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장은 이미 그 기능을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의지 없이 나자빠져 오지 않을 배를 기다리는 민중, 그들의 희미한 희망, 현실의 고통을 외면하는 모순적 나약함을 괴로워하며 허덕이는 시인들, 죽어 없어진 절대적 지성과 아름다움을 회고하는 스승들. 패배한 땅에서 외치는 그들의 욕구와 나태함은 도리어 솔직하고 자유롭다. 패배할지언정 끊임없이 내뱉는 그들의 숨은 사라지지 않기 위한 강렬한 저항이자 끈질긴 자유의지이다. 생각하고 소리치는 자유를 빼앗는 검열로부터 무대라는 광장에서 자유를 다시 되찾는다.

러시아 2세대 상징주의 시인이자 극작가 알렉산드르 블로크(1880-1921)의 대표작인 이 희곡의 대사를 속사포처럼 질러버리게 한 연출이 만든 암담한 결과였다. 알렉산드르 블로크는 러시아의 국민 시인 '프쉬킨'만큼이나 사랑받는 작가다. 블로크는 20세기 이후 러시아 모더니즘 문학에 뿌리라고 할 만하다. 그는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보들레르, 랭보에게 영향을 받은 1세대 러시아 상징주의 작가들을 공허하다고 비판하면서 민중에 뿌리를 둔 상징주의 작품을 써냈다. 원작 희곡 '광장의 왕' 역시 블로크의 세계관을 잘 반영한 작품으로 추상적인 단어의 의미를 곰씹어야 맛이 살아나는 연극이다. 대사 사이에 여운을 얼마나 잘 처리하느냐와 상징적 대사를 모호하지 않도록 돕는 분장, 의상 등 다른 무대도구들이 꼭 필요한 작품이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희곡 자체를 연출 기법을 적용하지 않고 낭독하면 40여 분이 채 나오지 않을 만큼 분량이 짧다. 구태를 타파하길 좋아하는 도전적인 젊은 연출가 입장에서 구태의연한 기존의 연출방식에서 벗어나고 싶더라도 기존 방식의 연출적 장치에 대응하는 다른 대안을 갖췄어야 관객의 혼란을 막을 수 있다. 똑같은 복장을 한 건축가 조드치, 광대, 시인 등 광장에 모인 힘없는 자들의 대사가 쏟아지는 과정에서 관객들은 누가 누구인지 파악하기조차 쉽지 않다. 또 원래 희곡에서 벗어난 장면들이 정치검열 사태를 겪고 있는 우리 시대를 짚어준다는 것을 관객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장면들은 극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로만 작용했다.

우울하고 구슬픈 희곡 <광장의 왕>의 시인은 조드치에게서도, 그가 사랑하는 ‘아름다움의 정화’인 조드치의 딸에게서도, 고전적인 질서와 권력의 상징체계인 ‘고수머리의 왕’에게서도 구원을 얻지 못한다. 조드치는 시인에게 군중에게 부화뇌동하지 말라고 군중을 위한 폭동의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밤과 더불어 사랑에 대하여 말하는 고독한 자가 되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말이 시인의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한다. 그는 지금 군중들과 함께 동요하고 있으며, 행복과 구원을 약속하는 배가 도착하기를 열렬히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과 청춘으로 고전적 이성의 화신인 광장의 왕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조드치의 딸과 과거에 함몰된 채 개인의 사랑에 탐닉하고 끝없이 동요하는 시인 사이의 심연은 메워질 수 없다. 시인의 종국적인 실패의 배후에는 “상식을 구현하며, 삶의 도덕적 형식들 가운데 매우 속물적이고 보수적인 형식의 담지자인 광대와 속물근성을 대표하는 소시민계급의 알레고리인 ‘소문들’이 자리한다.“ 소문들 역시 사유와 생활에서 소시민적이고 속물적인 계층의 탄생이며, 강력한 간상균처럼 그것들은 영혼으로 침투하고, 혼란과 소동을 가져오며 도시를 파괴로 몰고 간다. 