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카를 발렌틴 '변두리 극장외 단막극 여러편'

clint 2015. 11. 4. 18:37

 

 

 

 

 

 

발렌틴의 텍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평범한 소시민들이다. 와인 레스토랑이 생소해 와인과 치즈 이름을 구별하지 못하는 시민(<견진성사 받은 아이>), 연극 관람이 특별한 일인 부부<극장에 갈 때>, 수공업자<제본공 바닝거>, 점원<새 장수>, 노동자<전쟁에 관한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예술가라 하더라도 제대로 음악교육을 받은 전문 연주자가 아닌 변두리의 악사들<변두리 극장>일 뿐이다. 그의 주인공들이 이러한 평범한 사람들인 것은 그의 생애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발렌틴은 1897년 아버지의 희망에 따라 가구 제작 수습 일을 시작해 2년 후 도제교육 수료시험에 합격한다. 그는 손으로 하는 작업을 즐겼고 수공업에 소질이 있었다. 이후 아버지가 운영하던 가구운송 회사를 넘겨받았으나 사업에 실패한다. 당시 산업사회의 발전에 소규모 수공업자와 자영업자들은 보조를 맞출 수 없었고, 대규모 자본을 바탕으로 한 경쟁체제는 이들에게 존재의 근간을 앗아가는 위협일 수밖에 없었다. 발렌틴은 아버지의 작은 회사를 유지할 수 없었고 좌절을 경험한다. 이 좌절의 경험은 발렌틴의 인물들에게 적용된다.
발렌틴의 희극성은 인물들이 처하는 희극적인 좌절과 파국에서 발생한다. 인물들은 사물에 지배를 받게 되거나 물건을 다루는 데 어려움에 처하며 혼란스런 파국상황에서 사물의 희생자가 되어 버린다. 발렌틴의 희극적 인물들은 때로 자신의 고집으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오류에 빠진다.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구조가 억압의 상황을 만들어 인물들은 여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파국을 맞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이 만들어 내는 파국은 비정상적이고 부정적인 것으로 관객을 웃게 만든다. 관객의 웃음은 남의 불행을 보고 즐거워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이 상황들은 대부분 비극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발렌틴의 텍스트는 희비극성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제본공 바닝거>다. 책 제본업자인 바닝거는 한 대규모 건설회사가 주문한 책을 제본하고 납품하고자 회사에 전화를 건다. 주문받은 책을 완성해서 영수중과 함께 보내도 될지 문의하는 이 전화를 회사 사람들은 자기 업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계속해서 다른 곳으로 돌린다. 그럴 때마다 바닝거는 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 열 번씩이나. 결국 마지막으로 전화를 받은 경리과는 업무 시간이 끝났다는 이유로 내일 다시 전화하라고 한다. 바닝거는 전화의 미로 속을 헤매다 결국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 이는 소규모 생산업자와 대기업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대기업의 폭력에 내맡겨진 하청업자는 그 대립관계에서 부서지는 자의식을 경험하고 관료주의 시스템의 벽을 넘지 못한다. 다른 한편으로 전화를 통해 이 부서에서 저 부서로 떠넘겨지는 바닝거는 익명으로 존재하는 기계의 압제적 힘에 좌절할 수밖에 없다. 바닝거는 현대 기술과 자본, 관료주의의 희생자다.
좌절과 파국으로 이루어진 발렌틴의 희극성은 불완전과 결핍, 부정성, 그리고 추함의 희극성과 연결된다. 특히 앙리 베르그송이 “우스꽝스러운 기형”과 관련된 "희극적인 추함"을 직시하고 있듯이,'추함은 발렌틴의 코믹 텍스트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의 '추함'은 악의 표현이 아니라 인간의 불완전함, 소외의 표현이다. 발렌틴은 보통 사람들과 다른 자신의 신체까지도 코믹 효과를 위해 이용할 줄 알았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그는 너무 마른 몸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몸은 작품의 소재로 이용된다. 앙리 베르그송에 따르면, 정신적인 것이 관련되어 있어도 “우리의 주의를 한 인간의 신체성에 이끌리게 히는 사건은 모두 희극적이다”. 발렌틴의 모놀로그<난 가련한 말라껭이>는 바로 그러한 텍스트다. 이 텍스트에서 희극성은 우선 신체의 불완전함에서 발생한다.
"제가 옷을 벗으면 말입니다, 갈비뼈가 이렇게 튀어나와 있거든요... 그래서 예전에 우리 어머니는 절 강판으로 쓸 정도였다니까요."
그러나 이 텍스트에서 희극성은 그의 마른 몸에 대한 과장 표현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신체는 강판의 기능을 함으로써 우리의 일반적인 신체기능과 대비되고 주변 세계와 비정상적인 관계를 갖는다. 무엇인가 정상의 상황에서 벗어날 때 웃음이 발생한다. 발렌틴은 당구장의 당구대에 기대 서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큐인 줄 착각할 정도이며, 레스토랑에서 주인이 환풍기를 틀면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식탁을 붙들고 버려야 한다. 그는 죽어서조차도 비용이 많이 든다. 화장을 할 경우, 너무 말라서 몸이 시신 받침대 사이로 빠져 버릴 정도이니 새 받침대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정상에서 벗어난 신체 때문에 식인종에게 희생되지 않고 살아남는다. 불충분함, 부족함은 발렌틴의 코믹에서 중심을 이루는 하나의 축이다. 부족함, 불충분함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 선입관은 발렌틴의 코믹을 통해 전도된다

