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급 작가’를 자처하는 극작가 박현철이 도발적인 신작인 ‘프린세스 봉’은 내용이 흥미롭다. 조선 시대의 커다란 스캔들로 꼽히는 세종의 며느리 세자빈 봉 씨의 동성애를 다룬다. ‘세종실록’에도 기록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박 작가 특유의 직설 표현과 언어유희, 숨 가쁜 리듬을 버무린 조선 시대 여인의 섹시 코믹 활극이 전개된다. 사랑이 오지 않으면 찾아 나서는, 봉 씨의 저돌적인 사랑 이야기는 거침없는 표현 탓에 ‘19세 이상 관람 가’로 결정했을 정도다. 박 작가는 “잘 다듬어지고 조탁된 형식만 연극의 전부가 아니지 않을까. 허술하고, 거칠고, 부족하더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시원하게 하는 반항적인 무대를 추구했다. 등장, 퇴장도 마음대로 하고 연극적 문법을 무시해버릴 때도 많았다. 패러디, 모방, 속어도 넘쳐난다. 그 속에서 다른 관점을 찾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설명했다.

줄거리
세종의 첫째 아들 향은 두 번 결혼한다. 첫 번째 정실인 김오문의 딸 휘빈 김씨가 압승술로 폐출 당하자 김오문은 가문을 더럽혔다며 자기는 자결하고 딸과 아내는 사약을 마셔죽는다. 뒤를 이어 창녕현감을 지낸 봉여의 딸이 장차 문종이 될 세자의 빈이 된다. 합궁하는 날 어설픈 순빈 봉씨가 등창을 앓고 있는 세자를 안고 넘어지다가 세자의 등창을 터뜨리는 촌극을 벌인다. 첫 번째 합궁이 실패로 끝나 봉씨가 수심에 잠겨있는데 세종과 중전이 그 소식을 듣고 찾아온다. 세종과 중전은 봉씨로부터 자초지종 합궁의 실패담을 듣고 며느리 봉씨에게 합궁의 묘수를 가르쳐주며 다시 세자를 봉씨의 침전에 가도록 권유하겠다고 약속한다. 세자가 길일을 잡아 봉씨 침전에 들른다. 꿀맛 같은 합궁이 끝나고 봉씨와 세자는 한담을 나눈다. 봉씨는 수양과 동생들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을 경계하고 예기치 않으면 그들을 쳐야 한다고 세자에게 성급하게 조언한다. 그러자 문약한 세자는 봉씨의 거침없는 기질과 위험한 발상에 당황해하며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아니나 다를까 그 뒤로 세자는 봉씨 침전 출입을 금한다. 봉씨는 별실자탄가를 부르며 세자 오기를 기다리지만 세월만 갈 뿐이다. 끓어오르는 이팔청춘에 호방한 북방계 기질을 가진 봉씨는 인고의 삶을 길게 가져 갈 위인이 못된다. 설상가상으로 세자가 후궁 3인을 둔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봉씨는 자포자긴지 아니면 자기 본성대로 살려는지 시녀 소쌍을 꼬드겨 동성애 파트너로 삼는다. 그러나 봉씨의 동성애 소문은 구중궁궐에 삽시간에 퍼진다. 그 소문을 들은 세자는 시녀 소쌍을 문책하여 사실을 확인하는 지경에 이른다. 봉씨는 자기가 동성애를 한다는 것을 세자가 알았다는 것을 또 다른 시녀 석가이로부터 전해듣는다.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넜다고 생각한 봉씨는 팜므파탈이 되기로 결심한다. 여자에게는 심심유곡 같은 구중궁궐을 우롱하고 유린하기로 작정하자 바로 실천에 옮긴다. 세자가 후궁 3인과 잠자리에 들면 계명지계를 한답시고 시녀 석가이와 함께 꽹과리를 치고 북을 치며 춤을 추기도 하고 소쌍과 내연의 관계인 단지를 잡아다가 입에 횃불을 지지는 ‘쥐부리글려’라는 고문을 가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세자의 소지품을 궐 밖으로 유통시키고 화장실 구멍으로 남자를 훔쳐보기도 한다. 결국 순빈 봉씨에 대한 추문은 세종 귀에까지 들어간다. 세종은 진노하여 봉씨를 추궁하기 위해 봉씨 방에 들른다. 봉씨는 세종의 질문에 세치 혀로 청산유수처럼 받아친다. 봉씨의 기행은 점입가경으로 치닫는다. 봉씨는 후궁 권씨가 아기를 가졌다고 하자 자기도 아기를 가졌다며 거짓말을 한다. 임신을 얼마나 열망했으면 상상 임신이 된 것이다. 세종과 세자 그리고 중전 등 모든 백성들이 기뻐한다. 그러나 상상 임신은 오래가지 못한다. 봉씨가 낳은 것은 목침이다. 세종이 대노한다. 마지막으로 문종의 첫 번째 부인 휘빈 김씨를 폐출하게 만들고 세자를 자기 방에 가지 못하게 수작을 부린 원인제공자 효동과 덕금을 치도곤 패고 그녀들을 구하러 온 세자에게 정신차려라고 일침을 가한다. 봉씨는 파란만장한 궁중생활을 끝내려고 한다. 이대로 가면 죽음은 명약관화한 것. 그러나 앉아서 당할 위인이 아니다. 봉씨는 격쟁을 요청한다. 세종과 맞선 봉씨는 세종과 첨예하게 대립한다. 폐출의 진짜 이유가 한글창제의 걸림돌이 될까 그런지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세종은 새파랗게 질린다. 그러나 봉씨에게는, 우리 민족 만대의 자랑이 될 한글창제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걸 역이용하여 목숨을 건져 사가에 나가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는 자유인이 되고 싶을 뿐이다. 역사가 가만 둘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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