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2008년에 하타사와 세이고가 도쿄에 있는 극단<스바루>의 공연을 위해 쓴 작품이다. 시내 한 가톨릭 계통 여자중학교를 배경으로 일본 사회의 이슈인 현실과 현대 사회의 병폐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의 원래 제목은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이다. 이 말은 일본에서 흔히 아이들이 잘못된 행동을 저질렀을 때 나무라면서 하는 말이다. 굳이 우리말로 의역하자면 '넌 집에서 뭘 배웠니?' 정도가 될까? '이지메'라는 청소년들의 현실과 밀착된 소재를 다루면서도 청소년들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게 이 작품의 특징이다. 어른들을 등장시켜 가정 내 어른들의 부재를 드러내고, 아이들을 등장시키지 않음으로써 아이들의 존재감을 더욱 강조하는 연극, 즉 어른들만 등장하는 청소년 연극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대는 가톨릭 계통 명문여자중학교 회의실. 이지메를 견디다 못한 여학생이 학교에서 아침에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가해학생으로 지목된 학생들의 부모들이 한두 명씩 회의실에 소집되면서 연극은 시작된다. 자살한 여학생이 자살 직전 담임과 다른 반 친구 등 4명에게 가해학생들의 이름이 적힌 편지(유서)를 보낸 것이 유일한 증거. 부모들은 “설마 우리 아이만은…”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잇달아 밝혀지는 진실을 외면한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단결'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끝내 아이들과 학교를 지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편지를 빼앗아 불태우는 극단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이러한 부모들의 얼굴을 통해 어른들의 부재라는 현대사회의 병폐와 일본의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들 한 명 한 명은 훌륭한 부모, 존경받는 사회인을 자처한다. 그러나 하나의 집단으로 분류되었을 때, 이들은 이지메의 가해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무서운 집단이기주의자들의 본성을 발휘한다. 부모들의 행동 속에 아이들의 모습이 투영되면서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 아이들의 캐릭터도 존재감을 얻게 된다.
막과 장의 구분, 암전도 없는 이 작품을 순식간에 읽어내려 가게 만드는 힘은 바로 서스펜스다. 하지만 이 작품이 공상추리소설이나 미스터리 작품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철저한 사회고발 연극이다. 그렇다고 일반적 인 사회고발 연극처럼 자극적인 상황설정과 감성적 호소, 과도한 교훈성과 메시지를 주장하지도 않는다. 반대로 지나치게 이성적이며 차분하게 전개되는 이 작품에서 극적 긴장과 긴박감을 조성하는 것은, 증거를 없애려는 자들과 그래도 계속 증거를 들고 찾아오는 자들 사이의 물고 물리는 관계다. 가해학생의 부모들은 증거를 불태워버리거나 심지어 집어 삼켜버리지만, 죽은 여학생의 편지는 마치 유령처럼 부모들이 모여 있는 회의실에 계속 날아든다. 다른 반 친구 가나코, 신문보급소장 엔도, 그리고 죽은 학생의 어머니 다마요의 손에 들려서 말이다. 가해학생의 부모들은 과연 어디까지 증거를 없앨 수 있을까? 물고 물리는 이 싸움의 마지막 승자는 누가 될까? 회의실이라는 고립된 공간과 이 공간을 압박해 들어오는 저항할 수 없는 힘의 대결이 바로 이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힘이다. 그리고 현직 고등학교 미술교사이기도 한 하타사와 세이고의 생생한 경험에서 묻어나오는 리얼리티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현실감을 부여한다.
일본에서 이지메가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은 1985년경부터이다. 그전에도 이지메는 있었지만 이 무렵부터 음침하고 폭력적인 경향이 짙어지기 시작한다. 그 행위도 폭력을 행사하는 육체적인 이지메에서부터 물건을 숨기거나 인터넷이나 핸드폰을 이용해서 거짓 소문을 퍼뜨리거나 집단적으로 외면하는 정신적 이지메까지 다양화됐으며, 부모나 교사가 모르는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 더욱 많아졌다.<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에도 나오지만, 특히 요즘엔 직접적으로 이지메를 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반 학생들 모두가 입을 맞춰 이지메를 방관하며 전체가 공범자가 되는 경향이 있어서 더더욱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를 뒷받침하듯, 일본 문부과학성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지메는 최근 들어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이지메 행위가 교묘해지고 집단화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하타사와 세이고는 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와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2006년, 후쿠오카 현에서 이지메를 당한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 자살했다. 이 사건에서 충격적이었던 것은, 가해학생들이 전혀 반성하지 않는다는 언론보도였다. 어떤 가해학생은 교실에서 “아아, 뒈져버렸군. 주물럭거릴 녀석이 없어져서 심심하네.”라고 말했다고 하며, 또 어떤 가해학생은 조문을 가서 관 속을 들여다보며 웃었다고 한다. 나도 교사이기 때문에 이지메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일이 얼마나 적은지 실감하고 있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사람이 죽었다면 뭔가를 느끼는 것이 정상 아닌가. 이것을 반드시 써야만 하겠다고 생각해서 이<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라는 제목을 정했다. 작품 속에는 실제로 내가 교사로서 학부모들한테 들은 이야기들이 많이 인용되고 있다. 초연을 보신 어느 관객에게서 "현실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라는 소감을 들었다. 시내 중학교 교사를 하고 계신 분이었다. 현실은 언제나 픽션을 앞서 간다. 이지메가 없어지는 날이 과연 올 것인가? 그건 알 수 없다. 그래도 교실을 뒤덮고 있는 슬픔의 안개가 하루라도 빨리 걷히길 바라마지 않는다.
