그것을 넘어선 하나의 人間性의 구원을 고창하려는데
그 주제를 두고 있다고 하겠다.
다만 연극적인 효과를 노리기 위해서라지만 바보스러운 '만석' 이라든가
그의 어머니 '천 과부'를 등장시킨 점은 재래식의 극적 흥미를 노린 듯한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에서 생생하게 느껴지는
전쟁의 비극은 우리에게 소박한대로의 감동을 안겨준다.

서울 출생. 연극현장에서보다는 대학 강단에서 주로 활동하였던 연극인이다.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영문과에서 셰익스피어와 영미 희곡을 주로 공부하였다. 대학 졸업 직후 중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는 한편, 극작과 연출에 간간이 참여하기도 하였다. 1943년에 극단 성군(星群)에 참여하여 처음으로 「신곡제」(김건(金健) 작)라는 작품을 연출하여 연극 경연대회에 참가한 데 이어, 1945년에도 「달밤에 깃든 산길」(송영(宋影) 작)을 연출하여 연극 경연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연출가보다는 극작가이기를 고집하였는데, 1934년 월간 『신동아』에 단막극 「어머니」를 발표함으로써 일찍이 극작가로 입문한 바 있었다. 따라서 광복 이후에는 대학의 영문학 교수로서 셰익스피어와 영미희곡론을 강의하면서 희곡창작과 번역에 주력하였다. 작품 수가 적긴 하여도 죽기 전까지 꾸준히 발표하였는데, 광복 직후에 무대에 올려진 장막극 「전원비곡(田園悲曲)」을 비롯해서 「청홍소동」·「교류」·「전유화」·「신바람」·「초립동」 등을 발표한 바 있다. 창작과 함께 각색과 셰익스피어 번역에도 주력하여 「여성전선」·「자유부인」·「금삼의 피」등을 각색하였고, 「햄릿」·「리어왕」·「오셀로」 등을 번역하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은 대체로 그리스 비극의 영향을 받았고, 그렇기 때문에 정통적인 극술을 구사한 것이 특징이다.비록 부산대학교를 비롯한 동아대학교·국제대학 등 교직에 봉직하였지만, 연극계의 이면에서 도움을 적잖이 준 연극인이다. 즉, 극단 신협이 피난시절에 크게 활약할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원인 중에 한노단의 후원은 무시 못할 것이다.영문학자로서 희곡이론에도 밝아 『희곡론』(1973)이라는 저서를 내놓은 바 있다. 프라이타크의 『희곡의 기술』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이는 이 저서는 신극사상 최초의 본격 희곡개론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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