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네상스 시대의 연극에서는 복수극이 가장 큰 흐름 중의 하나였는데, ‘고보덕’은 그 효시가 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영국 최초의 복수극이며 무운 시(blank verse)로 쓰여진 현존하는 최고의 연극이다. 그러므로 이 극이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작으로 꼽히지는 않더라도, 복수를 주제로 한 수많은 걸작들이 탄생하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가치가 크다. 이 작품은 그리스와 로마의 대표적 복수극들과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들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상당부분 고전 복수극의 틀을 가지고 있다.
『고보덕」은 영국 최초의 복수극이며 무운 시로 쓰여진 현존하는 최고의 연극이다. 이 극의 역사적 가치는 최초로 본격적인 비평을 받은 극작품이라는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 시인이자 비평가였던 시드니(Philip Sidney, 1554-86)는 『시의 옹호』(The Defense of Poesy)에서 이 극의 문체와 도덕성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극은 영국의 전설과 그리스 로마의 고전극의 기법이 접목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원전은 「리어왕」의 원형이기도 한 몬머스(Geoffrey of Monmouth)의 역사서 「영국 왕들의 역사」(Histolγ of the Kings of Britain)에 나오는 고보더고(Gorbodugo) 왕의 이야기와, 1520년대 후반에 공연되었던 「독실한 여왕 헤스터」(Godly Queen Hester)라는 연극이다.
르네상스 시대 영국인들은 국가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확립하는 데에 관심이 지대하여 민족과 그 과거에 대한 생각에 매료되어 있었는데, 이 역사를 완전하게 표현하기 위하여 극의 형태로 기록한 것은 새로운 역사 의식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는
이용 가능한 구체적 사실들을 객관적으로 연구한 것이라기보다는 “존재의 대사슬{the great chain of being)‘’, “엘리자베스 시대의 세계관(the Elizabethan world picture)” ‘튜더 왕조의 정치신화{the Tudor political myth)‘ 그리고 “영원 회귀의 신화{the myth of the eternal returnf' 등으로 불리는 거대한 질서의 신화에 의해서 형성되었다 그리고 영국인들은 그리스나 로마의 역사를 반영한 옛 고전 작품을 통해 교훈을 얻었다.
이 극은 1561 년의 크리스마스 축제(Twelfth Night Celebration)를 위해 처음 쓰여 졌다가 다음 해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이트 홀(White Hall)에서 공연되었다. 여왕은 초연을 관람한 후 2주일도 못 되어 1월 18일에 다시 관람했을 정도로 이 작품에 관심을 보였다. 비록 이 극이 영국연극 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할지라도, 엘리자베스 시대에 다시 공연되지는 않았다

이 극의 중심 주제는 복수인데,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복수극이 영국에서 재생하는 데에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어느 복수극보다도 고전극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극의 복수 형식이나 동기, 명분, 그리고 언어 표현의 특징을 파악할 때, 그리스와 보마 시대 복수극들과 연관 지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에스킬러스의 3부
작 『오레스테이아』(Oresteia)와 세네카의 「씨에스터스』는 이교 시대의 정신을 잘 구현한 복수극이기 때문에 『고보덕」을 분석하는데 유용한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우선 이 극에 나타난 복수의 형식을 살펴보면 복수의 악순환이 거듭되는 연쇄적 구조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생 포렉스가 형 페렉스를 살해하고, 어머니가 죽은 큰 아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 포렉스를 죽이고, 또다시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켜 골육상잔의 불륜을 저지른 왕실에 대한 복수로써 왕과 왕비를 살해하는 구조이다.
이 『고보덕』의 복수 양식과 사상은 에스실러스와 세네카의 고진극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보덕』의 복수 형태는 『오레스테이아』와 비슷하게 하나의 복수가 또 다른 복수로 이어지는 연쇄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복수의 동기는 자식에 대한 왕비의 편애와 권력욕에서 시작되며, 각 막의 앞에 예시 기능을 하는 무언극을 삽입함으로써 긴장감이 사라지고, 코러스가 일어난 사건을 논평해준다. 또한 극이 한동안 진행되고 나서 주요 행동의 동기가 주어지고, 장황한 정치 도의적 토론이 플룻에 역동감을 잃게 한다. 중요한 사건들이 무대 밖에서 이루어진 다음 보고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호쾌한 액션이 없고, 주인공이 중대한 행위를 할 때 고뇌하지도 않으며, 적대 세력들 간에도 대립에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아 복수도 일방적이고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동시대의 다른 복수극들과는 달리 복수에 희생자의 역할이 없으며, 왕실 내부에서 일어난 비밀스런 범죄를 일반 백성들이 모두 알고 있다. 마지막 공통점은 가청에서 시작된 골육상잔의 결과가 국가적 혼란으로 확대된다는 점이다.
복수의 명분으로 이용되는 사상 면에서도 「고보덕」은 고전극과 많은 공통점을 보인다. 우선적으로 발견되는 복수의 명분은 같은 수단에 의한 보복이다. 복수의 주체는 조브 신을 비롯한 이교적 신들이고, 인간은 신들이 천벌을 내려주기를 기다리거나 그들의 도구로 이용되는 왜소한 존재이다. 또한 복수가 하계나 지옥의 윤리로 인식되기 때문에, 만일 인간이 직접 복수를 하려면 비데나의 경우처럼 완전히 인간성을 잃고 지옥의 악마처럼 변해야 하는 것이다. 끝으로 「고보덕」과 고전극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복수의 명분은 정의의 실현이다. 페렉스의 만행을 알게 된 왕과 왕비는 다 같이 정당한 복수를 다짐하지만, 이들이 추구하는 정의는 어디까지나 기독교적 정의가 아니라 이교적 신들의 정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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