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라주택 안방에서 잔인하게 칼에 찔린 내연의 관계인 듯한 남녀 시체 두 구가 발견된다. 남자는 손목이 잘린 채 가슴에 치명상을 입었고, 나체의 여자는 복부에 네 군데의 칼자국이 있는데... 그런 후에 막이 오른다. 살인전담수사반 여성반장, 현장보존을 맡은 신출내기 순경, 민완형사, 법의학자, 베테랑 수사과장 다섯 사람이 저마다의 추리로 사건의 진실을 물어나가는 작품이다. ‘나생문에 대한 오마쥬‘란 부제가 붙은 작품이다.

격렬한 섹스를 하다가 죽음을 맞이한 두 남녀가 있다. 심장에 칼을 맞고 손목 하나가 잘린 채 바닥에 누워있는 남자. 여러군데 칼에 찔린 상처를 입고 침대 옆에 기대어 쓰러져 죽은 여자. 그리고, 침대에 잠들어 있는 그 여자의 남편. 온 방안은 죽은 여자의 것인지 남자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피가 난무하고, 방안 곳곳에 격렬했던 그날 밤의 흔적을 보여주듯 음습하고 그로테스크한 기운이 감돈다. 이 하나의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러 가지 억측들이 난무한다. 뛰어난 의학지식을 가진 법학 박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어려운 전문용어를 동원해 가며, 사건당일을 구성해낸다. 자칭 베테랑이라는 능청스런 형사는 노련한 자신의 직감을 피력하며 열심히 관객에게 이 사건이 벌어졌던 살인의 과정을 보여준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경위를 밝혀내야 하는 자신들의 본분에 충실하다. 두 남녀는 어떻게 죽게된 것일까?.... 어떤 포즈로 체위를 하다가, 칼에 찔리면, 시체에 새겨진 칼자국의 위치가 될까? 위에서? 아래에서? 아님 옆으로? 이런 형사들의 추리는 죽은 사체가 벌떡 일어나, 형사들의 나레이션에 맞춰 살인사건을 재현하는 모습이라던가, 형사들이 주문하는 체위를 말없이 열심히 행하는 시체들의 행위로 보여지며 무거운 살인현장에서 웃음으로 자아낸다. 남자 둘에 여자 하나. 한 방안에서 남편이 최면제를 들이마신 채 자고 있고, 외간남자와 격렬한 육체의 유희를 즐기던 아내는 그 정부와 함께 싸늘한 시체로 바닥에 누워있다. 그리고 정부의 잘린 손목과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얼핏 보기에도 남녀 간의 더러운 불륜관계에서 기인한 그렇고 그런 치정사건임에 틀림없는 이 <장미빌라 살인사건>에 대해 좀 다른 시각을 가진 형사가 있다. 이미 사건은 일어났고, 그들이 죽게 된 경위. 어떻게 사건이 진행되었을까? 가 아니라. 무엇이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을까? 왜, 어떤 이유로 그들은 격렬한 욕망 속에 서로를 갈구하다 싸늘한 주검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되었을까? 를 던지는 여형사. 제3의 인물을 등장시켜 사건을 마무리 하려는 남자들과는 달리, 여형사는 그녀의 죽음이 사실은 자살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게 된다. 극은, 간단히 말하자면, 세 형사가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밤을, 나름대로의 추리를 통해 관객에게 보여주는 형식을 취한다. 그래서일까? 관객은 철저히 형사들의 나레이션에 따라 움직이고 호흡한다.
때때로 보여 지는 재미난 상황과, 적당히 보여지는 야릇하지만 코믹한 분위기에 따라 극은 술술 흘러간다. “어떻게” 가 아니라 “왜”... 라는 시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마지막 여형사의 나레이션은 분명 설득력이 있고, 모든 이들의 공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관객들 역시 “ 아... 하... 그랬던 거였구나 ” 하는 공감과 죽은 여자(유민주)의 불쌍한 삶을 동정하며 극은 마무리 지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거울속으로>라는 원제목에 맞게 거울하나와 두 남자 주인공이 등장한다. 유민주의 남편이었으나, 그녀에게 위안과 버팀목이 되어 주지 못했던 최성태. 그녀의 육체를 사랑했으나, 끝없이 그녀를 소유하고 지배하려 했던 박철. 보일 듯 말듯 싸늘한 웃음을 입 꼬리에 걸친 최성태의 맞은편에 아니, 최성태의 거울 건너편에. 무표정한 얼굴로 박철이 오롯이 서있다. 그들만이 알 수 있는 그들만의 언어로, 얘기하며 그들은 바라본다. 어쩌면, 그것은 관객들과 형사들을 속였다는 자축의 미소 같기도 하다. 유민주는...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엔딩음악이 흐르며,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두 남자의 잔상이 남아 무대를 맴돈다

아직도 이 사건은 끝나지 않은 복선을 여운으로 주며 끝낸다.....
이미, 살인사건은 일어났다. 그것이 두 남자 형사의 주장처럼, 타살인지 혹은 여형사의 말처럼, 자기증오에 견디지 못한, 유민주의 자살인지는 내게 중요치 않았다. 다만, 남들 눈에 비친, 싸구려 삼류연애소설 속에나 나오는 창녀처럼 육체로 육체로만 육체의 모든 것을 걸었던 연명하던 유민주의 삶이 너무나 애처로웠다. " 남편과 자던 방에서, 외간남자와 섹스를 벌이다 죽음을 맞이한 한 여자."
아마, 위의 한 줄을 기사로 접했다면, 적당한 가십거리로 넘겨버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남성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남편의 열등감이 주는 학대와, 변태적 성향을 지닌 옛 애인의 성적유린 속에서 살아가던 그녀의 실제 삶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스릴 있고 자극적이진 못했던 거 같다. 그녀가 선택했으나, 결국은 그녀에게 끔찍한 죽음을 몰고 왔던 두 남자. 외로운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외로운 영혼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서로의 육체를 보듬어 안는 사람들이 많아질 거 같다. 섹스라는 행위 속에서, 인간들은 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그렇게 조금씩 위로받고 기뻐하는 것은 아닐까....
영원히 고독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란 존재는... 아니 굳이 거창하게 말하지 않아도, <장미빌라 살인사건>속 유민주라는 한 인간은, 상처 입은 자신의 영혼을 위해, 혼자임을 두려워하는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토록 섹스라는 사랑의 껍데기를 갖고 싶어 했던 것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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