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타데우즈 칸토르 '죽음의 교실'

clint 2015. 11. 2. 22:02

 

 

 

 

 

 

죽음의 교실
그의 작품<죽음의 교실>에 이르기 전에 간단하게나마 그의 연극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살펴보는 일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오브제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1942년 폴란드는 독일군에 의하여 점령된다. 이로 인하여 문화 활동도 또한 파괴되어진다. 전쟁과 죽음 그리고 점령이라는 상황 속에서 칸토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지하 연극단체를 만드는 일이었다. 1942에 만들어진 독립극단은 칸토르가 처음으로 조직한 저항연극 단체였다.
이 극단은 1944년<율리시즈의 귀향>을 비롯하여 해방이 되기까지 연극을 공연하였다. 이 기간 동안 주목해야 할 일은 칸토르가 상징적 무대장치를 계속 했다는 점이다. 이는 위에서 설명한 그의 젊은 날 미술공부의 영향, 특히 상징주의에 힘입은 바가 컸기 때문이다.
그가 연출을 시작한 것은 1956년부터라고 할 때 그의 무대에 많은 오브제가 등장하고 스스로 무대장치를 맡아 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 점령기의 그의 무대미술작업과 많은 상관관계를 지닌다. 무대 위에 조형적인 무대장치와 오브제가 점차적으로 확대 등장하는 것은 1955년에 만들어진 그의 두 번째 극단인 "크리코트 2(Cricot 2)"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특징은 이 극단의 구성원을 살펴보아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이 크리코트 2 극단은 그 당시의 제도권 연극과는 전혀 다른 방향과 구성원으로 만들어졌다.
우선 극단은 제도권 밖의 아방가르드로서 자처하고 회화와 문학을 중요시 여기는 일종의 카페연극을 지향했다. 극단은 일종의 예술가 그룹과 같았고 전문배우들과 비전문 배우들, 화가들, 시인들, 미술이론가들이 함께 모여 칸토르와 더불어 그들의 이상을 추구했다. 구체적으로는 시인과 배우들 그리고 화가들이 모여 새로운 무대언어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칸토르는 이미 만들어진 형태를 부정하고 고정된 예술적 지식들을 변형시키고 이를 통하여 미래를 읽고 전망할 수 있는 연극무대를 추구했다.
그의 작업은 1966년 해프닝으로 이어진다.<분활선(ligne de partage)>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작품에는 한쪽에서 관객들이 도착해서 자리에 앉고 재판관과 피고가 된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런 것에 전혀 흥미를 지니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보여준다. 이런 작업의 결과 칸토르는 점차적으로 텍스트의 행동과 더불어 무대행동도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왜냐하면 텍스트의 행동은 이미 준비된 것이고 완성된 것이고 내적인 긴장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외적인 무대공연의 요소와 무대의 리얼리티 사이에 존재하는 다른 긴장감을 그는 무대장치 그리고 오브제에 담고자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역동적인 긴장감의 체계를 보여줄 수 있도록 했다.
칸토르의 연극무대는 장식으로도 미리 예견할 수 있는 장소도 아니다. 무대는 단지 하나의 방법이다. 즉 모든 오브제가 무대를 가득 차게 하고 구성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무대를 만들어야하고 동시에 파괴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무대는 움직임과 변모에 의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의 연극의 특징은 집단창작을 골격으로 삼는 점이다. 연기의 힘이란 지속적인 움직임으로 단 한 번에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칸토르 연극에서 연기는 놀이를 통하여 끊임없이 변화하는 변증법과 같다. 그의 무대는 모든 것을 전적으로, 최종적으로 긍정하는 장소는 아니다. 무대는 무대가 보여주는 것들을 다시금 질문하는 곳이 된다. 무대는 이런 모순원칙에 의하여 기능을 발휘하는 곳이다. 무대에는 가장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대 자체에 스스로 등을 돌리는 것도 아니다.
칸토르 연극은 칸토르 자신에 의하여 만들어지지만 동시에 배우의 연기에 의한 연극이라고 할 수 있다. 배우는 무대에서 끊임없이 엉망이 되고 파괴당하고 다시 부활하여 새롭게 된다. 배우는 인간의 나체 초상화다. 배우는 모든 권위와 명성을 부정하며 경멸과 빈정거림을 끌어당긴다. 배우는 사회의 규범과 통상적인 것을 버린다. 배우는 상상적인 것 안에서만 사는 존재다. 만성적인 불만족과 모든 것에 대하여 욕구불만 상태에 도달한다. 배우는 희망과 잃어버린 환상으로 가득 찬 가방을 들고 떠도는 영원한 유랑 인이다. 배우는 무관심한 이 세계의 편협함에 대항하는 이들이다.

