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5년 1월 9일 페테르부르크 거리 곳곳을 온종일 누비면서 피로 얼룩진 살육의 목격자가 된 고리키는 “러시아 혁명의 첫 번째 날은 러시아 인텔리겐차가 도덕적으로 붕괴한 날"이라고 썼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서식하면서 그로 하여금 그런 서식양상을 강요하였던 저주받을 세상으로부터 대학교육을 받은 새로운 유형의 인텔리겐차는 혁명에서 동일계급의 붕괴를 뼈저리게 경험한다. 고리키의 명료한 표현 ‘도덕적으로’에 대하여 유보적인 단서조항을 삽입하고자 한다. 「태양의 아이들」 피날레에서 만나게 되는 수의사의 죽음과 리자의 정신이상 인텔리겐차와 민중의 상호대립과 갈등에서 ‘도덕’이 개입할 소지는 현저히 축소되어 있다.

고리키는 1905년 1월 11 일 체포되어 페트로파블로프 요새감옥에 수감되었다가 2월 14일에 석방되었는데 바로 이 시간대에 그는 「태양의 아이들」을 집필하였다. 고리키는 감옥에서 석방된 다음에 암피테아트로프에게 희곡창작과 관련된 편지를 보냈다. “시간을 잘 보냈습니다. 그동안 비희극 「태양의 아이들」을 썼는데 성공적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감옥에서 사건들의 인상을 떨쳐내고 그것을 연구하였습니다. 그런데 작품의 실제 창작기간은 1905년 2월 5일부터 12일까지 일주일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태양의 아이들」은 1905년 5월에 고리키가 모스크바에 체류하는 기간 동안에 스타니슬라프스키와 ‘모스크바 예술극장’ 배우들과 만남으로써 공연이 결정되었다. 이 시기부터 작품을 개작하기 위한 집중적인 작업이 시작되었고, ‘예술극장’은 같은 해 8월에 공연연습에 착수하였다. 그 결과 10월 17일에 시연이 개최되었고 10월 24일부터 12월 7일까지 21 회에 걸쳐 ‘예술극장‘ 무대에서 상연되었다. 한편 같은 해 9월 말에 「태양의 아이들」 공연연습을 시작하였던 페테르부르크의 ‘코미싸르쉐프스카야 극장’은 10월 12일 시연에 착수하였다. 1906년 1월 12일에는 베를린의 ‘클라이네스 극장’에서 막스 라인하르트의 연출로 공연되었고 신문 인터뷰에서 고리키는 인텔리겐차와 민중 사이의 갈등과 거리의 극복에 대하여 말한다. “인텔리겐차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심연이 아무리 깊다고 해도 이 심연을 넘는 다리를 놓는 것이 아무리 어렵다 해도, 나는 다리가 놓아지리라는 것을 확고히 믿습니다. 이 과제는 프롤레타리아 출신이면서 점차로 고양되어 지식의 정상에 도달한 자들에게 달려있지요. 병든 사회는 빛과 아름다움과 지식의 원천이 모든 사람들에게 열리게 되는 그런 때에만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고리키의 「태양의 아이들」에서 우선 화학자 프로타소프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하지만, 그의 관심은 과학에 집중되어 있다. 그는 이성의 프리즘을 통해서만 인간과 세상을 재단한다. 오직 이성의 영역에서만 인간은 자유롭고, 오직 이성적일 때에만 그는 인간인 겁니다. 그래서 만일 그가 이성적이라면 그는 순수하고 선량합니다! 인간은 이성을 통하여 선량하게 탄생되며, 인식이 없다면 선량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프로타소프는 친구이자 화가인 바긴이 자신의 아내 옐레나에게 사랑을 고백했을 때조차 거의 동요하지 않으며 자신에게 헌신하고자 하는 멜라니야의 순수한 열망을 이해하지도 수용하지도 못한다. “프로타소프의 냉담은 모든 것에서 추적된다. 과학 아내에 대한 태도 멜라니야와 바긴에 대한 자세에서도 추적된다. 그의 부드러움과 선량함은 엄혹하고 파괴적인 현실과 맞닥뜨릴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자신의 개인적인 정신세계를 덮고 있는 갑주다. 그러기에 화학자가 아무리 들떠서 인류의 미래를 낙관한다 해도 그것은 오직 자기세계에 갇힌 자가 지니고 있는 관념의 세계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바긴으로부터 ‘카산드라’라는 별칭을 부여받은 리자는 세상의 잔인함을 끝장내고 선행을 하자고 호소하지만 그녀 스스로는 수의사 체푸르노이가 2년 동안 자신에게 바친 진정한 사랑을 거부해버린다. 외부세계와 단절을 경험하고 있는 그녀는 자기 옆을 떠돌고 있는 실제로 살아있는 인물이 내미는 손을 매정하게 뿌리침으로써 스스로 유폐의 길을 선택한다. 결국 그녀 역시 프로타소프처럼 냉담한 인간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인텔리겐차와 민중 사이에 어떻게 해도 건널 수 없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는 사실에 있다. 미래에 대한 전망과 확신을 가진 원기 왕성한 인간들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고자 하는 옐레나의 열망을 둘러싸고 등장인물들은 그림 속에서 민중의 위치를 두고 대화한다.
