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베쓰야쿠 미노루 '나무에 꽃 피다'

clint 2015. 11. 6. 13:01

 

 

 

 

 

작품해설
베쓰야쿠 미노루의<나무에 꽃 피다>는 등교 거부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공통하는 소재라고는 해도 그 표현 방법은 더 심각한 인간관계를 완벽에 가까운 견고한 세계의 결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고등학생이 할머니를 죽이고 자살한 현실의 사건을 발상의 근원에 두고 있지만, 그 사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이 작품에서는 베쓰야쿠 미노루의 풍경을 상징하는 전봇대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무대 중앙에는 꽃이 만발한 벚나무가 서있다. 그 아래 붉은 양탄자를 깔고, 노파가 붉은 칠을 한 상을 앞에 두고 술을 마시고 있다. 전봇대가 갖게 해주는 자연스러운 일상공간에 비하여,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벚나무는 화려하다 못해, 마치 미친 듯, 생생하게 불안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노파가 말하듯이, 꽃은 "미쳐서, 자신도 주체 못해서 피는” 것이고, "사람은 모두 꽃나무가 이처럼 미쳐야만 한다는 걸 견딜 수 없어서” 술을 마시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른쪽에 어울리지 않는 옷장이 하나 놓여 있는 것이, 이 풍경에 기이한 비현실성을 보여주고 있다.
"좋은 날씨야. 마치 온 세계가 발광이라도 한 것처럼 한가롭고…. 요시오, 그래…, 넌 병이었어.…. 난 벌써부터 알고 있었지…. 네 머리는 하얗고 부드럽고, 아주 작은 바람에도 두려워 떨었지….”하고 노파가 손자를 생각하는 독백으로 시작되어,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면, 노파의 기억 속에서, 옷장 안에서 머리에 붕대를 감고 책가방을 둘러맨 초등학생인 남자1이 나온다. 노파는 학교에서 계단에서 굴렀다고 하는 손자를 무릎에 누이고, "이 할미는 다 알고 있으니까…. 네 등을 밀어서 계단에서 떨어트린 것이 누구란 것도….”하고 부드럽게 말한다. 이윽고 날이 저물고, 옷장 속에서 남자2와 여자1이 나타난다. 노파의 딸과 그 남편이다. 손자의 머리에 난 상처에 대해 두 사람을 책망하는 노파에게, 여자1은 요시오가 친구들을 고자질하는 버릇이 있고, 모두가 싫어해 사이좋은 친구가 없다고 하지만, 노파는 "요시오한테 친구가 없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렴. 그건 저 애를 나약하게 만드는 거란다.”하고 단호하게 말한다. 다음에 노파 앞에 나타나는 남자1은 중학생이 되어 있다. 누군가가 일기를 봤다고 소리 지르고, 엄마를 의심하는 남자1에게 노파는 "내가 읽었다."고 태연하게 말하며, “왜라니? 할미는 말이야. 네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야….” 하고 당연한 것처럼 말한다. 초등학교에서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하는 것도, 중학교에서 노트가 찢겨지고, 책에 낙서가 되어 있었다고 한 것도 다 거짓말이고, 모두 자신이 한 짓이라고 말하는 남자1을, 노파는 발로 차고, 자로 때리면서 야단을 치며, 그것은 친구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거짓말이었다고 말할 것을 강요한다.

 

 