 

 

 

죽음의 교실>에는 많은 오브제가 등장한다. 칸토르 자신도 등장한다. 다른 배우들 사이에 그의 등장은 환상을 부수는데 아주 중요한 관건이 된다. 오브제들의 수는 귀찮을 정도로 많다. 죽음과 침대, 배고픔과 십자가, 전쟁터에 가는 군인들과 십자가, 최전선에 있는 군인과 그것을 영구히 담는 사진기, 장례식과 관 내리는 기계, 파괴와 접힌 의자들, 추잡함과 학교 여자 청소원, 늙은이와 교실에 있는 어린아이들의 시체, 침대와 출산, 마른 두 개의 나무공과 아기 요람, 죽은 가족들과 어릴 적 방, 장군과 가슴이 드러나는 말, 모든 예술 작품과 감옥이라는 창조의 비극적 조건 등등 이들의 기능과 변모는 관객들의 주의를 불러일으킨다.
그렇다고 이 작품을 롤랑 바르트가 말한 대로 객체화된 연극(th tre objectal)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한 무대장치가 많은 연극이라고도 부를 수 없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오브제는 결코 배우들을 휩쓸지는 않고 어떤 환상을 만들지도 않는다. 그 반대로 배우들은 오브제에 의미를 부여하고 오브제를 조정하고 오브제를 만들고 혹은 파괴한다.
무대는 인간들이 끊임없는 행동하는 곳이다. 이 칸토르의 연극에서 등장인물들은 생산하고 또 생산하기 위해서 파괴한다. 마찬가지로 극중에 칸토르의 등장은 관객을 곤란하게 만든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관객들이 지닐 수도 있을 신기루 같은 것을 방해한다. 칸토르는 이 작품 속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이처럼 존재한다. 공연전부를 지휘하고 연출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필요한 순간에 약간의 자극정도를 줄뿐이다. 칸토르 역시 극속에 하나의 물질적 요소에 불과하다.
이 연극은 이중적인 인형극이다. 여러 인형과 꼭두 그리고 마네킹 등이 등장한다. 마네킹은 죽음을 의미한다. 배우들은 서로 합쳐지기도 하고 인형들과 더불어 혹은 인형처럼 행동한다. 이 작품은 칸토르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종말과 영원한 회귀가 그 주제다. 연기자와 인물은 마네킹에 의해 이중화된다. 일종의 초인형인 셈이다. 관객들은 점차 누가 인형이고 배우인지를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실제로 이 작품에는 칸토르와 칸토르의 어린 모습이 인형으로 나타나 유년기 기억으로 돌아간다. 그 인형은 죽은 칸토르 모친의 무덤 위에 설치되기도 한다.
이 연극은 인형극인 동시에 살아있는 배우들의 연극이다. 살아있는 배우들의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찢어질 대로 가난한 사람들, 사형집행인들 안에서 진행된다. 무대 안은 가장 헐벗은 것들로 꾸며져 있고 춤추는 행진리듬으로 이어지고 사라짐과 새로운 것의 등장이 계속된다. 일종의 부활과 계시를 나타내는 공연이다. 또한 무대 위에서 아주 오래된 의자들, 먼지 속에 떨어져 찢어진 지 오래된 책들, 작은 화장실 등등이 보인다.
의자에는 늙은이들이 앉아 자동적인 시선과 움직임으로 그들이 아직도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손가락 하나를 올리고 그리고 두 개의 손가락, 점차 모든 손가락을 들어올려 숲을 이루고 과거를 회상한다. 늙은이들의 어린 시절 즉 죽은 어린아이들이 마네킹으로 등장하고 죽음의 이미지들을 보여준다. 추억의 왈츠음악이 흐르고 늙은이와 어린이 모습을 한 마네킹은 삶과 죽음에 관한 대화를 이어간다.
주변에는 어린이 자전거를 탄 늙은이, 요람에 들어가 있는 여자, 창녀들, 교실에서 자습을 감독하는 이, 교실을 청소하는 여자가 보인다. 이 여자는 모든 오브제와 등장인물들을 닦아내고 걸레질한다. 마치 죽음의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절도가 있고 세밀하게 한다.
모든 칸토르의 작품은 모델로서의 오브제와 그것들이 주는 리얼리티와의 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리얼리티는 파손 당하여 죽음에 이른 리얼리티다.<죽음의 교실>은 죽음과의 만남에 다름이 아니다. 관객은 이 작품을 통하여 비극적인 이미지만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에 숨겨져 있는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부드러운 정서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듬고 삶에 희망 같은 것을 안겨다 주기 때문이다.