「태양의 아이들」에서 인텔리겐차들은 죽어버린 민중, 인류의 진보에 해로운 존재로서 민중, 나아가 유기체도 되지 못한 채 사멸한 세포로 수용되는 민중을 언급한다. 리자가 예외로 보일 테지만, 실제로 그녀는 민중 출신 유모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조금도 숨기지 않으며, 철물공 예고르에 대한 반감을 적나라하게 표출한다. 그러므로 고리키의 장막희곡에서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세계에 갇혀있으며, 특히 민중과 인텔리겐차 사이에는 화해할 수 없는 대립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극작가 고리키는 체호프의 인물형상화를 사사받았지만, 그에게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민중과 지식인 사이의 대립관계를 날카롭게 드러냄으로써 1905년 혁명에 대한 자신의 기본적인 입장을 드러냈다고 말할 수 있다.

「태양의 아이들」에서 공간은 오랜 지주귀족의 저택 안팎으로 설정되어 있다. 제1막과 3막의 공간이 제2막과 4막의 공간이 동일하다고 무대지시는 밝힌다. 그러므로 「태양의 아이들」의 공간적 설정은 특히 제 4막에서 발생하는 혁명적인 상황과 격리된 공간에 거주하는 주인공들의 정황을 적절하게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태양의 아이들」에서 주인공들은 인간의 세속적인 욕망과 분노와 좌절이 한시도 쉬지 않고 꿈틀거리는 세상으로부터 차폐되어 있다. 고리키의 희곡에 그려져 있는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차폐의 공간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혁명의 붉은 군대와 백위군, 미래와 과거 흉포한 민족주의와 고상한 인도주의, 약탈과 살육을 동반하는 형제살해의 피비린내 진동하는 피안의 세계와는 전혀 이질적인 차안의 공간으로 표상되는 ‘항구’에 난파한 ‘배’를 타고 도달했던 라리오시크는 혁명의 소용돌이로부터 한 걸음 비켜있는 지주귀족의 저택에 거주하는 고리키의 ‘프로타소프들’과 전혀 동일하다. 담장과 대문으로 ‘소요와 불안과 약탈과 방화 그리고 폭동’이 일어나는 ‘거리들’과 거리를 두고 있는 프로타소프의 집은 인텔리겐차들의 보루로서 그림과 자연과학의 상아탑이다. 예고르가 프로타소프를 공격하는 지점은 담장 근처이되, 봉기한 민중과 예고르는 끝내 이 집을 범접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태양의 아이들」은 여기와 저기 차안과 피안 안온한 항구와 노호하는 바다의 대립적인 공간을 기본적인 뼈대로 삼아 이루어져 있다. 더욱이 프로타소프의 저택 한 모퉁이에서 거주하는 철물공 예고르 내외의 공간은 인텔리겐차들의 공간과 차별되어 있다. 스스로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예고르의 집에는 콜레라가 발생하지만 그것은 결코 프로타소프의 거주지까지 활동영역을 확대하지 못한다. 이 장변에서 다시 콜레라가 도는 민중의 거주지인 ‘저기’와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인텔리겐차의 공간인 ‘여기’가 대립적인 공간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한편에서는 콜레라가 창궐하고 혁명운동이 발발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과학의 위대한 성취와 아름다움에 대한 열광이 자리한다. 수위와 유모, 하녀, 술 취한 노동자들의 형상이 무대 한쪽 회랑을 지나가며, 다른 한쪽의 회랑에는 화학자와 화가, 수의사 등의 인텔리겐차 무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이들은 작품의 첫머리부터 갈등양상을 보인다. 희곡에서 인텔리겐차를 대표하는 프로타소프와 민중을 대표하는 예고르 사이의 대립을 보자. 예고르가 아내를 구타하는 문제에 대하여 프로타소프가 이의를 제기한다. 아내를 악마로 규정하고 시시때때로 구타하는 예고르는 아내를 자신의 소유물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는 아내를 사랑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런데 고상한 이상과 아름다움, 놀라운 과학적 발전을 열망하는, 하녀 루샤의 말에 따르면 “나리 같지 않을 만큼 상냥한 ( 프로타소프는 예고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선량함은 민중 예고르의 삶에 대한 완벽한 무지에서 출발한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이다. 민중에 대한 이런 표상을 여타의 인텔리겐차들도 공유함으로써 「태양의 아이들」은 인텔리겐차와 민중 사이의 첨예한 갈등과 대립의 양상을 드러낸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태양의 아이들」에서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태양의 아이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희곡에 태양의 아이들은 없으며, 작가는
모든 등장인물들을 반박한다. 희곡의 주요한 테마와 사유는 인텔리겐차와 민중 사이의 비극적인 단절에는 양자 공히 책임이 있다는 사실이다.
「태양의 아이들」에서 체푸르노이의 죽음은 일화의 형식을 취하지만, 그 토대에는 자신의 비극적인 종말도 예측하지 못하는 미완의 예언자 형상으로 그려진 현대의 ‘카산드라’ 리자가 자리한다. 프로타소프, 옐레나, 그리고 리자는 동시대의 세상과 습속과 절연된 자발적인 유폐의 공간에 고독하게 거주한다. 그런 견고한 성채의 일각을 강고하게 고수하는 리자의 냉담함이 종당에 불러오는 체푸르노이의 자발적인 죽음은 예고르와 프로타소프의 화해할 수 없는 대립관계의 근경(近景)을 이루면서 희곡의 비극적인 음조를 한층 강화한다. 특히 「태양의 아이들」에서 우리는 러시아 민중에 대한 극작가 고리키의 회의적인 평가와 맹렬하게 조우한다. 학대받고 억압받은 무지몽매하며 폭력적인 민중의 아들 예고르의 비극적인 형상에서 고리키는 더 이상 러시아의 구원자를 바라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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