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존의 역사극은 거의 통념적인 야담 식 기승전결의 스토리텔링이 위주였고 그런 형식적 구조나 내용을 담은 주제도 권선징악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었다. 그런데, 하유상의 희곡 〈꽃 그네〉는 그런 역사극의 고정관념을 깨고, 역사적인 인물의 의식구조와 심층심리를 해부한 이례적인 작품이다. 부제인 '배교'의 사전적인 의미는 '믿던 종교를 배반함'으로 풀이하고 있다. 따라서 기존 역사극의 선입감을 가지고 이 희곡의 얼게를 열면, 그 종교를 믿게 된 동기에서 사건이 발단되어, 어찌어찌 전개되다가 어찌어찌 그 종교를 배반하게 되었더라 하는 식으로 엮어 나갔어야 했다.

그러나 이 희곡은 그런 예상을 뒤엎고, 그 구조와 형식면에서 순서가 뒤바뀌고 있다. 무릇 희곡의 평가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논의되는 최근까지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주장한 '삼위일치 법칙' 준수 파와 '반 아리스토텔레스 파'들의 개방론 간의 변증법적인 갈등으로 이어져 왔다.
우선, 이 희곡은 구조상으로 보아, 그 극적 시간, 공간, 사건 등이 통제되거나 제약된 것이 아닌, '반(反) 아리스토텔레스' 식으로 그 개념이 개방되고 확대된 얼게다. 그것은 이 희곡이 장막이지만 단일화한 무대가 아닌, 13장면으로 나뉘어졌고, 또 그 주제도 통일되거나 단일화된 것이 아닌, 복합 주제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이 희곡의 서두는 '대원군 시대(1866년)의 천주교 순교'에 관심을 가졌던 젊은 극작가인 '나'에게, 어느 미지의 여성으로부터 우송되어 온 옛 글월 '배교기'가 소개되고, 이어서 천주교 탄압으로 지명 수배된 사대부 집 출신의 김요한이 피신한 어느 시골 장면부터 소개된다. 이렇게 시작된 이 희곡의 내용은, 청나라로 가는 사신의 수행원으로 북경에 갔다가 그곳에서 세례를 받은 김요한이 돌아와, 천주교 박해를 피해 다니던 중, 남사당의 한 패가 된다. 거기서 어름산이(줄타기)인 봉녀와 아름다운 사랑이 싹트게 되고, 봉녀도 가톨릭에 귀의케 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둘은 포도청에 잡힌다. 여기서부터 배교률 강요하는 갖가지 고문이 시작된다. 그것은 범죄 수사나 범죄 자백을 위한 고문이 아니고, 한 인간의 심충 심리뿐 아니라, 두 사람의 애정 관계와 천주님에의 믿음을 가늠케 하는 고문이었다. 그 중 감내키 어려운 고문은 두 사람을 합방시켜 성교를 유도하는 고문으로 그것은 남자인 김요한보다도 여자인 봉녀에게 더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끝까지 동정을 고집하는 김요한과 육체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봉녀에겐, 그녀가 김요한의 애정을 확인하는 계기는 될 수 있을지언정, 그것은 김요한으로 하여금 파계케 하는 것이 될 뿐 아니라, 결국 배교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허지만, 그런 참혹한 배교 고문과 인간적인 고뇌를 극복한 봉녀는 마침 내 위대한 사랑의 승리자가 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봉녀에게 가톨릭을 전도한 김요한은 그런 고문이 끝난 얼마 후 스스로 배교하게 되고, 그에 게서 전도를 받은 봉녀는 끝까지 가혹한 고문을 이겨내다가 결국, 애처롭게 순교하고 만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왜 김요한이 사랑하던 여인을 남겨두고 혼자만 배교했을까 하는 모멘트가 의문이다. 김요한이 믿음이 약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남자라서 여자보다 인내심 이 희박했기 때문일까? 결국,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그것은 김요한이, 자기 눈앞에서 포졸이 봉녀를 성폭행했을 때, 의당 그녀의 표정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오히려 그녀의 표정은 벅찬 희열과 이상야릇한 황홀경에 빠져들어가는 것을 역력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성경험이 없었던 김요한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성처녀같이 여겼던 봉녀의 그런 표정을 직접 목격했던 김요한은 극도로 환멸을 느꼈고, 무심한 천주님을 원망한 끝에 배교하고 만 것이다. 그렇게 김요한 자신이 배교했으면 그것을 물거품으로 돌릴 수도 있었을 터인데, 그는 왜 '배교기'를 써서 후세에 남겼을까?
