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꼽추 왕국〉의 원서 제목은 〈아모르프 도텐부르크>이고, 블랙코미디에 속하며 알프렛 자리의 영향이 두드러진 연극이다. 작품의 배경은 중세의 가상왕국들이며, 극행동들은 잔혹하고 원시적이고 황당무계하다.
줄거리는 오텐부르크왕국에서 한스왕의 정치적 야심과 맹목적 애정을 이용하여 교활한 꼽추는 지진아인 왕자 아모르프를 살인도구로 만든다. 그 아모르프에 의해 모든 불필요한 일들이 제거되고 인접 국가들을 침략하여 오텐부르크는 최강국이 되지만 동시에 야만적이고 지옥 같은 나라가 된다. 마침내 야수화한 아모르프에 반기를 든 동생 아스톨프에 의해 오텐부르크가 해방되고 꼽추에 의해 아모르프는 죽임을 당하지만, 꼽추 자신은 회계 성서, 즉 모든 경제적 정보와 전략을 거머쥔 덕분에 아스톨프의 새 왕국에 편입되면서 막이 내린다.
그룸베르크는 알프렛 자리처럼 계획적으로 천박하고 거친 언어들과 욕설을 대사로 시용하여 극적 분위기에 그로테스크함을 부여한다. 또한, 단어의 발음에서 이중 의미가 감지되도록 함으로써 이미지의 연상 작용을 야기 시키고 나아가 작품의 의미구조를 보강한다. 가령, 지진아인 주인공 아모르프는 극이 중반을 지날 때까지도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여 애쓰면서 "아모르(Amor)”만을 연발하는데, "아모르”는 발음상으로 프랑스어 "아모르(a mort)와 동일하기 때문에 관객에게 “죽여라”로 들려서 블랙 유머를 산출한다. 등장인물들은 꼭두각시들 같고 연극적 분위기는 전설적이고 악몽 같다. 이러한 특성을 지닌<꼽추 왕국>은 폭력과 웃음, 충격과 재미, 잔혹한 무대와 교훈적 전언을 능란하게 교직한 일종의 불르바르 극 같은 '잘 짜여진 극'이며, 따라서 관객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어서 초연 때 대단한 상업적 성공을 거둔 바 있다.

<꼽추 왕국>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개인이라기보다는 상징으로 기능한다. 주인공 아모르프는 지진아이므로 일차적으로 정신적 불구자의 상징이다. 다음, 그의 이름 아모르프(amorphe)의 어휘적 뜻은 '무정형'이므로 조작자에 의해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한 도구, 즉 비인간이다. 이 연극에서 아모르프의 주된 행동은 늙은이들과 불구자들, 어린아이들의 등에서 정확하게 견갑골 사이에 칼을 꽂아 살해 하는 것이다. 그는 처음에는 힘들게, 그러나 점차 능숙하게 대상의 등 뒤의 정확한 지점에 칼을 꽂아 인간들을 살해하며, 나중에는 인간의 등만 보면 자동적으로 칼을 내리치고 싶은 유혹과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 결국, 아버지 한스 왕과 누이 에바의 등에 칼을 꽂는 것도 아모르프이다. 극의 마지막에는 자신에게 바로 그러한 살인의 테크닉을 가르친 가정교사이자 유일한 짝인 꼽추의 등을 보았을 때 그는 참지 못하고 그 둥에 칼을 내리치다가 꼽추에게 들켜 역으로 그리고 똑같은 방법으로 죽임을 당한다. 아모르프는 연극이 진행 되는 동안 단 한 번도 울거나 웃지 않고 말도 하지 않는다. 항상 무표정하며, 어떤 것에도 감정을 나태내지 않으므로 '느낄 수 없는' 인간이다. 연극을 통틀어 아모르프의 유일한 발화행위는 자신의 이름을 발음하는 것인데, 극의 서두에서 이름의 첫 자 "아…”에서 시작하여 극의 후반부 드디어 왕이 되었을 때, "아…모…르…프…”를 어렵게 마저 발음하는 것으로 끝난다. 또한"아…빠..”라는 말의 흉내도 단 한번, 그것도 아버지를 살해한 후에야 간신히 가능하다. 따라서 '말'이 인간의 사유를 표현하는 것이라면, 그는 사유하지 못하는 인간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아모르프의 사회적 기능은 불필요한 입들의 제거이다. 이상을 종합해볼 때, 아모르프는 '살인기계'로 조작된 자동인형의 상징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아버지 한스 왕에 의해 그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먹여진 인간의 선혈은 그를 '야수'로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등만 보면 칼을 꽂고 싶은 그의 강렬한 충동과 살해 후 그가 내지르는 자기 이름의 첫 글자인 '아…, 아…, 아…' 소리, 그리고 '아모르'(죽여라!) 등은 그가 야수 화 된 인간임을 나타낸다.

