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위기훈 '인간대포 쇼'

clint 2015. 11. 6. 22:22

 

 

 

이 연극은 고교 불량학생 서클과 관련된 폭력, 따돌림, 갈등, 자살 등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청소년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가 극의 대사 속에 표현되기에 “일진”, “셔틀” 같은 표현이 낯설 수도 있으나, “일진”은 불량소년의 우두머리를 지칭하는 말이고, “셔틀”은 빵 심부름이나, 담배, 돈 같은 걸 심부름하는 무리라는 뜻임을 알면 이해하기 쉽다.
현재 사회적으로 교육적으로 중시되고 있는 학교 불량서클과 연관된 제 문제가 일일이 극의 내용으로 전개되고, “일진”에서 “셔틀”로 추락하는 과정과 문제학생의 자살이 극의 마무리가 된다. 특히 색맹이나, 색약 같은 유전인자가 극에 내용에 포함이 되고, 패션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이 자신이 색맹임을 안 후 부모를 원망하고, 절망과 함께 삶 자체를 포기하는 장면은 충격적이기도 하다. 남녀학생으로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가 실제 고교생과 방불(彷佛)해, 관객의 폭소와 갈채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셔틀’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졌다. 흔히 심부름하는 사람이나 그 행위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 쉽게 쓰이는 이 단어는 사실 학교 폭력에서 비롯됐다. 학교 내 강자인 ‘일진’이 대체로 자신보다 약한 학생들을 시켜 매점에서 빵이나 음료수를 사오게 하는 데서 생긴 단어다. 셔틀이라는 개념은 ‘빵 셔틀’에서 ‘게임 셔틀’, ‘담배 셔틀’, ‘와이파이 셔틀’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하며 확장됐다. 이는 폭력을 심화하는 동시에, 사람들로 하여금 폭력을 장난의 일부로 여기게 만들었다. 연극 [인간대포 쇼]는 셔틀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 난무하는 폭력을 무대에 담아냈다. 교내 셔틀들의 애환을 담았다. 연극은 이름보다 셔틀로 불리는 게 익숙한 세 학생이 모여 고민을 토로하며 시작됐다. 각각 ‘빵’, ‘폰’, ‘저그’로 불리는 누리와 은찬, 호진은 일진 학생들의 강요에 의해 그들에게 빵을 사다 주고 휴대전화를 빌려주거나 온라인 게임 순위를 올려주며 괴로워했다. 돈과 시간을 뺏기는 것은 물론, 선생님에게 걸려도 일진보다 되레 셔틀이 ‘추락’하는 모순된 상황에 놓인 갑갑한 모습이었다. 학생들이 보는 어른들의 사회는 학교와 다를 바 없었다. 비서는 사장의 셔틀, 축구선수는 구단의 셔틀, 점원은 사장 혹은 손님의 셔틀. 어른들은 학교 폭력을 보며 혀를 끌끌 차지만 그들의 세계 역시 일진과 셔틀로 구성된 폭력 사회에 지나지 않았다.

 

 

 

학교와 사회 속 대비되는 강자와 약자의 관계 역시 흥미로웠다. 학교에선 진호가 일진, 호진이 셔틀이었지만 사회에선 구둣방을 하는 진호 아빠가 셔틀, 돈 많은 사모님인 호진 엄마가 일진이었다. 돈이 주먹을 대신하는 사회의 모습이다. 일진 진호와 셔틀 호진의 관계가 전복되며 호진이 강자로 올라서는 지점도 결국은 돈이었다.
일진 진호에게 당한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은 진호의 약점을 잡아 한순간에 그를 왕따 셔틀로 전락시켰다. 강자의 위치에 선 이들은 당한 만큼 돌려주리라 마음먹은 듯 한층 더 악랄한 폭력을 행사했다.
무대 왼쪽에서부터 천장을 향해 길게 쌓아올린 책걸상과 오른쪽 뒤편 철장 안에 마구잡이로 쌓인 책걸상들이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 사이를 오가는 학생들의 잔인한 폭력 현장이 강렬한 록 음악과 함께 무대 위에 처참하게 드러났다. 강자와 약자의 권력관계가 전복되는 상황은 다소 위험해 보였다. 사연을 지닌 가해자 진호가 피해자로 전락하고, 새롭게 강자로 올라선 호진이 다시 약자가 되는 역전의 서사구조였다. 그 역지사지의 메시지가 못내 불편함을 남겼다. 폭력 근절의 이유가 ‘언젠가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로 해석되거나, 가해자를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극 중간 중간 삽입된 인물들의 꿈에 관한 이야기는 청소년들의 공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우린 죽고 싶은 게 아니야!”라는 학생들의 외침이 짠하게 와 닿았다. 일련의 퍼포먼스 끝에 학생들은 자신의 꿈을 하늘에 쏘아 올렸다. 메시지는 의미 있었지만 학교 폭력과 꿈 사이 연결고리는 다소 미약하게 느껴졌다.
작품은 청소년 극으로 분류되지만 사회의 어른들로 하여금 성찰의 기회를 마련하게 했다. 극 중 학생들의 입을 빌려 어른들의 모순적인 태도를 비판했다. “고자질은 나쁜 거야” 같은 가르침으로 피해자가 빠져나갈 구멍마저 막아버리는 어른들은 해결 방법을 강구하기는커녕 폭력을 심화할 뿐이다. 인물들은 사회를 답습한 학교 폭력을 방관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이야기했다. 처참한 폭력의 광경에 웃음을 터뜨리는 관객의 모습은 사회를 돌아보게 했다. 사회가 폭력에 얼마나 둔감해졌는지, 그 구성원들이 폭력을 얼마나 내면화해왔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셔틀이라는 이름 아래 왕따와 폭력이 일종의 장난처럼 여겨지는 상황이 씁쓸함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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