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시미즈 구니오 '까마귀여 우리는 탄환을 장전한다'

clint 2015. 11. 6. 12:58

 

 

 

 

 

극작가 기시다 구니오는 그 동안 계속 기성질서에 반항하는 젊은이의 시선으로 작품을 써 왔다.<진실어린 경박함>,<광인도 극락왕생 한다>등에 결실한 그의 작품은 청년 특유의 풋풋함과 급진성에 의해 그만의 독특한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의 최신작<까마귀여, 우리는 탄환을 장전한다.>에서 청년은 이미 주인공 자리에서 쫓겨났다.
공안사건 때문에 체포된 두 청년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법성에 돌연, 폭탄을 손에 쥔 노파들이 쳐들어와 법정을 점거해 버리고, 판사, 검사, 변호사 등의 '죄'를 거꾸로 재판하기 시작한다. 과연 시미즈 구니오 다운 기발한 설정이다. 하지만 이 '민중재판'의 후반부에서 노파들은 자신들 편인인 청년에게까지 "기대에 어긋났다”며 사형을 선고한다. 이 같은 전투적인 민중의 모습에는 산리즈카에서 투쟁(*역주-나리타공항 건설반대 투쟁)하는 농민들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걸 쉽게 알 수 있는데, 어째든 이제 젊은이들이 아무리 과격하게 정치적인 선동을 해봤자 아무 소용없는 폐쇄적인 상황에 대한 작가의 안타까움과 슬픔은 충분히 전해진다.

 

 

 

<까마귀여, 우리는 탄환을 장전한다.>(이하,<까마귀>>는 극작가 시미즈 구니오의 초기 대표작으로 1971년에 초연되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전반까지, 일본은 미일 안보조약의 자동연장과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는 시민과 학생들의 격렬한 시위가 연일 거리를 매우고 있었으며, 신주쿠는 이러한 운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시미즈 구니오는 연출가 니나가와 유키오와 함께 시대와 반주하듯이 신주쿠의 비좁은 영화관을 근거지로 하여, 시대상을 짙게 반영한 도발적인 작품들을 잇달아 무대에 올려 젊은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얌전히 줄서 있는 군중들을 향해 욕설을 퍼붓고 매도하는 청년의 반항을 그린 《진실어린 경박함》(1969), 공중목욕탕을 무대로 한 잔혹 쇼에 비겨서 60년대의 사회투쟁을 총괄한 《울지 않으냐? 울지 않으냐, 1973년을 위하여?>(1973) 등의 작품은 극장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격렬한 현실을 극장 안에 끌어들여, 현신과 허구의 벽을 무너뜨려 관객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웠다. 특히 《진실 어린 경박함>은, 극장 앞에 길게 줄 서 입장을 기다리던 관객들이 극장 안으로 들어오자 무대 위에 줄 서 있는 행렬(연기자)을 보고, 마치 현실을 그대로 무대에 옮겨놓은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했고, 극 후반의 객석 뒤편에서 갑자기 경찰대가 쳐들어오는 장면에서는 진짜 경찰대로 착각한 관객들이 연기자들을 마구 때렸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져 오고 있다. 이 《까마귀》역시 이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앞서 소개한 두 작품과 함께 시대의 뜨거운 열기를 그대로 전해 주는 작품이다. 줄거리는 매우 간단하다.

 

 

 