한스 왕은 ‘히틀러'의 메타포이다. 한스 왕은 유치한 어린이 노래이긴 하지만, 한때 노래를 애호했고 아모르프의 살인행위를 은폐하기 위하여, 그리고 사촌들의 반란을 무마하기 위하여’ 또한 자신의 침략행위를 미화시키기 위하여, 유려한 언사로 긴 웅변을 늘어놓는다. 등장인물들은 일단 그의 연설을 듣고 나면 모두 이성을 잃고 그의 말에 설득 당하고 만다. 이러한 한스의 캐릭터는 한때 화가지망생이었고 뒤이어 탁월한 웅변술로 변질된 민족주의, 즉 나치즘에 대한 열광을 국민들에게 불러일으키고, 종국에는 전쟁과 살육행위 마저 미화시켰던 히틀러와 매우 유사하다. 한스와 히틀러는 '광기'라는 공통분모도 가지고 있다. 둘째 왕자인 아르놀프는 나약한 지성인의 상징, 막내 아스톨프는 행동주의자, 제2차 대전 당시 레지스탕스의 지도자의 상징이며, 메를르 사제는 무력한 종교인의 상징이고 음유시인은 현실 파악을 못한 채, 환상 속에서 살고 있는 감상적 예술인의 상징이다. 사촌들은 기회주의자 정치인들을 상징한다.
이 연극에서 또 하나의 주인공인 흉측하고 불길한 꼽추는 나치체제를 이용했던 상업과 경제를 상징한다. 그는 아모르프를 자신의 계획대로 교육시켜서 살인기계를 만들고 왕을 만들어 자기의 이익을 모두 챙겼을 뿐만 아니라, 아모르프가 패전하자 그를 죽이고 대신 회계 성서를 훔친다. 그 회계 성서로 꼽추는 승리자이자 새로운 왕 아스톨프와 거래하여 다시 새 왕국의 신하로 편입한다. 연극의 마지막, 막이 내린 무대에 잠시 조명이 들어오면 무대 앞면 객석을 마주하고 회계 성서를 손에 든 꼽추들이 일렬로 서있다 이 마지막 장면 은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이제 새로운 '숨은 신(神)으로 등장한 경제력의 음울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꼽추 왕국>에서 등장인물들 은 두 그룹으로 나뉜다. 한편은 아르놀프와 에바, 그리고 음유시인이며, 다른 편은 이들을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들이다. 전자는 범죄 및 살육과 무관하고 부패하지도 않았지만, 나약하고 현실감이 없어 환상 속에서 사는 지성인과 예술가이며. 후자는 서로 형태만 다를 뿐 모두 부패한 범죄자들이다. 선명한 방법으로 살인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아모르프와 다르게 그들은 은밀한 방법으로 똑같은 범죄들을 저지르고 있다. 이처럼, 그룸베르크는 등장인물의 구성에서 알레고리와 상징을 적극 활용하면서 정치적으로는 나치즘, 그리고 무의식에 서는 본능적 잔혹성과 광기를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꼽추 왕국>은 사회-문화적 맥락에서는 현대 서양사회에서 정경유착의 알레고리이며, 정치적으로는 나치즘의 메타포이다. 또한, 이 작품은 안정되고 풍요로운 자본주의 사회의 이면에 감추어진 이기주의와 진리의 허구성, 그리고 현대사회의 새로운 신(神)인 '경제'의 위력을 폭로하고 있다. 다른 한편. 그룸베르크는 극행동의 잔혹성과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을 통해서 인간의 내면에 숨겨 있는 광기, 야수성, 파괴욕망 등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무정형'을 의미하는 아모르프가 살인기계로 만들어지고 그의 모든 범죄가 합리화되어가는 과정은 인간사회의 무서운 특성 중의 하나인 '조작행위'를 나타내어 관객들에게 깊은 충격을 준다. 같은 맥락에서 한스왕의 유려하고 강한 설득력을 가진 웅변술은 '말'에 의한 또 하나의 조작행위이다. 육체적 불구자 꼽추와 정신적 불구자 아모르프가 다스리는 오텐부르크 왕국의 궁전은 야수들의 사육장처럼 지하의 철창 굴로 개조된다. 이것은 야수화 된 인간들의 세상을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비판하고 있는 무대 적 이미지로 풀이할 수 있다.
이처럼, 그룸베르크는 중세의 음울하고 잔혹한 전설 같은 연극 '꼽추 왕국'을 통하여 오히려 현대사회의 광기와 체계적인 조작행위. 현대인들의 허위의식 혹은 정체성의 상실 등을 반영하고 있다 하겠다.
