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정경환 '이사 가는 날'

clint 2015. 11. 7. 11:19

 

 

 

 

 

그날 우리는 설렘이 있고 새로운 각오가 함께하며 꼭 버려야 할 것이 있다. 그리고 신주단지처럼 빼놓지 않는 그 무엇은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길래 이고 지고 꼭 갖고 가는 것일까? 위급한 상황에 처한 부모는 아들의 빌라로 집문서 땅문서 솥단지까지 챙겨 이상한 이사를 감행한다. 그동안 인맥관리 돈의 위력을 발휘하며 형편이 나아질 때 마다 아버지 가족은 호화롭고 큰 새집으로 이사를 다녔다. 질퍽하고 굴곡 깊은 시대를 살아남으려고 꽤 자주 비굴하게 타협하며 양심을 팔아야 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부끄러워하는 딸. 배우지 못한, 하지만 귀신도 부릴 수 있는 돈의 힘인 아버지의 능력에 힘입어 치마 바람 날리며 아들을 위해 힘써보지만 엄마의 뜻대로 되지 않고 골머리를 앓게 하는 아들은 오히려 아버지 집 금고 털기까지 시도한다.
"이렇게는 안 산다" 학력 높은 친구임에도 가난한 농사꾼이 된 친구가 말하는 양심의 소리는 멍멍 개가 짖을 때마다 상처가 되어 끊임없이 아버지를 괴롭힌다. "그냥 이렇게 살면 세상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는 친구 "잘난 체 하지마라" 로 항변하는 아버지. 둘의 깊은 우정의 갈등은 어떻게 해결될까?
작품속의 아버지는 자연을 보며 말한다. "이것 봐라... 그 바람에도 안 떨어지고 붙어있는 거" " 버려야 새기 들어오지!...여가 마지막 우리집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사 몇 번 다닜노?" 아버지의 마지막 이사 가는 날! 우리가 진심으로 기꺼이 축복할 수 있음은 생명이 있는 우리들 가슴 속에 쉬지 않고 흐르는 양심이 있기 때문이 분명하다. 이번에는 무엇을 버릴까? 뭘 꼭 지니고 갈까? 살면서 수십차례 우리의 양심이 이사가는 모양새도 사뭇 흥미롭다.

 

 

 

연극 '이사 가는 날'은 1960년대에서 1980년대를 관통하는 고도성장 과정을 판이하게 살아온 두 가족의 이야기다. 한쪽은 양심을 지키면서 살았고 다른 한쪽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잘 먹고 잘 사는데 주력했다. 연출가 정경환은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기성세대는 뒤를 돌아볼 기회가 없었다"라며 "작품을 통해 고도성장의 빛과 그늘을 말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별다른 기교를 활용하지 않고 스토리 위주로 극을 이끌어 간 것도 고도성장의 명암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다.
'이사 가는 날'은 굴곡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양심을 팔아 호의호식한 아버지, 그 돈의 위력으로 치맛바람을 날리는 어머니, 부모의 금고를 탐하는 아들로 구성된 가족과 양심을 지키기 위해 농사꾼이 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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