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헨릭 입센 '페르귄트'

clint 2015. 11. 5. 15:39

 

1867년 출간. 페르귄트는 몰락한 지주의 아들로서, 어머니의 절실한 소원에도 불구하고 집안을 재건할 생각은 하지 않고 지나친 공상에만 빠진다. 애인 솔베이지를 버리고 산속 마왕(魔王)의 딸과 결탁, 혼을 팔아넘기고 돈과 권력을 찾아 세계여행을 떠난다. 미국과 아프리카에서는 노예상을 하여 큰돈을 벌고 추장의 딸 아니트라를 농락하며 거드름을 피우다가 여자에게 배신당하고 정신이상자로 몰려 입원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고향이 그리워 배를 타고 귀국길에 오르지만 배가 난파하여 무일푼이 되어 고향 땅을 밟는다. 거기서 늙은 마왕으로부터 빚 독촉을 받으나 최후까지 혼을 팔아넘기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남아 지금은 백발이 된 옛날의 애인 솔베이지의 팔에 안겨 죽는다.
근대인의 부(富)와 권력 추구에서 오는 정신의 황폐, 인간의 과대한 야망의 덧없음을, 그리고 자기를 버리고 간 방탕한 연인을 백발이 될 때까지 가슴 속에 간직한 여인의 청순무구를 대조하여 최후의 구원을 발견케 한다. 입센의 작품 중에서는 가장 분방한 상상력을 구사한 작품으로 알려졌다. 이 희곡을 토대로 노르웨이의 작곡가 그리그는 같은 제목의 부수음악을 작곡, 1876년에 초연하였다. 뒤에 편곡하여 각 4곡으로 된 두 가지 관현악용 조곡을 만들었는데 그중에서도 제1조곡의 제3곡<아니트라의 춤>, 제2조곡의 제4곡<솔베이지의 노래>는 잘 알려진 곡이다.

 

 

 

페르 귄트는 말 그대로 어느 트롤의 이야기다. 이 한 편의 환상적인 극시는 극중 트롤들이 등장하며 세계 여러 곳곳이 등장하지만, 본질적인 중심은 페르 귄트라는 한 트롤의 방랑을 다룬다. 주인공 페르귄트는 말 그대로 몽상가다. 그러나 일반적인 의미의 몽상가와는 조금 다르다. 흔히 몽상가라 하면 왠지 모르게 몽상에만 빠져있고, 실질적인 능력은 결여된 것처럼 묘사된다. 페르귄트는 몽상가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능력 있으며 지적이고 매력적인 인물이다. 어찌 보면 그의 유일한 단점은 말 그대로 몽상가 그 자체일 것이다. 어쩌면 현실을 도피하는 지식인이 아닐까? 그는 이 극의 천재적인 인물이자 희곡 그 자체다. 페르는 말 그대로 모든 것으로부터 도피한다. 그의 가족, 고향, 그리고 사랑으로부터. 그는 말 그대로 귄트적인 무언가, 혹은 언제나 자기 자신, 페르 귄트로서 살아가기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세계를 방랑하며 부를 누리기도 하고, 시련을 겪기도 한다. 세계의 황제가 되기 위하여, 언제나 자신으로 있기 위하여 이 몽상가는 트롤들과 만나 공주와 결혼할 뻔하기도 하고, 크게 부자가 되기도 하고, 사기를 당하기도 하며 마침내 늙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늘 자신으로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그의 환상이 박살나는 5막의 시작 부분부터 시작된다. 그는 말 그대로 돌아갈 곳이 없다. 언젠 자신으로만 있으려 했기 때문이다. 또한 언제나 자기 자신으로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트롤 중의 트롤' 뿐이다. 그렇다면 입센에게 트롤은 무엇인가? 고백컨데 나는 결코 이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다. 의미하는 바가 너무나도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입센의 트롤은 단순무식한 괴물과는 다르다. 또 다른 인간상, 부정적이며 무엇인가가 결여된 인간상이란 것이 그나마 근접한 답일 것이다. 입센이 묘사하는 트롤은 환상적이면서도 기괴하다. 인간과 비슷해 보이면서도, 온갖 더러운 것들을 보지 못하게 해주기 위하여 눈알을 뽑으려는 비인간적인 면모를 동시에 갖추었다. 이러한 트롤 중의 트롤 페르귄트에게는 말 그대로 귄트적인 것이 결여되었다. 자신의 삶이 부정당한 늙은 트롤은 절망에 빠진다. 그렇다면 그에게 구원은 있는가?

 

 

 