신천옹처럼 천상을 날아다녔던 시인이 지상으로 추락하여 보여주는 어리석음과 나약함, 그리고 무기력함에 대한 어느 상징주의 시인의 경고는 <광장의 왕>에 등장하는 시인에게도 적실하게 00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천상의 아름다움으로 도시를 구원하고자 하는 조드치의 딸의 시도는 파멸과 패배로 귀착되는데, 이것은 그들 모두의 죽음을 동반한다. 여기서 죽음은 파괴의 형식과 조우한다. 조드치가 피날레에서 단언하는 조화로운 시공간 ‘내일’에는 시인도 조드치의 딸도, 광장의 왕도 이 세상을 떠난 민중도 존재하지 않음은 너무도 자명하다. 이 지점에서 <광장의 왕>에 내재된 공허함과 비극성의 근저가 또렷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알렉산드르 블로크(Александр Блок, 1880∼1921)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상징주의 시인이다. 그는 프랑스 데카당스의 영향으로 시작된 러시아 1기 상징주의의 퇴폐주의, 유미주의를 극복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형상을 통해 예술과 현실의 합일을 꿈꾸는 신화시학적 상징주의를 이끌었다. 1903년, 1905년 혁명을 비롯한 러시아 역사의 격동기를 살아내며 블로크는 네 권의 시집을 더 출간했고, ≪서정 희곡집≫(1908)을 출간했으며, <운명의 노래>(1908)와 <장미와 십자가>(1913) 등의 희곡을 썼다. ‘정화의 불길로서의 혁명’의 이상과 전체주의적인 소비에트 관료 정권의 실상 사이의 괴리에 대한 뼈아픈 인식 속에 괴로워하던 시인은 1921년 8월 7일 영면했다.
표도르 솔로구프(Федор Сологуб, 1863∼1927)는 1기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다. 벽촌에서의 교사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1892년 출간한 ≪작은 악마≫가 러시아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솔로구프의 작품 세계는 일견 전형적인 데카당 문학의 특성을 보이지만, 너무도 비속하고 사실적인 ‘이 세계’와 그 이면에 자리한 ‘또 하나의 세계’의 천연덕스러운 공존 그리고 이 모든 중첩적인 세계상을 관망하는 작가의 노련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인해 독특한 생기를 얻게 된다. 솔로구프에게 경탄과 경계의 눈빛을 함께 보냈던 작가 블로크는 솔로구프를 ‘자신을 반복해도 낡지 않는 부류’의 시인으로 정의한 바 있다. 1917년 일어난 혁명의 이념에 동의할 수 없었던 솔로구프는 망명을 원했으나 정부의 허가를 받지 못했고, 1921년 아내가 자살한 이후 창작보다는 세계문학 번역에 몰두하다 1927년 12월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미하일 쿠즈민(Михаил Кузмин, 1872∼1936)은 1872년 야로슬라블에서 해군 장교였던 아버지와 가난한 귀족 가문 출신 어머니 슬하에서 태어났다. 외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문화에 관심이 컸던 그에게 셰익스피어, 몰리에르, 세르반테스, 스코트, 호프만, 로시니, 베버, 슈베르트 등은 미래의 시인이자 음악가를 키운 문화적 토양이 되었다. 또한 구교도였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종교 문화와 친숙한 환경에서 자랐다. 쿠즈민은 당대의 예술문화계에 시인이 아닌 음악가로 입성했다. 시인으로서의 문단 데뷔는 그보다 늦은 1904년에 이루어졌다. 1904∼1905년에 시집 ≪알렉산드르의 노래≫를, 이듬해에는 동성애를 전면적으로 다루어 큰 반향을 일으킨 중편소설 ≪날개≫를 발표했다. 다양한 혁명적 예술사조에 개방적이었던 그는 1917년 혁명 역시 두 팔 벌려 맞았으나 결국은 혁명 이후의 소비에트 현실과 화해할 수 없었고,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다 1936년 2월 폐렴으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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