 

 

 

'추함'과 관련해 발렌틴의 텍스트에서 희극성의 요소가 되는 중요한 것이 그로테스크다. 그로테스크는 '추함'의 형식으로 나타나고 이를 통해 전혀 개연성이 없는 부분들이 하나로 결합되는 과장의 일종이다. 일상에서 익숙한 사물들, 사소하고 친숙한 사물들이 갑자기 낯설고 악하게 나타날 때, 그리고 전혀 조화를 이룰 수 없는 것들이 합쳐질 때 그로테스크 한 상황이 나타난다. 발렌틴의 경우, 책 제본공 바닝거가 전화라는 사물의 힘을 이겨 내지 못하듯, 인물들이 사물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 사물이 살아 움직이면서 인간을 향하면 그로테스크한 상황이 빚어지며,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물이 오히려 인간을 마음대로 다루게 될 때 웃음이 발생한다. 이와 관련해<광대 듀엣 또는 미친 보면대>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보여 준다. 서룬 연주자인 발렌틴과 카를슈타트가 연주를 하려 하자 보면대가 돌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보면대를 따라 돌아야한다. 그러다가 - 보면대가 점점 커진다.... 두 사람은 악보를 보기 위해 의자에 올라가야 한다. 이들이 불평하자 보면대는 다시 줄어들고, 연주를 시작하려 하자 보면대가 다시 자라난다. 이 장면이 보여 주는 것은 듀엣 연주자의 멍청한 행위자체가 아니다. 웃음은 사물에 끌려 다니는 사람으로 인해 발생하지만, 그 웃음 뒤에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사물이 인간보다 우위에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서 사물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면에서는 인간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나타난다. 이 그로테스크한 과장의 장면을 통해 발렌틴은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기회를 제공하며, 다른 한편으로 융통성이 부족하고 경직되어 있는 인간의 모습을 비판한다.
고전문학과 같은 소위 고급 문학에서 독자들이 기대하는 것이 깊은 의미, 위대함, 긍정적인 것이라면, 희극의 독자와 관객이 기대하는 것은 보다 쉬운 것, 간단한 것, 즉시 이해할 수 있는 것, 부정적인 것이다. 희극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은 부정적이고 악하며 추하고 경직되어 있다. 희극에서는 이들을 중심으로 겉으로 보기에 사소한 삶의 일면과 단순한 사물들이 묘사의 대상이 된다. 발렌틴의 텍스트는 이 같은 희극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 주는 희극의 교과서와 같다. 특히 부정성을 통해 묘사해 내는 희극적 갈등 상황은 발렌틴의 코믹 텍스트가 갖는 출발점이다. 희극적 갈등은 규칙과 규칙에 반하는 것, 일상과 비일상적인 것, 그리고 의미와 무의미의 대비, 대립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대비와 대립은 희극적인 것의 토대라고도 할 수 있다.
<변두리 극장>에 등장하는 발렌틴은 정상적인 것과 철저하게 대비되고 질서에 대립하는 인물이다. 그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모든 것에 반항한다. 연주자로서 연주하는 일조차 돈 때문에 억지로 하는 듯 보인다. 그는 처음부터 지휘자와 대립하며 상황을 복잡하고 어렵게 몰아간다. 그는 상식과 대립한다. 그는 상식과 대비되는 비상식의 전형이다. 첫 연주 때, 이제 시작하자는 지휘자의 말에 발렌틴은 휴식 시작이냐는 말로 지휘자와 대립하며 상황을 어지럽힌다. 이어지는 장면은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지휘자 : 시작하자마자 휴식하는 것이 당신한테 맞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면 아무것도 되는 게 없을 거요, 이제 시작합시다. (지휘봉을 두드린다.)
발렌틴 : 잠깐 - 먼저 기침 좀 해야겠어요...