 

 

 

'죽음의 교실' 설명/안 클로소비츠(칸토르 연극 전문연구가)
'죽음의 교실' - 극적 강령화(A Dramatic Seance)는 칸토르 특유의 텍스트들과 1930년대 선도적인 폴란드의 전위 작가, 스타니스와프 비트키에비i(Stanislaw I. Witkie- wicz), 비톨드 곰브로비츠(Witold Gombro- wicz)와 부르노 술츠(Bruno Schulz)의 작품에 기초하여 구성된 것이다.
몇몇 등장인물과 대사들. 그리고 몇몇 장면의 구조와 약간의 독백은 비트키에비츠의 희곡 '튜모아 브레인나드'에서 따온 것이다. 곰브로비츠에 있어서는 그의 작품에 나타난 오브제들의 상징적 처리 - 점점 거대해지고 그로 인해 생경해 보이는 인간의 육체('발꿈치', '손가락', '등’, 찌푸린 얼굴), 그리고 학생들의 농담과 익살맞은 분위기를 끌어왔다. 마지막으로 부르노 술츠의 경우, 주인공이 자신의 말년에 낡은 교실로 돌아와 평화에 대한 모든 제안을 제시하는 단편 소설 '연금수령자'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 술츠의 글에서 칸토르가 취한 또 다른 부분은 그 당시 남동부 폴란드의 조그만 마을의 특색 있는 지방색과 환경이었다. 이는 1918년 이전 오스트리아 점령 초기의, 아직까지 생생하게 남아 있는 평범한 유태인들에 대한 기억과 전통이다. 술츠는 자기 작품에 삽화를 직접 그리기도 했는데, 이는 희곡의 시각적 형식에 영감을 주었다. 삽화들은 자연주의와 표현주의가 서로 묘하게 조화를 이룬 것들인데 이처럼 술츠의 소설에서는 그림에서 기인한 듯 한 학교 교실의 뒤틀려진 형상이 묘사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마임과 제스처, 음악 그리고 동작과 맥을 같이 하는 구술 텍스트는 '죽음의 교실'을 구축하는 많은 공연요소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구술 텍스트를 인용하여 기록된 공연 기록은 공연 텍스트만큼 중요하다.
나의 관점에서 공연을 그대로 글로 서술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시각적 볼거리의 '언어'를 산문의 '언어'로 바꿔서 적절하고 정확하게 '죽음의 교실'을 묘사하는 것. 이를 다른 말로 하자면 카프카나 술츠의 문체와 똑같은 스타일과 형상화의 힘으로 짧은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때때로 보다 주관적이고 은유적인 제시가 함께 묘사되면서, 그 기록은 무대행위에 대한 보고서로 보여지게 될 것이다.
90분가량 공연되는 '죽음의 교실'은 구성상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실제로 그 간격은 없다. 무대장치는 낡은 옛날 교실이다. 학생들은 젊지 않고 늙었다. 그리고 직업배우들에 의해 연기되어지지 않는다.(물론 몇 명은 직업배우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과 꿈들은 작품이 상연되는 동안 관객들의 연상 작용을 통해 섞여진다. 선생 - 무대 위에서 시종 천천히 걸으면서 (음악적 감각으로)지휘하는, 이 꿈같은 연극을 지시하는 사람은 - 칸토르 자기 자신이다. 여기에 묘사된 것처럼 공연이 항상 똑같이 재현되지는 않는다. 또한 항상 같은 순서로 실행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 개개인의 고유한 인식과 마찬가지로 '죽음의 교실' 또한 매일 밤 항상 변화한다.

