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개발 지역 끝에 남아있는 집, 가족들은 내일이면 30년 넘게 살아온 이곳을 떠나야 한다. 베트남 전쟁의 후유증으로 몸도 마음도 병든 아버지,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가출을 반복해온 어머니, 아버지의 학대를 받아온 아들과 이미 죽음을 택한 딸의 혼령이 나온다. 딸의 죽음을 모른 채 딸이 보낸 것으로만 믿는 빈 편지를 잡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부모. 이들의 삶에도 희망이 있을까.
애처로운 분위기 가운데 노인과 한 중년의 여성이 등장했다. 이 연극에서 총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한 가족이다. 할아버지, 아내, 남편, 아들, 딸. 처음에는 이렇게 다섯 인물이 차례차례 등장하기 때문에 모두 실존하는 인물인 것 같다. 하지만 연극의 흐름을 지켜보면서 안에서의 실존하는 인물은 딸을 제외한 넷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극의 배경은 재개발이 시작되는 조금은 허름한 주택가. 사위에선 한창 재개발공사가 진행 중이고, 무대가 되는 집 역시 곧 허물어질 상황에 처해있다. 이 가족들은 곧 허물어질 집에서 떠나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기 전 실종된 딸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인물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먼저 부인을 잃고 홀로 죽을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삶에 대한 관조적인 시선을 띤 손녀를 기다리고 있는 노인, 베트남 전에 참전했다가 돌아와 후유증을 앓고 있는 남편, 술에 취할 때마다 구타당하는 아내와 자식들, 아들은 서른셋이지만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듯하고, 딸은 행방불명되어 현재 전단지를 붙여 찾는 중이다. 이야기는 이러한 가족들이 실종된 딸을 기다리는 과정 중에 드러나는 심리상태의 변화를 말해주고 있다. 큰 자극적인 사건 없이 담담하게 일상을 묘사하고, 또한 실종된 딸이 연극에 개입되면서 나타내는 설정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극의 중간 중간 딸은 마치 유령처럼, 평상에도 앉았다가 가족들의 옆에서 귓속말을 한다든지 하며 극 속에 간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남은 집>은 다른 연극들과 달리 무척이나 난해한 대사들을 인물들끼리 주고받는데, 일상용어라기보다는 사람을 ‘개’에 비유한다든지 “달” 등등의 단어를 이용해 의미를 대체한다는 것이었다. 평소에 우리가 알고 있던 일차적인 의미가 아닌, 또 다른 의미를 창출해내는 단어들에 처음에는 약간 생소한 느낌이 들었으나, 극을 지켜보는 내내 무척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또한 순간순간 노인의 입에서 주어가 상실된 “언제 오느냐?” 라는 물음 역시 다의적인 의미를 띄고 있게 만든다. 무대 위에 배치되어 있는 소품들 역시 하나의 의미로 작용을 하고 있다. 남편이 계속 신경을 쓰고 있는 유리조각이 들어있는 바구니와 아들이 가지고 다니는 장수풍뎅이가 들어있는 통, 장식장, 아들이 내내 메고 다니는 가방, 옷가지 등은 모두 극 속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상징을 나타낸다.
인물들 간의 대사를 통해 그리고 ‘소리’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주변 상황을 알게 한다는 점은 무척이나 색달랐다. 하지만 대사들 간의 상징적인 단어들의 나열은 바로바로 이해가 되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딸’의 등장으로 인해서 그러한 어려움이 완화가 되었다. 딸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인물들 사이의 시간적 경계- 과거와 현재-를 무너뜨리기도 하고, 또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부연설명을 해주는 등의 아주 친절한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다. 극은 전반적으로 우울한 시선을 띄고 있으며, 삶에 대해 각자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노인의 경우, 삶에 대한 관조적인 시각을 보내고 있으면서 손녀가 돌아올 것이라는 역설적인 희망을 드러내고 있으며, 전쟁 후의 후유증으로 몸과 마음이 병들어 한때는 광폭했지만, 현재는 점점 무기력해지는 남편, 저항하지 못하고 자신의 상황에 대해 체념한 아내, 현재의 삶에 도피해버리고 외면하는 아들, 살아가는 것보다는 죽음을 택한 딸 등의 다섯 명의 시각은 극 내용에서 서서히 드러나게 해준다. 삶에 대한 각기 다른 시각을 제공하는 이들은 ‘딸의 실종’이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연결이 되고 있는 셈이다. ‘기다리지는 않지만 기다리고 있다’라는 대사를 통해 노인이 손녀가 이미 이 세상에 없음을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희망, 즉 삶을 살아가는 동기를 해치지 않게 암묵적으로 가족 모두가 동의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들은 자신의 동생의 죽음을 예감하고,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마치 딸이 보내는 것 같은 편지를 집으로 보낸다. 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하고 있는 딸. ‘진선’은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 집을 나오게 된다. 자기 자신을 산에 묻었다는 말을 통해 삶에 대한 회한이 느껴지며, 또한 집을 맴도는 과정에 삶에 대한 애착을 보여준다. 아들의 가방 속에 딸의 노랫소리가 녹음된 수많은 테이프들이 땅바닥에 떨구어지며, 실종된 딸이 언젠가는 곧 돌아올 것이라는 마음을 품으며, 극은 막을 내린다.

극 속의 ‘남은 집’은 남겨진 자들의 공간이다. 소외된 계층이 응집해 있는 공간이며, 떠난 사람을 기다리는 공간, 혹은 떠나가는 사람들을 보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 ‘남은 집’의 사람들은 제각기 상처를 가슴에 안고, 근근히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의 표상이기도 하다. 연극을 보면서 나는 가슴 한편이 무거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아마 연극 속의 인물들이 우리 마음 속에 잠재되어 있던 삶의 무게와 상처를 바깥으로 끄집어내었기 때문이리라. 화려한 효과들이 배제된 한정된 무대 안에서 전쟁, 폭력으로 희생된 사회적 약자의 무능과 고통을 다루며, 상처받는 현대인들을 비유적으로 빗대어 표현하며 ‘남은 집’은 삶에 대한 의미의 문제를 우리에게 역설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집’은 존재한다. 그것은 ‘남은 자들의 공간’일 수도 있고 이미 ‘떠난 자들의 공간’일 수도 있다. 그러한 집에서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며 또 앞으로 미래를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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