지휘자 : 기침할 시간은 한참 많았을 텐데 이제 와서 중요한 순간에 기침 생각이 나다니, 빨리 기침하시오, 기다리죠... 어서요, 왜 그러는 거요?
(모두가 기다리다가 발렌틴을 쳐다본다.)
발렌틴 : 안 나와요.
지휘자 : (지휘봉을 두드린다) 자, 행진곡을 연주합시다.
(발렌틴은 트럼펫을 잘못 불고는 다른 트럼펫 연주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한 박자 늦게 분다.)
지휘자 : 왜 늦게 부는 거요? 우린 이미 다 끝냈는데!
발렌틴 : 제가 시작을 늦게 했거든요.
발렌틴이 보여 주는 태도는 부정적이고 거부하며 불신하는 태도다.
<극장에 갈 때>의 남편은 어쩌다 찾아온 시민적 자유 시간마저 거부하는 모습이다. 아내가 우연히 극장표를 얻어 옴으로써 부부는 어렵게 문화적 경험을 할 기회를 얻는다. 아내는 모처럼 갖게 된 여유 시간에 기뻐하고 들떠 있지만 남편은 시민으로서 이 자유마저 부자연스럽다. 남편은 머리를 빗으면서도 탁자용 거울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시간을 끌고 극장에 갈 때 어울리는 옷도 입지 못한다. 그러면서 아내의 외출 준비를 방해만 한다. 이 작품은 남편의 부정적이고 거부적인 태도를 통해 고급문화를 즐길 수 없는 소시민의 무능력과 그 문화를 향한 허위적 욕망의 한계를 보여 준다. 소시민으로서 극장에 간다는 것은 그에게 어울리는 일이 아니다. 때문에 극장에 가려는 시도 자체는 수많은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희극성은 예상치 못한 여러 가지 형태의 우연에서 발생 한다. 관객은 그 우연이 철저하게 계산된 것이며 어떤 목적을 위해 삽입된 것임을 알고 있기에 웃을 수 있다. 우연은 희극적 효과를 위한 중요한 요소이며 발렌틴 또한 이를 적절 하게 사용한다. 발렌틴의 텍스트에서 우연은 “악의적이고 특이한 역할"을 수행한다.<변두리 극장>에서 구성 전체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발렌틴과 지휘자 간의 격렬한 긴 논쟁은 우연을 통한 것이다. 발렌틴의 말꼬리 잡기로도 보이는 그 대화 아닌 대회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격하게 상승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갈등을 초래한다. 우연을 통해 혼란이 발생하며 그 혼란은 웃음을 야기한다.<변두리 극장>에서 우연과 관련한 대표적 장면은 발렌틴이 '자전거 타는 사람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자전거 타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우연의 일치를 주장하는 장면이다. 지휘자는 자전거 타는 사람을 본 장소가 수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리는 장소임을 근거로 우연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 상식적인 생각과 달리 발렌틴은 지휘자에게 "참 세계관 독특하시네.”라고 반박한다. 이어지는 논쟁에서 볼 수 있는 발렌틴의 논리는 상식적인 관객들로 하여금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지휘자 : 그때 당신들이 뭔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다면 혹시 그게 우연의 일치가 될 수도 있었을 거요. 뭔 가 특이한 거, 뭔가 더 재미있는 걸 얘기하고 있었더라면 말이오. 그러니까 당신들이 그 자전거 타는 사람 말고 비행사에 관해 얘기했더라면 그건 또 다를 수도 있죠.
발렌틴 : 아닌데, 우린 그저 자전거 타는 사람 얘길 했어요.
지휘자 : 알아요, 내 말은,당신들이 비행사 얘길 하고 있는데 그 순간 비행기가 지나갔다면 그게 우연의 일치가 될 수 있을 거란 얘기요.
발렌틴 : 하지만 우린 위를 쳐다보진 않았어요, 우린 그 냥 걷고 있었을 뿐이지.
지휘자 : 그러니까내 말은, 예를 들자면, 당신들이 자전거 타는 사람 말고 비행사 얘길 했더라면 하는 거지!
(…)
발렌틴: 그럼 내일 다시 산보를 가서 비행사 얘길 해보죠. 그런데... 만일 자전거 타는 사람이 오면 그땐 가만 안 있겠어.

