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이 오르고 처연한 곡조에 따라 남사당패의 행렬이 이어진다.
고단하고 힘든 인생을 묵묵하게 걸어가는 남사당패의 모습.
그리고 우리 악기와 우리 가락으로 들려오는 귀에 익은 아름다운 선율들.
어린 덕이가 꼭두쇠 김노인에게 어름을 배우고 있다. 그녀는 자꾸 줄타는
것이 무섭다고 하면서 안 하겠다고 한다. 이에 김노인이 대답한다.
“하늘이 받아주는 날까지 육신의 재주를 다하여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위로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 우리 남사당인 게여.”
어느 새 장면이 전환되고 바우덕이는 줄타기의 고수로 성장했다.
바우덕이는 하늘 가까이 놓인 줄 위에서 줄을 탄다. 마치 춤 추는 것만 같다.
그러다가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갈 것만 같다. 바우덕이는 피나는 노력을
통해 육체를 단련해 최고의 장인이 되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마침내
하늘에 오르는 경지에 올랐다. 그녀는 예술이 뭔지를 몸으로 체득해버린 것이다.
그녀는 정착해 편안하게 살라고 제의하는 부잣집 도령의 구애를 뿌리치고
남사당패에서 머물기 위해 나이 많은 경화에게 시집을 간다.
그리고 마침내 여자 최초로 꼭두쇠가 된니다. 그녀가 꼭두쇠가 되던 날
남사당패 식구들, 아니 이 나라 모든 예인들에게 말한다.
“우리 모두 우리가 하늘나라의 사람이었음을 애써 믿읍시다.
그리고 다짐합시다. 남들이 우리를 비웃으면 우린 더 크게 웃읍시다.
우리가 배고프고 고달프면 주린 배를 신명으로 채웁시다. 그래도 서럽고
괴로우면 징을 치고 꽹과리를 울리고 신명으로 신명으로 한바탕 놀아봅시다.”
바우덕이가 이끄는 남사당패의 현실적 삶은 비참하고 비루하다.
높은 예술적 경지를 이룩했음에도 불구하고요. 더욱이 남사당패가 추구했던
리 가락, 우리 신명, 우리 춤, 우리 놀이는 개화바람에 휩쓸려 현상 유지조차
힘들어진다.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고. 하지만 바우덕이는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지켜나간다. 그리고 회의주의와 패배주의에 사로잡힌
이 나라 지식인 젊은이 봉섭이에게 민중의 삶과 함께하는 예인의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한밤중에 줄을 타다 목숨을 잃는다.
그녀는 죽으면서도 “남사당을 없애지 말아주세요”라는 당부를 한다.
그 숭고한 희생과 마지막 당부는 화인(火印)처럼 우리 마음에 새겨진다.
슬픔에 잠겨 있던 남사당패는 곧 정신을 차리고 함께 힘을 합쳐 바우덕이가
저승 가는 길에 춤추며 가라고 장단을 맞춘다. 풍물소리는 슬픈 곡조에서
어느덧 흥겨운 곡조로 바뀌고 바우덕이는 하늘로 승천한다.

<남사당>을 구상한 것이 70년대이니 거의 20년도 넘게 내 머릿속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심우성 선생의 저서 ‘남사당패연구’에 소개한 1900년 초에 존재했던 안성 개다리패의 꼭두쇠이던 바우덕이를 소재로 작품을 쓰기로 하고 심선생의 조언을 얻어 이 작품이 탄생했다. … 내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의 전통유산으로 남사당이란 광대패거리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소개하려는 것이 아니라 광대란 누구인가? 더 나아가서 예술가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란 물음을 묻기 위한 것이다. 세속적인 편안한 삶을 외면하고 고난의 삶을 택한 사람들, 놀이판에만 서면 신명이 나는 사람들, 세속적인 인연에 매이고 싶지않은 사람들… 그래서 땅에 발을 딛지 못하고 항상 하늘을 향해 붕 떠있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광대이고 오늘날의 배우가 아닐까? (극작가의 말 中, 윤대성)

<남사당의 하늘>은 우리나라 유일의 유랑연예 집단인 남사당의 첫 여성 꼭두쇠인 바우덕이의 일생을 통해 그들의 삶의 애환을 밀도 있게 그린 작품이다. 작가는 민중놀이의 전통을 마지막까지 이어온 안성 먹뱅이 남사당패의 생활상과 그들의 예술혼을 통해 민중 속에 살아 숨 쉬는 전통놀이의 예술성과 그 가치를 가늠해 보고 남사당의 여섯 가지 놀이 (풍물, 버나, 살판, 어름, 덧뵈기, 덜미)를 연극적으로 재현하면서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예술가들이 추구해야 할 정신적 목표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 여러 기록이나 자료를 살펴보면 그들의 유랑은 소위 역마살이라고 하는 운명적이거나 본능적인 심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한 신념과 소명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남사당의 그러한 정신을 보다 선명하게 표현하기 위하여 몇가지의 설정을 하였다. 그들이 하늘에서 죄를 짓고 인간세계로 하방되었으며, 고통을 인내하며 그들의 역할을 다 하였을 때 다시 하늘로 갈 수 있다는 전설을 그들이 믿고 있다는 설정과 그들이 어렵게 익힌 재주를 결코 자신을 위하여 쓰지 않고 남을 위해서만 쓴다는 설정이 그것이다. 나는 남사당의 소멸적인 쇠퇴를 남사당의 비극으로 보지 않는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에서 비극이 거의 불가능해진 이 포스트모던한 시대에 <남사당의 하늘>은 장엄과 숭고로써 비극을 소생시키려는 의미있는 시도이다. 바우덕이의 영웅적인 죽음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미추의 남사당패들이 한판 신명나는 풍물로 그녀를 배웅하는 마지막 놀이가 바로 그 증거다. 정과 동, 완과 급을 적절히 구사한 손진책의 선굵은 연출, 김종엽, 김성녀, 윤문식 등 미추의 텃광대들의 중후한 연기와 40여명에 달하는 출연진들의 전문적인 기예, 기능과 미학을 겸비한 윤정섭의 무대 등은 좋은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그러나 인간 바우덕이를 충분히 살리지 않고 예술가 바우덕이의 모습만을 확대투사하여 그녀가 부르짖는 예술정신에 믿음이 실리지 못한 것은 이 극의 가장 큰 결함이다. 간간이 남사당패라는 주어진 상황을 이탈하는 언어, 회전무대를 똑같은 방법으로 반복사용하는 블로킹, 애정삼각관계의 평면적인 전개로 인한 극적갈등의 취약성 등 또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겠다. (한국일보 1993년 6월 23일, 김윤철) …

이 작품에서 인물의 가장 큰 성격적 비중은 남자들만으로 구성된 연희집단을 여사당 조직으로 변모시킨 전설적 인물인 바우덕이(김성녀)의 자유로운 예술정신에 있다. 물론 그녀를 떠받들고 있는 것은 유랑 예인 집단 남사당패거리이다. 그들이야말로 자유로운 예술정신의 구현자이다. 그런 의지를 뚜렷이 하지는 못했지만 그들 예인 집단은 예능기술을 팔아 예술정신과 만난다. 예술의지의 전단계로서 그런 예인 집단의 인물에 조명을 들이대는 작가정신과 연출의지는 아직 규명되지 못하고 있는 전통연희의 핵심적 정신세계를 겨냥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뉴스메이커 1993년 9월, 이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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