 

 

 

'죽음의 연극'선언(축약)
이 선언문은 총 10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일관된 기조는 연극적 환영을 일으키는 모든 연극 장치에의 통렬한 반박이자 거부이다. 여기에는 칸토르가 주장하고 끝없이 탐구한 연극세계가 담겨져 있다. 각 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장 : 배우가 신성함을 잃고 값싼 모방으로 군중들의 통속적인 취미를 만족하게 하는 순간 오늘날의 연극이 탄생하였다. 인간 - 자연의 피조물 - 은 예술작품에 있어 이질적인 침입물이다. 그러므로 크레이그의 주장대로 살아있는 배우를 제거하고 인형으로 대체하라. 그렇게 하여 극장을 보호하라.
2장 : 크레이그는, 예측할 수 없는 정서와 열정에 휘몰리고 그럼으로써 우연성에 지배되는 인간을 예술작품의 이방인으로 보았으며 예술 고유의 특성을 파괴하는 요소로 생각하였다. 또한 클라이스트도 인간의 유기적 조직을 예술적 허구에의 이질적 침입물로 보았다. 이에 우리는 다시 초인형의 상상력의 연극으로 돌아가길 요구한다. 그리하여 존재의 즐거움을 숭상하고 죽음에 대해 신성하고 기쁨에 찬 존경을 표시하자.
3장 : 복제, 인형, 난장이들-인공적 창조물들, 인간의 꿈들, 죽음. 여기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물리적 에너지원인 기계적 움직임과 인간 신체조직의 엄격함. 그리고 탁월한 메커니즘이 창출된다.
4장 : 연극은 인간(조직)과 그의 법칙에 따랐을 때. 즉 연극이 약화되었을 때 자동적으로 그리고 합리적으로 삶의 모방과 재현 그리고 재창조를 형상화하였다. 그러나 그 정반대의 상황에서는, 즉 연극이 삶과 인간의 압력에서 자유로울 정도로 충분한 힘을 갖고 있고 독립적일 때 연극은 실제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될 만큼 삶과 똑같은. 비록 인위적 이지만, 형태를 만들어냈다. 왜냐하면 연극은 쉽게 시간과 공간의 추상화를 받아들일 수 있고 또 완전한 통일성올 획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서 이러한 시도는 적합하지도 않고 타당한 제안도 아니다.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조건이 여러 분야에서 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무시당해온, 그들 자체 내에 엄청난 동기를 갖고 있는 해프닝과 이벤트 그리고 환경예술은 전반적인 리얼리티를 다시 확보하고 있다. 이것은 초현실적인 꿈의 세계보다 더 강력하게 인간의 상상력을 움직인다. - 다다이즘
5장 : 그러나 이러한 즉각적인 리얼리티는 관습적인 형식으로 변질되었다. 그리고 또 한 재료 - 행위와 행동에 대한 유일한 배경인 물리적 재현(representation)과 실제 시간의 구현 - 는 바닥이 났다. 그러므로 규칙을 파괴해야 한다. 즉 예술의 물질적 기능적 조건들을 파괴하여, 지각할 수 있는 리얼리티가 새롭게 변형되어지는 영역으로 비합적 침투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예술작품의 구성요소를 해체한다.
6장 : 예술에 있어 삶의 개념은 오로지 '삶의 부재' 에 의해서만 입증된다는 확신이 점점 내 안에서 강화된다(다시 크레이그와 상징주의로!). 일련의 전통적 언어학이나 개념론을 피하는 해체의 과정은 내 창조 작업에서 더욱 강고히 된다. 공인된 고속도로(대중화된 전위예술) 에서 내리자.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그 대중화된 전위예술의 정점에서는.
7장 : 개념론에 대한 나의 거부는 미지의 것에 대한. 보다 열려진 상태로 남은 갓길을 묘사하려는 시도를 하게 하였다. 그러한 시도의 와중에 아주 우연찮게 마네킹의 본질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마네킹은 해체의 확장 와중에 실아 있는 배우의 복제로서 '배우의 생명'이 다 연소한 후에 얻어진 것이다. 이러한 마네킹은 이미 죽음의 기호가 명확히 적혀 있다.
8장 ; 최고등급의 유일한 리얼리티인 마네킹은, 다시 말해 가장 빈한하고 거의 알려지지 않은 오브제는, 예술작품에 있어 그 모든 객관성을 드러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내 신념을 확인시키는 또 하나의 현상으로 나의 '작품집' 에 자연스럽게 등장하였다. 그러나 나는 클라이스트나 크레이그가 주장한 것처럼 마네킹(혹은 밀랍인형)을 살아 있는 배우의 자리에 대체하고자 하는 믿음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예술에 있어 삶의 표현은 오로지 '삶의 부재’ 를 통해, '죽음의 등장'을 통해, 현상을 통해. 메시지의 결여를 통해 가능하다는 내 믿음에 기초한다. 따라서 나의 연극에서 마네킹은 죽음과 죽은 자가 처했던 운명(상황)에서 걸어 나가는 격렬한 감정을 구현하고 그것을 관객에게 전하는 하나의 모델이다. 살아 있는 배우를 위한 모델.
9장 : 내가 크레이그의 열정적 찬미자로 남아 있지만 배우에 대한 견해는 서로 다르다. 사원(寺院) 앞에서 배우의 등장순간은 나에게 있어서는 역설적으로 혁명적이고 전위적이다. 전통의 모든 영역과 단절하겠다는 모험적인 결정을 한 사람은 앞으로 나아간다. 그것이 비록 세속의 오만함이나 무신론처럼 보이고, 위험스럽고 파괴적인 경향이며 스캔들과 같은 부도덕 행위나 외설처럼 보일지라도 그 안에는 무언가 엄청난, 심오한 의미를 담은 메시지를 내포한다. 바로 이 혁명의 순간, 예술의 영역에서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배우를 보게 될 것이다. 비록 순간적인 충격으로 잠시 아찔 거리겠지만 사람들은 그를 처음 만난 것처럼. 그리고 그들 자신을 본 것처럼 찬탄하면서 비극적 요소를 담은 서커스 같은 사람의 이미지를 알아차린다.
형이상학적 충격. 그것은 죽음의 수단으로 인간의 운명을 측정하는, 비극적 양심을 지닌 새로운 인간조건의 메시지이다. 그러므로 관찰자와 배우의 관계는 그 본질적의 미를 다시 설정할 필요가 있다.
10장 : 우리는 어떠한 유사성에도 위협받지 않는,
'죽음의 상태'라 불리는 극단의 지점을 표시하는 경계를 설정하자.
죽은 자들은 자신들의 피안에서 우리를 경악시킨다.
우리들을 당혹시키고 매혹하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저 특수한 관계.
그들은 모든 의미를 박탈당한 한없이 이상한 존재가 된다.
상반되는 모든 환상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보편적인 동일성 결국 죽은 자들만이
(산자에 대해)지각할 수 있는 존재가 되며 그렇게 하여 고유한 특성과
신선한 윤곽을 획득하는 것이다.