벚나무 아래를 흐르는 노파의 추억의 시간을 재구성하여, 이 가족의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방법은 멋지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시간 속에는 죽은 남편인 남자3도 몇 번인가 등장한다. 노파는 그 남자3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아버지는 함께 입사한 동료가 먼저 과장이 되어도, 과장이 되는 것은 조금도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었지만, 남자3도, 사위인 남자2도 같은 타입의 남자인 것을 탄식하며, 요시오만큼은 그러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지 않다고 한다. 노파는 자신의 집안 대대로 이어진 남자들의 유약함을 미움하면서 살고 있다. 그녀는 사는 것과 미워하는 것은 같은 것이고, 모든 기대를 걸고 있는 손자를 고독한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인간으로 키우기 위해, 미움 심을 심어주려고 했던 것이다.
인간이 왜 사는가를 묻는 것이 거의 의미가 없는 것처럼, 왜 미움 하는가 하는 것에도 결코 해답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노파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만이 자신을 강하게 지탱해주는 힘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가정에서 할머니와 손자와의 관계만이, 그것도 맹목적인 사랑이 아니라 속박의 부드러움과 엄격함에 의한 관계만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가정 전체의 구성이 붕괴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극도의 긴장으로 요시오는 학교에서 가끔 쓰러지게 되고, 양친은 어떻게든 생활을 개선해보기 위해 노파와 별거를 하는데, 노파가 벚나무 아래서 개미를 젓가락으로 잡아 죽여서, 병 속에 넣고 있을 때, 고등학생의 모습을 한 남자1이 멍한 표정 으로 나타난다. 노파가 손자에게 개미를 죽이는 방법을 가르쳐주며, "그렇단다. 그러니까 내년이 되면 또 죽이는 거야. 알겠지? 요시오…. 이긴다는 건 그런 거란다. 한번 이기는 것으로 다 이겨서, 그래서 그걸로 끝 이라는 건 없단다.…”고 말하는 장면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노파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정적 속에 감추어진 무시무시함을 느끼게 한다. 남자1이 노파의 말을 들으면서 말없이 가버린 뒤’ 전화벨이 울리고 노파는 옷장 속으로 사라진다. 노파가 벚나무 아래서 없어지게 것은 이때뿐인데, 옷장 속에 들어가기 전부터 노파의 전화 목소리가 들리고, 요시오가 개미을 죽이는 것을 도와준 날부터 학교에 가지 않게 된 것을 알게 된다. 노파의 전화통화를 하는 것을 듣고 있는 남자2는 돌아온 노파에게 요시오가 등교거부를 하게 된 이유를 말하고, 요시오가 친구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웃을 수 있도록 태도를 개선하도록 타일러 달라고 부탁하지만, 노파는 남자2에게 심한 욕설을 하며 쫓아버린다. 아들을 어떻게 하지 못하는 부부는 다시 노파와 동거를 한다. 그리고 노파는 칼을 들고 행패 부리는 남자1을 무릎에 누이고 타이른 뒤, 칼 로 찌르고 싶은 상대가 있다면 누구라도 찔러줄 테니, 같이 가자고 남자1의 뒷덜미를 붙잡고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반 친구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내일부터 학교에 가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남자1이 사라진 뒤 노파 남자2에게 말한다. “물론 자네뿐이 아닐세.…. 세상에는 "저는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라든가, “저는 경멸 당해도 상관없습니다.” 라든가, 하는 인간들이 많지…. 그런 인간들이 모두 요시오의 미움을 갈 곳 없게 만들고, 오히려 부드러운 솜으로 입을 막듯이 지금 요시오의 목을 조르려고 하고 있는 거라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뜻밖의 사건이 일어난다. 조용히 혼자 중얼거리는 노파에게 황급하게 나타난 여자1이, 학교 교실에서 일어난 도난 사건으로 요시오가 "내가 훔쳤다”는 말을 남기고 나간 뒤, 돈은 도난을 당한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둔 것을 착각한 것을 알았다고 전한다. 왠지 아랫배를 움켜쥐고 고통을 참고 있는 듯이, 노파는 "요시오, 너무 큰 착각을 했구나.….”라고 말한다. 요시오는 자신의 미움을 확실한 형태로 하기 위해, 범죄자가 되는 길을 선택했지만 그조차도 멋지게 빗나가 버린다.
그러나 큰 착각을 한 것은 요시오만이 아니다. 요시오에게 찔린 할머니도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요시오에게 아버지를 미워할 것을 가르쳐 온 노파는 요시오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러 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시오는 단지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하고 만다. 실려 온 시체를 앞에 두고 노파는 말한다. "가엾어라…. 아, 가엾은 것. 우리 요시오…. 그렇지. 넌, 넌 이제 다른 어떤 사람도 해칠 수 없도록 너 자신을 죽여 버린 게로구나…. 이제 어떤 사람도 미워할 수 없도록….”
여자1과 남자2는 그제야 노파가 찔린 것을 알고 놀라지만, 미움에 의지하며 살아가기에는 너무도 연약하여 자멸의 길을 걸어간 소년은, 자신을 덮어씌워 일체화한 할머니가 이제 아무도 미워하지 않아도 되도록, 함께 죽으려고 한 것이다. 뒤집어서 말하면, 소년이 미워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과 할머니뿐이었다는 것이 되는데, 이러한 행위에는 구원의 여지가 없다. 텔레비전 드라마가 사랑을 앓고 있는 가족을 다루었다면, 여기에는 미움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제 마음이 편안해진다. 마치 기력이 멀어지는 거 같구나. ….”라고 하는 노파에게 꽃잎이 떨어진다. "벚꽃아, 벚꽃아" 노래는 수라에서 괴로워하는 노파의 혼을 달래기라도 하듯이 흐른다. 투명한 아름다움의 저 깊숙한 곳에서 현대를 사는 인간의 붕괴감각이 밀려오는 것만 같다.