자선쇼 무대에 폭탄을 던져 재판 받게 된 두 청년이 채포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 손자를 구출하기 위해 빗자루, 우산 등을 늘고 엄숙한 재판소에 쳐들어온 할머니들은 간수들을 폭탄으로 날려버린 다음, 재판장과 변호인의 바지를 벗겨버리고 음탕한 말과 행위로 신성한 법정을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그 과정에서 재판장, 검사, 변호인은 모두 친인척 관계임이 드러나고, 할머니들은 급기야 검사나 재판장을 피고석에 앉혀 재판을 시작하게 된다. 까마귀할멈은 그들에게 사정없이 사형판결을 내리고 그 자리에서 직접 칼로 찔러 죽이기도 하고, 다른 할머니들로 하여금 집단으로 마구 때려죽이게 만든다.
무대 밖에서는 경찰대가 건물을 포위하고 있으니 인질을 풀고 순순히 나오라는 확성기 소리가 자꾸 들려온다. 더 이상 인질을 죽여 버리면 경찰대가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할머니들은 불안해한다. 그때 까마귀할멈은 자신의 손자인 청년A를 피고석에 앉혀, 자기 기대에 미치지 못 했다는 이유로 사형판결을 내리고, 그 자리에서 칼로 찔러 죽여 버린다. 경악하는 사람들. 혼자 살아남을 수 없다며 자신의 재판을 요구하는 청년B에게 까마귀 할멈은 옷을 벗으라는 명령을 내린다. 까마귀할멈은 갑자기 청년B의 몸에 키스세례를 퍼붓고, 청년B에게도 자신의 몸에 키스할 것을 요구한다. 청년B의 머리를 붙잡고 자신의 사타구니 사이로 끼우는 까마귀할멈. 그때, 진압대의 공격이 시작되고, 까마귀할멈 품에 안겨있던 청년B는 총알을 맞아 죽는다. 재판장 역시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지만 결국 경찰대의 총알을 맞아 죽는다. 까마귀할멈과 호랑이할멈은 자신들의 손자를 잡아먹어 버렸다고 한탄하며 이젠 자신들이 청년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점점 더 격렬해지는 총소리. "증오의 힘으로 다시 청년으로 태어나자!" 호랑이할멈과 까마귀할멈이 외친다. 법정의 한쪽이 무너져 내린다. 정작. 그때, 천상에서 반짝거리는 유리파변 같은 것이 쏟아져 내려, 노파들 전원이 건장하고 늠름한 청년의 모습으로 변신한다. 일어서는 청년들. 맨손으로 무대 앞쪽을 향해 전진한다. "까마귀여, 우리는 단환을 장전한다!” 그때 다시 울려 퍼지는 총소리. 청년들이 그 자리에서 모두 죽는다. 정작. 혼자 숨어 있던 변호인이 비틀거리며 나와 자신만이 변신하지 못하고 살아남게 된 것을 비통해 한다. 작가는 도발적인 욕설과 폭력적인 행위로 기존의 사회적 권위를 산산조각 나도록 파괴하는 한편, 운동권의 관념주의를 비판하고, 60년대 사회운동이 자선쇼와 다름 바 없었다는 동세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과격하고 도반적인 정치성을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정치 극이나 목적극 수준에 머물지 않은 것은, 사가의 기발하고 환상적인 이미지와 시적인 언어에 의한 바가 크다고 하겠다.
시미즈 구니오는 일본 연극계에서도 특히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대사를 잡 쓰는 극작가로 높은 평가를 반고 있다. 그의 대사가 가진 서정성은 '나약한 서정성'이 아닌 '비장한 서정성'이다. 이러한 서정성은 이 작품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할머니들이 법정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잔인한 살육을 범하게 되는 동기를 단순한 복수나 분노가 아닌, "천 년, 만 년 전부터 가슴 속에 꽂혀진 광기의 피리 소리”와 "치욕으로 까맣게 몸을 물들인 까마귀”가 지저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대사나, 늠름한 젊은이로 변신한 할머니들이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아름다운 비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작품에 작가가 최근까지 일관되게 즐겨 쓰는 소재인 '가족’이 등장한다는 것도 주목해 볼 만하다. 용의자로 붙잡힌 손자와 할머니, 그리고 재판장, 검사, 변호사가 친인척 관계로 등장하는데, 이 역시 넓은 의미의 '가족'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미즈 구니오 작품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부모가 있고, 자식이 있는 정상적인 가족'은 등장 하지 않고, 항상 구성원의 누군가가 빠져있는 상태, 혹은 뭔가가 뒤틀린 모습으로 등장하게 된다. '가족'이라고 하면 결국 피와 혈통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작가는 어쩌면 단일 민족국가를 자부하는 일본이라는 국가와 더 나아가서 천황제의 문제까지 암시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극중에서 결국 까마귀할머니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손자를 죽임으로써 혈통을 끊는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기성사회에 반항하는 주체를 젊은이 아닌 늙은이로, 그것도 할아버지 아닌 할머니로 설정한 데에 있다. 어떤 평자는 이 연극에 등장하는 할머니 모습이 "나리타 공항 건설반대투쟁에 참여한 농민들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고도 하는데, 작가는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고, 그 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는, 기본적인 형태가 있는데, 당시 저 자신의 이미지 속에서는 아버지나 어머니는 믿을 수 없다고 느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 할머니만 등장하게 된 것은,아무래도 할아버지란 존재는 별로 섹시하지 않기 때문이었죠. 할머니란 존재는 제 생각에 가장 매력이 있고, 생명력이 강한 존재인 거 같아요. 그리고 그 당시에는 우리 아버지 세대를 왠지 모르게 증오하고 있었던 거 같아요. 그것은 청춘시대에는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요? 지급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당시 집필한 작품 중 80프로는 아버지가 악역으로 등장했던 거 같아요. 그러니까 부정해야 하는 존재로 등장했던 거지요.”
(미토예술관 홈페이지에 실린 인터뷰에서 인용)

