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짙은 안개 속에 등장해 마주하는 두 인물 정철과 정극인의 이상향에 대한 정론이 부딪힌다.
불편한 심기를 달래고자 정자에서 가사를 읊는 정철 앞에 나타난 다헌이라는 인물과 가사를 주고받으며 격이 없는 우정을 트게 된다. 위험한 시기마다 나타나 정철을 생명을 구하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 다헌은 정쟁과 자신이 지켜야 할 선비정신에 대해 괴로워하는 정철을 위로한다. 점차 왕의 신임을 얻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때마다 나타나 다른 시각의 이상향을 논하며 두루 살피길 원하는 다헌과 정철은 정치가로서의 이상향에 대한 입장차이로 격론을 벌이고 멀어진다. 정철을 막으려는 갖은 위협을 이겨내며 추구하는 이상적인 정치에 날개를 달려는 시기가 오자 세자 책정을 주청 드리는 자리를 마련한다. 그러나 정철은 상대의 모략으로 낙향되고 권력과 정치의 한 켠으로 물러나게 된다. 마음속으로 그리던 이상향과 주군을 생각하던 충심, 그리고 백성과 나라를 생각하며 지키던 선비정신을 다잡으며 떠난 먼 여정 길에 벗이었던 다헌이 정극인 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충격을 받는데......
송강은 말년에 이르러서야 다헌의 정체를 깨닫고 경악한다. 다헌은 젊은 날 자신이 그토록 흠모했던 ‘상춘곡’(조선 최초의 가사)의 저자 정극인(1401∼1481)의 혼령이었다. “홍진에 묻혀 사는 사람들아 살아가는 내 모습 어떠한가/세상에 남자로 태어나 나만 한 사람 또 있을까.” 송강이 자신에 대한 자부심으로 읊었던 이 구절의 주인공이다.

이 작품은 조선왕조 선조시대 송강(松江) 정철(鄭澈)과 불우헌(不憂軒) 정극인(丁克仁)을 등장시켜 가사문학(歌辭文學)과 선비정신, 그리고 정치철학을 대비시키고, 당대의 정권장악을 위한 당쟁과 임진왜란 같은 국가적 변란 등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정철의 승승장구와 몰락을 시적 언어로 그려냈다. 송강 정철이 불우헌 정극인을 사숙했건 아니건 간에 이 극에서는 두 사람의 친교가 이루어지고, 함께 교유하는 장면에서는 반드시 백색착의의 아름다운 무희가 춤사위를 펼치고, 송강이 홀로 있을 때에는 흰 적삼에 붉은 치마를 입은 여인이 그를 가까이 모신다. 한때 그 여인이 자신의 접진 다리를 바로 잡아준 정극인을 찾아가기도 하지만 미모의 여인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그의 바른 자세에 질린 듯 여인은 송강에게 되돌아온다. 정극인은 정철에게 복술가처럼 일종의 예언을 하고, 그 예언이 맞아떨어지는 장면이 벌어진다. 정여립의 난과 기축옥사 당시 국문을 주관하던 형관으로 정철은 사건의 추국(推鞫)을 직접 담당하였으며, 기축옥사(己丑獄死) 수사 지휘의 공로로 정승의 반열에 오른다. 그러자 정극인이 정철의 추국중 가혹한 행위를 지적하니, 정철은 정극인과 의절(義絶)을 한다. 그러나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는 일에 연관되어 정철이 파직을 당하니, 정극인이 누구보다도 먼저 정철을 찾아온다. 두 사람은 서로 반기고 함께 술을 마셔 대취한다. 취중에 정철은 정극인을 따라 정극인의 고향도 불시에 방문한다. 술이 깨어 홀로 남은 정철에게 지인이 알려준다. 정극인은 정철보다 100여 년 전의 인물일 뿐 아니라, 가사문학의 시조 겸 대가이고, 정철이 불시에 다녀온 정극인의 고향은 수 백리 밖 전라도 땅이라 경성에서 금세 다녀올 거리에 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정철은 충격을 받고, 자신이 비몽사몽(非夢似夢)간을 헤매고 다녔다는 생각에 잠김으로써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100여 년 전의 인물과 당대의 인물을 동시에 등장시켜 교감토록 한 작품구성은 창의력 면에서 으뜸이라 평하겠다. 시적 언어에 무용을 가미시킨 것도 연출의 기량을 잘 드러낸 것으로 평가하겠다.

조선 가사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었던 정철이 겪는 조선 선조 때의 당쟁을 중심으로 극은 펼쳐진다. 이 연극은 가사 문학의 효시였던 정극인과 정철의 문학적 필치와 정치적 사상의 대결로 백성을 위한 참 정치는 무엇인가? 에 대한 갈등 구조를 이룬다. 시공을 초월한 판타지 연극으로서 역사적 사건에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되어, 정철, 정극인, 을화를 핵심 인물로 선조, 이산해, 유성룡, 이발 등이 사건의 중심에서 큰 갈등을 빚는다.
또한 여러 오브제(사물) 장치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미장센을 적극 활용하여 배우는 무대와 곳곳에 숨겨진 여러 상황적 장치를 공유해가며 사실주의적 기법보다 표현이 풍부하고 더 많은 상상의 여백을 가질 수 있는 표현 위주의 기법들이 펼쳐져 관객이 극중 시대 상황에 쉽게 몰입되어 이해를 높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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