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극작가 토머스 키드(Thomas Kyd: 1558∼1594)의 비극(悲劇)이다. 1585년경 상연, 1594년경 출판되었다. 세네카 비극을 본뜨면서도 한층 더 피비린내가 나며, 유혈비극 이라고도 하는 복수극의 전통은 여기에서 확립된 듯 보인다.
망령(亡靈)ㆍ극중극(劇中劇) 등의 무대 구성은 물론, 무운시(無韻詩) 형식의 힘 있는 표현 등이 셰익스피어 이외의 작자에게 끼친 영향은 크다.
이 극은 엘리자베스 왕조의 복수비극 유행의 원천이 된 걸작으로 극의 구성이 교묘하고, 종래의 세련되지 못하고 조잡하였던 비극의 주인공에게 내면적인 깊이를 부여하였다. 또 이 <스페인의 비극>은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아주 비슷하여, 이것으로 현존하지 않는 <햄릿>의 원본을 그가 썼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고, 또, 최근의 논문에는 이 작품의 일부분을 셰익스피어가 썼다는 발표도 있다

스페인 왕은 정치적 목적으로 조카딸 벨-임페리아를 포르투갈 왕자 발사자와 결혼시키려 한다. 그녀는 사법관 히에로니모의 아들 호레이쇼와 사랑하는 사이다. 어느 날 밤 서로 만나 사랑을 속삭이는 두 사람을 습격한 발사자와 로렌조 등은 호레이쇼를 죽인다. 이 소동에 잠이 깬 히에로니모는 미친 듯이 아들의 복수를 맹세한다. 드디어 연극 상연에 계기를 만들어 극중극(劇中劇)의 장면에서 출연한 발사자와 로렌조 등을 죽이고 자기마저도 죽는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경우와는 반대로 자식을 살해당한 아버지의 복수 행위와, 사랑하고 자랑스러운 자식을 암살당한 아버지의 격정을 보여준다.

키드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스페인의 비극>에 나타난 복수의 근원은, 포르투갈 왕자 발사자가 스페인의 귀족이자 장수인 안드레아를 전쟁터에서 살해한 것과, 스페인 왕이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그의 조카이자 호레이쇼의 연인인 벨-임페리아를 발사자에게 정략결혼을 시키려고 하고 왕의 이러한 뜻을 간파한 그녀의 오빠 로렌조와 발사자가 호레이쇼를 살해한 사건에 있다. 호레이쇼의 살해사건은 극이 진행되는 제2막 제4장에서 발생하지만 안드레아의 살해는, 극이 시작되기 이전에 일어나며 이것은 이 극이 유혈 복수극으로 전개되도록 하는 강한 촉매제 역할을 한다.
이 작품의 구성은 “안드레아의 죽음과 복수,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관계, 그리고 호레이쇼의 죽음과 복수”라는 삼중 구조, 또는 “호레이쇼의 사랑과 죽음, 그리고 히에로니모의 복수”라는 이중 구조로 분류될 수 있는데, 스페인 왕은 벨-임페리아의 아버지이자 그의 동생이며 카스틸 공작인 사이프리안에게 벨-임페리아가 호레이쇼와의 연인 관계를 청산하고 발사자와 사귀도록 그녀의 설득을 부탁한다. 한편 스페인의 궁내의 의로운 사법관인 히에로니모의 아들이자 장수인 호레이쇼는 스페인과 포르투갈과의 전투에 참전하여 발사자에게 죽은, 벨-임페리아의 연인이었던 안드레아의 시체를 찾아 적절한 장례를 치러주고 그를 죽인 발사자를 포로로 잡아온다. 호레이쇼는 안드레아의 대역이 되고 그의 복수의 후원자가 되며 벨-임페리아와 호레이쇼는 복수의 동반자가 된다. 호레이쇼와, 로렌조와 발사자는 그리하여 불가피한 대립을 겪게 되며 로렌조는 호레이쇼를 살해할 간계을 꾸민다. 결국 호레이쇼는 어느 날 밤 그의 집의 정자에서 “엘리자베스 시대의 극에서 남자를 먼저 유혹하는 최초의 여주인공”인 벨-임페리아와 사랑을 속삭이던 중 변장을 한 로렌조, 발사자, 발사자의 하인 서베린, 그리고 벨-임페리아의 하인 페드린가노에 의해 정자에 매달린 채 살해되고 만다. 그리하여 발사자에 의한 안드레아 살해에 이은 이들의 호레이쇼의 살해는 제2의 복수의 동기가 되고 또 다른 새로운 복수와 살해를 예견하게 한다. 살해소동에서 잠을 깬 호레이쇼의 아버지 히에로니모는 아들의 죽음을 확인하고 흥분과 분노를 가누지 못하고 기어코 아들의 복수를 할 것이며 그때까지 아들의 시신을 매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부인과 자신에게 굳은 복수의 맹세를 한다.
벨-임페리아의 편지를 받은 히에로니모는 큰 충격에 휩싸여 격분한다. 그러나 그녀의 편지를 믿지 못하고 정체에 대해 의심을 하는데, 그 이유는 편지의 주인이 로렌조의 여동생이고 그 편지가 그의 목숨을 노리고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왕의 조카를 확증이 없이 살인자로 단정하는 일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를 수집할 궁리를 한다.