그 이유가 바로 이 작품의 테마이고 또 하유상이 이 작품을 쓰게 된 중요한 동기가 되고 있다. 그것은 그토록 절망하고 자기 종교까지 배반한 김요한이 마지막으로 봉녀가 죽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비로소 자기가 경솔한 오해를 했고, 또 그녀의 심충심리를 깨닫기까지의 프로세스 속에 문제의 핵심이 있었다.
과연 문제의 황홀경에 빠진 그녀의 심충심리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마지막으로 봉녀의 목에 망나니의 칼이 스치는 순간, 갑자기 그녀의 표정에 나타난 변화 - 즉, 쾌감 어린 황홀경 속에서 그녀의 입을 통해 신음처럼 새어나은 '꽃 그네'라는 낱말 - 그 말은 김요한이 전에 봉녀에게서 들은 소녀 때 얘기 중의 한 낱말이었다.
그래서 김요한은 그때의 그 '꽃 그네'란 말을 상기하고 모든 오해를 풀 수 있었던 것이다.
'꽃그네'란 거의 봉녀의 잠재의식 속에 숨겨진 낱말로서 그 사연은 이미 봉녀가 김요한에게 고백한 사실이다. 즉, 봉녀가 열네 살 때, 무당인 어머니가 병석에서 몹시 앓고 있었다.
그래서 그 날 봉녀는 어머니 대신 새끼 무당으로 처음 참으로 푸짐한 굿을 했다. 무사히 굿을 마친 봉녀는 무당으로서의 최대의 영예인 꽃 그네를 타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런데, 때마침 어머니가 죽었다는 기별을 받는다. 그래도 그녀는 그 사실을 숨기고 꽃 그네를 타야 했다. 서럽디 서러운 비통함과 쓰라린 고통을 이기면서 봉녀는 마치 천신님을 뵈러 봉황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황홀한 기분으로 꽃 그네를 탔다. 봉녀는 그때의 그런 정신으로 그토록 참혹한 배교 고문을 이겨냈으며, 김요한에 대한 사랑의 정신적 승리의 증거로 그녀는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죽음을 초월했던 것이다.
그러한 봉녀의 심충심리를 이해한 김요한은 모든 오해를 풀고 '배교기'를 써 남겼던 것이다.
이 희곡에서 또 주목할 것은, 역사극에서 보기 드문 의식세계의 '마조히즘'이 단순한 성도착증으로 취급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숭고하게 사랑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이 작품의 테마를 미학의 경지까지 이끌어 올렸다는 점과, 더욱이 단일 주제 아닌 샤머니즘의 의식세계와 가톨릭의 의식세계를 복합시킨 주제 설정 등은 높이 평가될 만하다.

작가의 글
나는 왜 오래 전부터 작품화하려고 하나의 이미지를 늘 떠올리고 있었다. 그것은 흰옷 입은 젊은 여자가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되는 천주교의 순교의 이미지였다.
이 이미지는 어느덧 남사당패와 또한 우리의 무속 신앙과 연결되었다. 그리하여 그것을 소설로 쓴 것이 단편소설 〈꽃그네〉이다. 이 〈꽃그네〉는 1974년에 월간문예지 《한국문학》에 발표되었다. 이 소설은 나로서는 '수필소설'이란 내 나름대로의 첫 시도를 한 작품이기도 했다. 나는 왜 오래 전부터 소설과 수필을 절충해 보려는 시퉁머리터진 시도를 꾀해 왔다. 이를테면' '수필 형식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고 '소설 형식의 수필'이라고도 할 수 있는 형식이다. 물론 비중에 있어서는 소설 쪽이 훨씬 무겁지만, 작가로서 쓰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관념, 느낌, 기분, 정서 따위를 자유로이 표현하는 한편, 견실한 플롯으로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을 하자는 게 내 의도이다.
'수필소설'이란 용어 자체가 나의 임시 창안한 것으로 문학사전에도 없는 말이다. 비중으로 따진다면 '소설수필'이라고 소설을 앞으로 해야겠지만, 그러면 소설에 대한 수필이라고 생각하기 일쑤일 것 같아서 수필을 앞으로 했다. 수필에 대한 소설이란 좀체로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불교 경전이 으레 '이와 같이 내가 들었노라(如是我聞)'로 시작되는 것처럼 내 수필소설도 으레 'S는 젊은 소설가이다.'로 시작된다. 즉 S라는 젊은 소설가 입장에서 대상물에 대해 나름대로 정서를 느끼고 애기를 꾸미곤 하는 것이다.
S는 물론나의 입장이다. 그런데 왜 구태여 '젊은'이라고 못을 박았느냐 하면, 나는 비록 젊지 않지만,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다루는 입장은 항상 젊고 싶기 때문이다. 비록 작가는 늙어도 작품은 늙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굳은 신조이다. 젊음을 잃은 작품은 매력을 잃은 작품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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