〈아모르프 도텐부르크>는 한국에서 1989년 〈꼽추 왕국>이라는 제목으로 이병훈 연출. 현대예술극장에 의해 초연되어 백상 연극대상을 받은 바 있다.

작가소개 Jean-Claude Grumberg
그룸베르크는 1939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유태계 이민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집단수용소에 강제 수용된 후 생사를 알 수 없었다. 어머니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양장 재봉사로 일했는데, 그 영향으로 그룸베르크는 청년시절 한때 견습 재단사로 일하면서 무명의 배우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1960년대 말부터 그는 희곡작품들을 쓰기 시작했고 1970년대에는 프랑스연극의 새로운 사조로 등장한 일상극 운동의 대표주자로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한다.
그러나 그룸베르크의 연극세계는 확연하게 일상극의 특성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그의 극작품들에는 아방가르드적인 특성과 서사극, 그리고 대중극의 특성이 혼합되어 있다 그의 초기작품들은 특히 아방가르드의 경향이 두드러지면서도 패러디를 활용한 극 형태이며 정치적 이데올로기, 사회적인 불평등과 소외, 경직된 민족주의 등을 다루고 있다. 그는 강렬하고 잔혹한 이미지들을 동해서 인상생활에 내재하는 폭력과 인습에 젖은 사회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갈등들을 표출하고자 한다. 그 적나라한 이미지들은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주어 그동안 소홀하게 내버려 두었거나 습관적으로 받아들였던 사회의 부조리 혹은 무의식의 욕망들을 직시하게 만든다. 그 대표적 작품이 〈꼽추 왕국>(아모르프 도텐부르크) 이다. 70년대 중반에 이르러 그룸베르크는 역사적 사실과 사회적 문제들, 일상의 부조리한 사건들과 그에 대항하는 자유로운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투쟁과 좌절 등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그의 개인적인 생의 체험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그의 연극에는 서사극 적이고 사실주의적인 특성이 두드러지고 형태적 실험보다는 주제 면에서 비판적 성찰에 더 무게를 두게 된다. 이때의 극작품들에 나타난 주제들은 좀 더 구체적이고 시사적인 것들이다. 즉, 반-유태주의, 인종주의, 국가안보와 인권 사이의 갈등, 맹목적인 이상주의, 전쟁의 광기, 노조문제,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 개인의 정체성의 상실 등인데, 이 다양한 주제들은 보편적이면서 동시에 70년대 프랑스 혹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을 다룬 시사성을 띠고 있다.

그룸베르크의 대표작품들로는 〈꼽추 왕국>(아모르프 도텐부르크)(Amorphe d'Ottenburg: 1970)],<드레퓌스>(Dreyfus: 1974), 〈엑스포에서 돌아오며〉(En r'venant Expo: 1975). 〈내일 거리로 나 있는 창〉(Demain une fenetre sur rue: 1979).〈아뜰리에>(L'Atelier: 1979) 등이 있다.<드레퓌스>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프랑스사회를 양분하고 극렬한 이념 투쟁을 불러일으켰던 유태인 장교 드레퓌스의 사건을 소재로 삼아, 국가안보와 인권, 반-유태주의와 개인의 진정성 사이의 갈등을 다룬 작품이다. 1900년 세계박람회의 정경을 소재로 다룬<엑스포에서 돌아오며>의 주제는 소위 '행복한 시대'라고 불렸던 20세기 초엽의 프랑스 사회와 물질문명에 내재한 허위의식, 중산충의 경박한 취향과 안일한 순응 주의, 격렬한 노조운동의 진지한 이상주의와 좌절 등이다.<아뜰리에>는 조악한 기성복 작업장이 무대이며 비참한 여직공들의 삶을 다룬 것으로 그룸베르크는 과거 자신의 어머니의 힘겨웠던 생활을 소재로 선택했다. 박봉과 고된 작업, 공장주의 비인간적인 혹사의 그늘에서 여직공들은 폐인이 되다시피 했지만, 그래도 생존을 위해 미친 듯이 일한다. 가혹한 인생의 희생물 같은 등장인물들. 마침내 여주인공은 과로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기는데. 그의 열한 살짜리 어린 아들이 나타나 이제 곧 자기가 자라서 가장 노릇을 할 수 있다고 소리치면서 막이 내린다. 다분히 멜로드라마 적 감상주의를 내포하고 있으면서도 이 연극은 생존의 법칙, 열정이라고 불리는 '일의 광기' 빠진 인간의 모습, 척박한 노동조건에 대한 작가의 예리한 비판의식이 담겨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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