입센의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며 평범해 보인다. 그가 사랑했고, 그를 언제나 사랑했던 솔베이그가 귄트의 유일한 해답이요 구원이다. 즉 그가 자신으로 있기 위하여 버려야했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이 트롤을 페르 귄트로 만드는 것이란 것이 입센이 보여주는 간접적인 해답이다. 페르귄트는 여러모로 괴테의 파우스트를 연상케 한다. 환상적인 내용이나 남성의 자신을 찾기 위한 방랑, 그리고 결국 영원히 여성적인 것에 의한 구원. 늙은 솔베이그가 페르 귄트를 위하여 자장가를 불러주는 마지막 장면은 마치 솔베이그를 아내이자 어머니처럼 보이게 만든다. 분명 입센의 의도적인 연출일 것이다. 어머니이자 아내는 흔히 말하는 여성적인 것의 상징일 테니. 이 극시를 즐기는 것은 이 위대한 극작가의 다양한 천재성을 맛보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1막 노르웨이 산악지방, 농가
'페르 귄트'는 부유한 농부의 외아들로 태어났으나 부친이 재산을 낭비한 끝에 세상을 떠난 뒤로는 모친 '오오세'와 가난한 살림을 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는 모친 '오오세'의 지극한 사랑 속에 힘센 개구쟁이 청년으로 성장한다. '페르귄트'는 장차 크게 성공할 것을 꿈꾸고 있을 뿐, 일하기를 싫어하며 엉뚱한 행동만을 하고 다닌다. 이러한 '페르귄트'의 대담성은 끝이 없었으며, 마을 사람들은 아예 상대조차 하지 않는다. 마을처녀 '잉그리드'의 결혼식 날 혹시나 말썽을 일으킬까봐 만류하는 어머니를 가두어 두고 '페르 귄트'는 축하파티에 참석한다. 그런데 그날 새로 이사 온 청순한 모습의 독실한 기독교 집안처녀 '솔베이그'를 만나자 댄스 파트너가 돼줄 것을 청원한다. '솔베이그'의 부친도 이를 승락하며 '페르귄트'와 '솔베이그'는 이것을 기회로 서로 강인한 인상을 받게 되고 사랑을 느끼게 된다.
한편 바보 '마스모어엔'과의 결혼을 못 마땅해한 '잉그리드'가 산속으로 도망한다. 이 사실에 당황한 '마스 모엔'은 '페르귄트'에게 '잉그리드'를 찾아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페르귄트'는 화사하게 신부로 단장한 '잉그리드'의 모습을 보고 망상에 사로잡혀 그녀를 납치하여 산으로 끌고 간다.
2막 깊은 산속
'잉그리드'와 하룻밤을 같이 한 '페르귄트'는 그녀에게 싫증을 느낀 나머지 그녀를 마을로 내쫓고 더 깊은 산 속으로 도피한다. 한편 '오오세'는 깊은 절망 속에서 아들을 찾아 산중을 헤맨다. 이런 '오오세'의 슬픔을 동정한 '솔베이그'의 가족도 함께 합세한다. 그런 중에도 '솔베이그'는 '오오세'로 부터 페르 귄트'의 모든 것을 관심 있게 들으려 한다. 한편 산속으로 피신한 '페르귄트'는 자기의 처지와 부합되지 않는 이상의 세계 속을 방황하다가 혼미하여 쓰러진다. 그는 왕만 될 수 있다면, 하는 일념으로 도브레 족장의 딸 '녹의의 여인'에게 자신은 '오오세' 여왕의 아들이라고 말하며 구혼을 한다. 마침내 둘이는 '도브레' 왕의 허락을 얻고서 결혼하고 '녹의의 여인'은 아이를 잉태한다. 순간 자기의 처지에 식상한 '페르귄트'는 새 시상 세계를 추구하고자 갈등하는 중 '솔베이그'의 환상을 보고 방황에서 깨어난다.
3막 오두막집
숲속에 오두막집을 지어 생활의 터전을 잡는 '페르귄트'는 성령강림의 날 '솔베이그'가 찾아온다. 그녀는 평생을 사랑하는 '페르귄트'와 함께 하겠다는 신앙의 신념을 갖고
찾아온 것이다. 이로써 두 사람은 사랑의 희열로 가득 찬다. 그럴 때 '녹의의 여인'이 나타난 '페르귄트'를 괴롭힌다. 그녀는 '솔베이그'에 대한 질투심으로 충만해있다. 결국 사랑하는 '솔베이그'에 해가 미칠 것을 두려워한 '페르귄트'는 기다려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노모의 곁으로 돌아간다. 본가에 도착한 '페르 귄트'는 어이없게 노모의 임종을 보게 된다.
평소 어머니의 사랑에 소홀했던 자신을 속죄하며 어머니의 영혼을 평안의 길로 인도해 줄 것을 주에게 절규한다. 끝내 '오오세'는 아들의 사랑에 포근히 싸여 평안히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페르 귄트'는 먼 바다로 정처 없이 방랑의 길로 떠나간다.
4막 모로코의 남서해안
세계 여러 나라를 상대로 노예매매, 쌀, 럼주 등의 장사로 거부가 된 '페르 귄트'는 전쟁을 기화로 더 많은 치부를 하여 전 세계의 왕으로 군림하려는 욕심을 품는다. 하지만 상인들의 배신으로 어이없이 빈털터리로 전락한다. 그러나 우연히 말과 옷, 보석을 얻게 되면서 예언자인양 행세하다가 아라비아 추장의 의붓딸 '아니트라'의 요염한 모습에 넋을 잃고 만다. 그렇지만 '아니트라'는 그의 재물만을 다 챙기고선 의붓아버지의 품으로 훌훌 떠나버린다. 다시 빈털터리가 '페르 귄트'는 실수를 뉘우치며 예언자로 행세한 자기의 과실을 실소한다. 한편 '솔베이그'는 쓸쓸히 김쌈을 하면서 '페르 귄트'를 생각하며 그리움을  노래한다.

5막 갑판 위와 솔베이그의 오두막집
노르웨이의 가까운 북해상의 배 갑판 위, 부자가 된 '페르귄트'가 백발의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간다. 하나 폭풍을 만나 조난당하는 바람에 구사일생으로 목숨만을 건진 채 고향마을로 들어산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성령강림의 날, '솔베이그'의 오두막집 앞에서 자신의 집인 줄도 모른채 양파를 벗겨가며 자신의 허무한 인생과 양파를 비교한다. 그때 '솔베이그'의 노래가 조용히 들려온다. 그는 그때야 비로소 여기가 자신의 집임을 아록 자신의 왕국은 다른 어떤 곳도 아닌 이곳임을 깨닫는다. 그는 '솔베이그'에게 무한히 사죄한다. 그러나 그녀는 관대한 어머니의 모성애처럼 그를 포옹하며 낮은 목소리로 자장가를 노래할 때 조용히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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