 

 

베쓰야쿠 미노루
1937년 만주 신경 출생. 와세다 대학 정경학부 정치학과 중퇴. 나가노 고등학교에서 도스토예프스키 연구회와 성경 연구회를 다니고, 대학에서는 카프카와 베케트와 이오네스코 등의 연구회에 참가한다. 한편 리얼리즘 연극의 주류인 학생 극단 '자유무대'에 들어가, 연극의 제작과 무대감독을 경험한다. 1960년 안보 반대 투쟁과 니지마 기지 반대투쟁에 참가한다.<빈방 있어요>(1958) 《A와 B와 한 여자>(1961)를 발표. 와세다 중퇴 후에는 노동조합 서기로 취직. 1962년’ 스즈키 다다시와 오노세키 등과 함께 신극단 '자유무대'를 결성하고, 첫 공연작으로<코끼리>상연. 《고도를 기다리며>의 영향으로, '일상성 속에 있는 비일상의 발견'을 추구하며, 반리얼리즘 연극운동을 전개. 스토리 성을 배제한 연극에서 출발했지만, 스토리를 풀어내는 모색의 시기를 거쳐서 ,《이동》 (1973)을 계기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스토리에서 해방된 독자적인 언어표현을 갖는 세계를 구축한다. 
<성냥팔이 소녀>로 기시다 희곡상(1967)을,<살랑살랑 족의 반란》으로 예술상 신인상 (1971)을, <세상을 편력하는 두 기사이야기〉로 요미우리문학상(1987)과 예술선장 문부대신 상(1983)을 각각 수상하였다. 100여 편이 넘는 작품 가운데,<나무에 꽃 피다>(1980)는 그가 가상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던 시기의 작품이다. 학교폭력과 가정 내 폭력사건이 빈발하여 문제의식과 위기의식을 느끼게 하였던 사회현상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당시의 일본인 뿐 아니라, 오늘의 우리도 공감할 수 있는 일반적이고 현실적인, 그리고 구체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 방법은 역시 베쓰야쿠 특유의 것이다. 그 이전에 주로 사용하던 전봇대를 대신하여, 여기서는 활짝 핀 벚나무를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활짝 핀 벚나무는 이 세계를 미친 것처럼 보인다. 전봇대와 같은 일상적인 공간이 아닌, 미쳐버린 일상으로의 변모, 색체가 느끼게 하는 비주얼한 공간의 설정, 무언가가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내적인 필연성을 느끼게 하는 예감마저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벚꽃아, 벚꽃아>를 느린 선율로 하여, 격앙되어 있는 시각적인 분위기와 대비하여 균형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