어째든 청년 대신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이 극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게 된 이유는, 70년대에 접어들어 정치의 계절이 서서히 막을 내리면서, 젊음과 열정만으로는 이 이상 세상을 움직일 수 없다는 작가의 절망 어린 인식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예감은 바로 적중했고, 일본열도를 뜨겁게 달군 사회변혁에 대한 열기는 1972년에 일어난 '아사마 산장사건'을 계기로 급속히 냉각되어갔다.
그때까지 주로 청춘의 방황과 반항을 도발적인 터치로 그려온 시미즈 구니오의 작품도 이 무렵부터 변화를 갖게 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1967년에 여배우 마쓰모토 노리코와 함께 연극기획집단 모쿠토샤를 창단한 후로는 스스로 연출을 맡아 자신의 연극세계를 보다 깊이 있게 구축해 나갔다. 직접적인 정치극과는 결별하고, 뒤틀린 가족의 문제, 과거에 집착하고 추억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 등을 아름다운 대사와 강렬한 이미지로 엮어내는 그의 작품들은 보다 폭넓은 관객층의 지지를 얻어 일본의 대표적인 극작가로서 부동의 자리에 올라앉게 되었다.

 

 

 

 

작가 시미즈 구니오(清水邦夫)
1936년, 니가타 현 출생.
와세다 대학 문학부 미술과를 다니다가 학년 때 연극과로 전과. 전과를 기념하여 집필한 처녀희곡<서명인>이 '와세다연극'과 '테아트르'지에 당선되면서 극작가 데뷔. 60년에 와세다 대학 졸업 후’ 이와나미 영화사 입사. 영화감독 하니 스스무의 조수로 입하는 한편, 시나리오 집필. 65년 영화사 퇴사. 60년대 후반, '아트센터신주쿠'라는 작은 영화관을 본거지로  한 연출가 니나가와 유키오 와의 공동 작업으로 젊은 세대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1972년에 니나가와 유키오와 함께 극단 사쿠라샤를 결성하는 등, 활동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듭하다가, 1967년, 여배우 마쓰모토 노리코와 함께 연극기획집단 모쿠토샤를 창단. 이후, 자작, 연출로 신작을 무대에 올리는 한편, 외부극단에도 꾸준히 작품을 제공해, 현재까지 50편이 넘는 희곡을 발표했다. 희곡 외에도 시나리오, 소설, 평론, 수필 등 폭넓은 저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