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머니와 중년의 어머니, 애기엄마, 처녀 등을 등장시켜 자녀를 잉태하고 낳아 꿋꿋하게 길러온 모성의 세계를 연대성, 상징성 있게 그려낸 이 작품은 각기 다른 수난의 시대를 살아온 이들이 결국은 한 핏줄의 자매이거나 자손임을 일깨워주는 내용으로 엮어진다. 작품의 표현방식은 '연속성 있는 행동의 구조화'로 동일한 인물들이 각기 다른 민족수난 시대를 관류하면서 그 나름의 일관된 행동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즉 6.25전쟁과 병자호란, 임진왜란, 몽고의 난, 연의 난에 이어 다시 6.25전쟁으로 시대가 바뀌어가나 등장인물은 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각 시대를 관통하면서 나름대로 일관된 자기행동을 전개한다.

불행한 역사가 교정되지 않고 되풀이되고 있다는 작가의 악 순환적 역사인식은 <넋씨> 에서도 이어진다. 전체 5경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장면의 뼈 전환을 통해 우리 역사의 반복되는 국난기를 차례로 조명한다. 한국전쟁, 병자호란, 임진왜란, 몽고의 난, 그리고 연의 난 등 민족사의 시련기가 장면을 달리하여 차례로 조명된다. ‘불행한 역사의 대물림’ 이란 자조적 역사인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 또한 <불가불가>와 동궤에 놓인다. 특히 이 작품은 일종의 ‘플래시 백’ 기법을 응용하여 민족사의 비극을 역순으로 조명한다. 한국전쟁기의 현재 시점에서 출발한 작품은 시간을 거슬러 오르며 차례로 병자호란, 임진왜란, 몽고의 난, 연의 난 등을 다룬 뒤, 다시 한국전쟁기의 현재 시점으로 귀환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연쇄적인 플래시백 기법은 작가의 인과론적 역사인식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우리의 현재가 과거와 엄밀한 인과관계에 의해 결속되어 있음을 환기시킨다.
사실 오늘의 분단현실은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원인에 따른 결과이다. 한국전쟁은 다시 외세에 무력했던 병자호란의 역사적 유산이며, 이러한 논리는 임진왜란, 몽고의 난, 연의 난에도 마찬가지로 작용될 수 있다. 요컨대 작가는 플래시백 기법을 통해 고조선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사 전체를 인과율의 사슬에 묶어 재구성해보이는 셈이다. 때문에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아슬아슬한 스릴 속에서 우리는 면면히 이어져온 민족사의 일관된 흐름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이러한 역사적 연속성은 단일한 플롯에 의해 한층 강화된다. 사실 이 작품은 장면마다 시대적 배경을 달리 하는 탓에 다소 산만해질 위험이 있다. 이때 이러한 위험을 없애고 작품에 일관성과 통일성을 부여하는 장치가 바로 단일 플롯이다. 상이한 장면들을 단일한 이야기 구조가 관통함으로써 인과율에 기반한 역사의 연속성이 한층 부각된다. 이 때문에 만화경처럼 펼쳐지는 색다른 장면들 앞에서도 독자들은 긴장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작품을 관통하는 이야기는 ‘씨받이’의 모티프를 차용한 것이다. 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전선으로 차출된 종손을 가족들이 찾아온다. 종손은 조부모의 간청에 따라 휴가를 얻어 나오고, 그런 종손에게 조부모는 낯선 처녀와의 합방을 강권한다. 그 처녀는 일종의 씨받이로 팔려온 셈이다. 사태의 전모를 파악한 종손은 조부모의 비인간적이고 봉건적인 사고방식에 강하게 반발한다. 처녀 역시 자신은 “씨암탉”이 아니라며 울부짖는다. 그러나 두 남녀는 결국 조부모의 대승적인 뜻을 이해하고 몸을 섞는다.
사실 씨받이는 유교사회의 가부장제적 관념이 빚어낸 퇴폐적인 관습이다. 그러나 작가는 선정적이고 퇴폐적으로 비쳐온 전통에 역사적이고 정신적인 의미를 새롭게 부여한다. 그리하여 씨받이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고 민족사를 보존하려는 민족혼의 상징으로 부각된다. 씨받이는 단순히 육체의 씨를 받기 위한 상스러운 교미행위가 아니라, 민족의 넋을 받기 위한 성스러운 전수행위로 묘사된다. 조부모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후손의 씨가 아니라 넋의 씨, ‘넋씨’인 것이다.
작가가 이 작품에서 씨받이의 모티프를 차용한 것은, 독자들의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씨받이는 비극적 민족사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는 작가적 의지의 상정이다. 이때 작품의 변형된 씨받이 모티프에는 두 가지 역설적 의도가 담겨 있다. 첫째는 씨받이를 넋씨라는 의미로 재해석함으로써 ‘넋 빠진 역사’와 넋 빠진 역사를 만든 이들을 비판하고 야유하려는 의도이다. 둘째는 그런 넋 빠진 역사에서 민족의 넋을 보존해온 주체는 민초들임을 강조하려는 의도이다.
“옛날 옛날에 이 땅엔 넋 빠진 조상들이 있어 넋 빠진 싸움들을 했던 별 우스꽝스런 시대가 다 있었다.”는 마지막 장면의 처녀 대사에는 ‘넋 빠진 세상’을 만든 ‘넋 빠진 조상들’에 대한 작가의 혐오감이 진하게 묻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넋 빠진 역사를 만든 그 장본인이 곧 당대의 정치적 집권세력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역사를 망친 정치세력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엿볼 수 있는데, 이는 오늘날의 정치세력에 대한 우회적 비판이자 경고로 읽히기도 한다.
아울러 “들은 빼앗겨도 민초는 남고, 아무리 짓밟혀도 민초는 다시 고개를 들며, 씨앗을 잃지 않는 한 들은 영원히 푸르리라”는 조부의 대사에서 우리는 들풀처럼 끈질긴 민중의 생명력에 대한 경의를 읽을 수 있다. 끊임없는 전란의 역사 속에서도 정작 민족의 혼을 보존해온 주체는 궁핍하고 힘없는 민초들이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씨받이의 모티프를 역설적으로 패러디함으로써 작가는 비극적 민족사의 근본적 원인과, 그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망을 드러내고 있다. 그 악순환적 역사인식과 역설의 화법이란 측면에서 이 작품은 <불가불가>의 발전적 연장으로 이해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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