 

 

 

관객들은 누구나 삶 속에서 우연을 경험한 적이 있다. 관객은 우연의 상황을 이미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 다른 사람들의 우연을 보고 웃게 된다. 발렌틴은 우연을 통해 삶이 계산한 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시실을 인식시킨다. 우연은 정해져 있는 규범이나 규칙에 저항하여 나타나는 것이며 경직되고 고착된 세계로부터의 탈출 기회를 제공한다.
풍자적인 그의 텍스트가 보여 주는 유머는 특히 “언어 무정부주의”라고까지 불리는 언어예술에 기초한다. 발렌틴이 대부분의 다른 유머 작가와 다른 점은, 어떤 주제를 핵심적 인 언어로 풀어내는 방식과 달리 그의 언어 자체가 주제를 제공하고 언어가 논의의 출발점이 된다는 점이다. 그의 언어는 소통의 형식을 넘어 해부되며, 철저한 논리 자체가 언어의 불합리함을 중명하기까지 하는 기발한 도구로 기능한다. 이러한 언어예술로 인해 그는 “언어의 찰리 채플린”으로 평가된다. 발렌틴의 언어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은 언어유희다. 어느 면에서 발렌틴의 언어유희는 시시한 말장난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말장난은 사실 언어유희의 근원적 형식이다. 발렌틴은 언어를 이용한 희극적 효과의 근원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언어유희는 언어 자체가 가진 한계를 보여 줌과 동시에 풍부한 암시를 통해 언어의 다양한 기능을 보여준다.<핸드백>은 우산과 모자를 이용한 성적 언어유희다. 발렌틴은 아내에게 핸드백을 사주려 하지만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발렌틴은 갑자기 우산을 찾는다.
발렌틴 : 예 - 우산 있어요? 하지만 비싸지 않은 걸로. 왜냐하면 난 매일 어딘가에 세워 놓거든요.
여점원 : 하지만 손님, 손님은 여기저기 우산을 세워 두고 다니는 고리타분한 늙은 교수가 아니잖아요.
발렌틴 : 젊은이들은 늙은이들보다 더 자주 세워 놓죠.
여점원 : 여기 이건 아주 멋진 우산이에요. 이건 세워 두지 않으셔도 돼요, 손잡이가 구부러져 있어서 걸어 두실 수도 있으니까요.
발렌틴 : 세우거나 걸거나 그게 그거지.
여점원 : 전 세우지도 걸지도 못해요. 우산을 가지고 다니지 않으니까요. 그럼 손님, 구부러진 손잡이가 있는걸로 하시겠어요?
우산으로 페니스를 암시하는 발렌틴의 말장난을 여점원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상황은 희극 성을 배가한다. 이어 지는 대화에서는 성적 말장난의 강도가 더욱 심해진다. 그러나 여점원은 여전히 발렌틴의 말장난을 이해하지 못한다. 여점원은 발렌틴의 말장난 도구가 되어 버리고 여점원의 대답 자체가 그의 언어유희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여점원 : 그럼 이쪽으로 와보시겠습니까? 지금 손님께서 쓰고 계신 것과 같은 모양으로 보여 드릴까요?
발렌틴 : 아뇨 그렇게 축 늘어진 것 말고 - 좀 빳빳한 게 좋겠는데.
여점원 : 요즘엔 빳빳한 게 부들부들한 것만큼 인기가 없어요.
발렌틴 : 그래도 난 빳빳한 게 좋은데.
여점원 : 여기 있어요, 제가 씌워 드려 볼까요?
발렌틴 : 부탁합니다.
여점원 : 손님 말이 맞았어요, 아주 잘 어울리시네요... 늘어진 것보다 나아요.
발렌틴 : 우리 아내도 빳빳한 걸 더 좋아하죠.
여점원 : 그리고 이건 질도 아주 좋아요. 물론 오래 쓰면 빳빳하던 게 없어지고 저절로 축 처지긴 하죠 - 15 마르크예요 - 계산대는 이 옆에 있어요. 안녕히 가세요, 손님!
의사소통의 매체로서 언어는 발렌틴의 텍스트에서 그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의 작품에서 언어는 언제나 뒤얽힘의 원인이다. 발렌틴은 언어가 의미의 비 논리성을 지니고 있으며 구속력이 없다는 사실을 중명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한다. 그가 볼 때 단어는 그 지시 대상을 결코 설명해 내지 못한다. 때문에 인물들은 대화를 통해 제대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으며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상황은 혼란에 빠진다. 발렌틴의 인물들이 대부분 자신들의 의도와 달리 실패를 맛보는 것처럼 언어 또한 발렌틴에게는 좌절의 둥가물이다. 언어의 논리가 비논리로, 무의미로 바뀌면서 희극적 상황을 연출하는 장면으로<내 안경 어디 있지?>의 한 장면을 보자. 남편이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안경을 찾는 상황에서 아내의 언어와 남편의 언어 간에 논리 싸움이 벌어진다.