한편 로렌조는 호레쇼의 살해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에 가담했던 자신 이외의 발사자, 페드린가노, 서베린을 불신하기 시작한다. 그는 사건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페드린가노에게 돈을 주고 서베린을 살해하도록 시킨다. 페드린가노는 다음 차례가 자신인줄도 모르고 로렌조로 부터 높은 자리로의 승진을 기대하며 서베린을 살해한다. 이리하여 호레이쇼의 살해는 또 다른 살해를 초래하게 되었으며 페드린가노는 서베린을 살해 후 야경꾼에게 붙잡혀 호레이쇼의 아버지이자 사법관인 히에로니모에게 끌려가게 된다. 그 후 로렌조는 발사자를 만나 그들의 호레이쇼 살해사건이 히에로니모에게 들통이 날 것이라고 말한다. 로렌조는 이제 발사자에 대해서조차도 불신을 하기에 이르게 되고, 심부름꾼을 시켜서 감옥에 있는 페드린가노를 안심시키도록 하나 결국 페드린가노는 교수형에 처해지고 만다. 그리고 페드린가노의 재판과정에서 그가 로렌조에게 자신의 구원을 재촉하기 위해서 쓴 편지가 형리에게 발견되어 그것이 히에로니모에게 전달되는데, 그 핵심 내용은 서베린의 살해는 로렌조의 사주에 의한 것이고, 발사자를 포함해 그들 세 명이 호레이쇼 살해의 공범이라 내용이다. 이리하여 히에로니모는 벨-임페리아의 편지가 사실이고 아들 호레이쇼의 살해범들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다. 그러나, 햄릿이 극중극을 통해서 유령의 말이 진실임을 확인하고도 복수를 망설이듯이, 어찌된 영문인지 두 통의 편지를 통해 가슴 속에 품었던 로렌조와 발사자에 대한 의심이 사라지고 복수심도 약해지게 되어 복수가 지연된다. 이렇게 히에로니모의 로렌조와 발사자에 대한 복수가 계속해서 지연이 되자,

안드레아의 유령이 등장하여 복수의 유령을 각성시켜 히에로니모로 하여금 느슨해진 복수심을 부추기도록 한다. 히에로니모가 열망하는 복수는 이 극의 초반에서 중반까지는 ‘사적인 복수’가 아니라 신과 왕의 정의 또는 국가의 법률에 의한 “공적인 복수”이다. 그러기에 히에로니모는 호레이쇼의 죽음에 대하여 왕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정의를 외치며 호레이쇼의 죽음에 대한 정당한 심판을 호소하지만 로렌조를 비롯한 왕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방해로 뜻을 이룰 수 없다. 3막 13장에 이르러 이제 더 이상 정의와 법률에 대한 어떠한 희망도 기대할 수 없는 사면초가에 처한 히에로니모는 살해된 아들을 위하여 정의의 재판을 구하러 온 노인인 바줄토를 아들 호레이쇼의 유령으로 착각하는 ‘정신착란’을 보이는데 이러한 사실은 그가 내뱉는 그의 “혼란스러운 말”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하늘의 복수에 대한 희망은 절망으로 화하고, 왕에게 수없이 정의를 호소했지만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하였으며, 대신 왕은 호레이쇼가 죽었는지 조차도 모를 정도로 정치적 목적에만 몰두하고 로렌조를 비롯한 신하들의 장막에 가려져있기에 스페인 왕국은 더 이상 ‘정의가 없고 정의가 추방된 상황’에 이르게 되고, 결국 진퇴유곡의 딜레마에 빠진 히에로니모가 최종적으로 내릴 수 있는 선택은 기독교적 신앙을 포기하고 그 자신이 직접 아들의 복수를 실행하는 ‘사적인 복수’이다. 가눌 수 없는 실망과 좌절에 사로잡힌 채 이제 더 이상 정의와 법률에 의지하는 이성적이고 의로운 공적인 복수자가 아닌 분노와 광기로 가득한 사적인 복수자의 길을 선택한 히에로니모에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복수의 대상인 로렌조가 발사자와 벨-임페리아의 결혼식 전야의 여흥 준비를 부탁한다. 그리하여 그들의 결혼을 위한 축하 여흥의 준비를 맡게 된 히에로니모는 드디어 복수의 유령이 부여한 복수의 지혜에 힘입어 극중극을 통한 ‘철저한 복수’를 계획하기에 이른다. 결국 이 극중극은 실제적 살인사건으로 화하게 되며, 먼저 히에로니모가 로렌조를 살해하고, 벨-임페리아는 그녀의 옛 애인인 안드레아(현재는 유령)를 전투에서 살해했던 발사자를 죽이고 자살한다. 이제 히에로니모는 무고한 그의 아들 호레이쇼를 죽인 로렌조와 발사자의 죽음 앞에서 ‘철저한 복수’에 대한 한(恨)을 풀며, 로렌조의 아버지인 사이프리안 공작을 살해하고 자살함으로써 스페인의 비극 은 결국 ‘히에로니모의 비극’으로 그 대미(大尾)를 장식한다. 히에로니모의 복수는 신과 왕의 정의와 국가의 법률이 부재한 현실에서 그가 취할 수 있는 최후의 반항이자 도전인 것이다.
결국, 극이 시작되기 전 발사자에 의한 안드레아의 살해와, 극이 시작된 후 이어진 로렌조에 의한 호레이쇼의 살해를 통해, 발사자와 로렌조의 칼끝에 묻어나기 시작한 복수의 피는 서베린과 페드린가노를 차례로 거꾸러트리고, 아들 호레이쇼를 잃은 충격으로 자살한 이사벨라, 로렌조, 발사자, 벨-임페리아, 사이프리안 공작, 그리고 히에로니모로 이어져 스페인 궁정은 살인과 복수의 피로 얼룩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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