 

 

 

 타데우즈 칸토르(Tadeuz Kantor, 1915~1990)는 폴란드의 연극실험가, 연출가, 예술가이다. 대표작으로는 '죽음의 교실'(1975), '빌로폴 빌로폴(1980) 둥이 있고. 지난해 '서울국제공연 예술제 기간 중 그의 작품에 대한 다큐멘터리 상영과 설명회가 있었다. 같은 폴란드인 출신의 실험극 연출가 그로토프스키와 달리 칸토르는 연극을 고든 크레이그로부터 이어지는 '미래 연극론' 적 관점에서 연극의 구조성, 조형성, 장면성, 오브제성을 설정, 그만의 독특하고 짙은 상징성과 노스텔지어성을 가미한 연극적 동경을 만들어낸다. 공연 중 스스로 침묵을 띤 관찰자 내지 참여자로 공연에 참가해, 소외되는 작가가 아닌 작품에 실제 가담한 작가의 모습을 만들어낸다. 그는 미국의 리처드 포먼, 로버트 윌슨 등과 함께 이른바 '작가 연출가' 혹은 '작가주의적 연출가의 모습을 20세기 후반 연극계에 보여주었다.
이 작품은 1994년 연출가 이윤택에 의해 '허재비놀이'로 번안 연출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