한국에서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일본 언론이 이 현상을 떠들썩하게 보도했던 1990년대 후반이다. 그 후 한국에서도 일본 이지메와 비슷한 현상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괴롭힘', '따돌림'이라는 말이 생겼고, 요즘에 들어서는 합성어 불리고 있다. 왕따는 힘이 약한 아이가 정신적 또는 물리적인 보격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이지메와 공통되는데, 형태에는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이지메에 비해 왕따는 그 이유가 '가난하다', '뚱뚱하다', '키가 작다' 등 신체적 특징에 기인하거나,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갖고 있지 않다는 동질성의 결여에서 기인하는 등 확실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당사자에게는 이지메도 왕따도 마찬가지로 고통스럽고 가혹한 일이지만, 나라마다 그 나라의 정서, 사회, 가치관에 따라 표출되는 형태에는 차이가 있다. 또 중요한 것은 이지메나 왕따가 이제 학교만이 아니라 직장, 사회 등 다양한 집단 속으로 확산되며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한 특정한 집단 내에서 일어난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사회 어디에든 존재하는 인간과 사회의 일그러진 초상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소개 : 하타사와 세이고(畑沢聖悟)
1964년 일본 아키타 현 출생
1988년 아키타대학 교육학부 졸업
1991년 극단 〈히로사키극장〉배우로 활동
1995년 아오모리현립 아오모리중앙고둥학교 부임 (미술교사)
1998년 아오모리현 예술문화 장려상(문예) 수상
2000년 극단 히로사키극장에서《소명(召命)》작, 연출
2001년 작, 연출 《달과 소의 귀》가<시어터가이드>월간 베스트10 각본부문 1위 선출 2002 20이년 일본 인터넷 연극대상 및 우수 남우상 수상
2004년 2003년 일본 인터넷 연극대상 및 우수개인상 수상
2005년 《내 송장을 넘어가라》로 일본 극작가대회 단편희곡 콩쿨 최우수상 수상 극단<와타나베겐시로쇼텐>읍 창단
2008년《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쓰무야난보쿠상 후보작
하타사와 세이고는 자신이 태어나 자란 일본 동북지방을 고집하며 '지방에 사는 한 사람의 시선으로 일본사회를 바라본다.'는 관점으로 다채로운 연극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타사와 세이고가 연극을 처음 접한 것은 농구선수로 활약하던 고등학교 시절에 본 만화 《유리가면》이었으며, 이 만화를 보고 연극이 생각보다 쉽고 자신이 연극이라는 표현방식에 맞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고 한다. 대학입학 후 바로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 활동했으며, 졸업 후에는 지방극단이면서도 이미 도교에서 인정을 받던 히로사키 극장에 입단하여 배우로 활동했다.
그의 글쓰기는 먼저 라디오 드라마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95년부터 아오모리방송국 연속 라디오 드라마의 성(城) 이야기》를 맡았으며, 2011년 현재 3500회를 넘는 장수 프로가 되었다. 《위신의 크리스마스》, C슈상과 슈짱과 바밖키 열차》, 《기적은 성스러운 밤에 울린다》 등ㅇ에서 방송 비판 간담회 갤컥시대상 라디오부문 최우수상, 문화청 예술제 대상, 일본민간방송연맹 상 라디오 엔터테인먼트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또 그는 아오모리중앙고둥학교를 이끄는 뛰어난 연극반 지도교사로서도 알려져 있다. 일본에선 고둥학생 연극이 활발해서 그 전국대회인 '전국고등학교 연극발표대회'는 스포츠 대회 못지않게 열정적이며 유명하다. 하타사와가 지도하는 아오모리중앙고둥학교는 이 대회에서 우수상과 문화청 장관상을 몇 번 수상했으며, 200년에는 한국청소년연극제에 초청을 받아 서울에서 대표작 《수학여행》을 공연했다. 이 공연은 고등학생이 처음으로 해외에 초청을 받은 쾌거라 하여 화제가 되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하타사와 세이고의 이름은 이미 연극계에서도 알려져 있었지만, 그가 극작가로서 인정받게 된 계기는 2005년에 《내 송장을 넘어가라》로, 일본극작가대회 단편희곡 콩쿠르 최우수상을 수상한 이후였다. 그때까지 주로 자신의 극단과 학생들을 위해 작품을 썼다. 도쿄의 극단 〈스바루(해)〉에 《고양이의 사랑, 묘성은 하늘에 다 오르다》(06),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08), 《이노센트피플》(100 을, 일본 신극을 대표하는 극단<민게이>에 《신의 사랑》(11) 등의 작품을 제공하며, 현재 일본에서 가장 장래가 기대되는 극작가로 성장했다. 또 2010년에는<부산시립극단>에서 일반 시민이 재판에 참여하는 일본의 재판원 제도와 사형 제도를 다룬 《동토 유케》(김광보 연출)가 공연되어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이 작품은 만화로도 만들어져 주간지에 게재되는 등, 연극뿐만 아니라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으로 화제가 됐다.
연극을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도쿄를 지향하거나 도쿄에서 활동하기를 꿈꾼다. 그런데 하타사와 세이고는 굳이 지방을 고집하며 활동하는 또 다른 연극인으로서의 삶의 모델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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