남편 : 몇 번이라고? 예전에도 자주 거기 뒀어... 하지만 지금 그게 어디 있는지 그걸 알고 싶다고!
아내 : 그래, 지금 그게 어디 있는지 그건 나도 모르지. 어딘가에 있겠지.
남편 : 어딘가 라니! 당연히 어딘가에 있겠지 - 하지만 어디, 그 어딘가가 어디냐고?
아내 : 어딘가? 그건 나도 몰라 - 그렇다면 어디 다른 곳에 있겠지!
남편 : 어디 다른 곳이라니! 어디 다른 곳이나 어딘 가나 그게 그거잖아.
아내 : 멍청한 소리 말아요, '어디 다른 곳' 하고 '어딘가'가 동시에 같은 곳일 수는 없어! 매일 그 멍청한 안경 찾느라고 난리네. 다음번엔 어디다 뒀는지 잘 기억하라고, 그럼 안경이 어디 있는지 알 거 아냐!
장소와 관련된 단어 "어딘가”와 "어디 다른 곳”이 무의미한 논리로 드러나면서 혼란이 생기고 그 상황은 희극적 상황으로 변한다. 결국은 언어가 ”멍청한 소리”가 되어버리는 상황이다. 이처럼 언어가 가진 한계는 발렌틴에게 중요한 희극적 요소로 적절하게 이용된다.
발렌틴의 인물들은 대부분 현실을 파악하고 이해하지 않는다. 인물들에게 현실은 방해 요소로 작용하고, 그렇기 때문에 인물들은 현실에 좌절한다. 이 좌절의 모습은 다른 한 편으로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발렌틴이 현실을 수정하고 변혁하고자 시도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발렌틴은 현실에 만족하지 않으므로 보편적으로 익숙한 것들을 뒤집고 무시한다. 그에게 자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명한 것, 익숙한 것, 규정된 것, 그리고 현실 자체를 발렌틴은 질문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의 텍스트에 나타나는 무의미, 비논리, 잘못 된 전제와 잘못된 추론은 오히려 우리의 보편적 사고를 뒤집는다. 웃음을 통한사고의 전환 - 이는 발렌틴이 우리에 게 주는 자유의 순간이다.
모놀로그, 단막극, 짧은 대화의 장면 등 500편이 넘는 발렌틴의 작품 중에 겨우 22편을 골라 싣는다. 이를 통해 배우이자 작가인 카를 발렌틴의 진면목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렵겠지만 시대와 장소, 문화 관련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희극 이해의 어려움을 감안해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텍스트를 골랐다. 발렌틴의 텍스트는 사실 바이에른 사투리로 그 희극적 효과가 배가되는 텍스트다. 발렌틴의 사투리를 섣부른 우리말 사투리로 옮기는 대신 표준말 번역을 택했다. 이 번역 텍스트가 우리 연극인들에게 수용 되어 무대화될 경우에는 나중에 드라마투르기 작업을 통해 우리말 사투리로 충분히 고쳐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발렌틴의 사투리를 이해하는 데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교수를 거쳐 지금은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서 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베른하르트 피어탈러(Bernhard Vienhaler) 씨의 도움이 컸다. 이 자리를 빌려 고마운 마음 을 표한다. 그리고 번역이 불가능한 발렌틴 특유의 언어유회인 경우, 가능한 그 의도를 전할 수 있는 우리말 상황을 빌려 번역했다.

 

 

 

 

카를 발렌틴
(Karl Valentin, 1882~1948)은 카바레티스트(카바레(Kalwett)는 프랑스의 살롱문화에서 기원하는 것으로 정치, 사회, 일상의 시의성 있는 문제들을 노래와 풍자, 비판을 통해 웃음으로 풀어내는 소규모 공연예술이며 카바레를 전문적으로 공연하는 극장을 지칭하기도 한다. 카바레 예술가인 카바레티스트는 대부분 카바레 텍스트 쓰기와 연기를 모두 맡는 다재다능한 예술가로서 날카로운 현실 인식과 예술적 능력을 동시에 갖춘 지식인이라 할수 있다.) 희극배우, 극작가, 영화 제작자로 활동하는 등 다방면에서 큰 재능을 보인 인물로, 본명은 발렌틴 루트비히 파이 (Valentin Ludwig Fey)다. 1SS2년 6월 4일, 뮌헨 근교 아우(Au)에서 태어난 그는 10대 시절에는 가구 제작자로 일했다. 이 시기에 배운 가구 제작 기술은 이후 그의 공연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무대의 소도구 대부분을 직접 제작했다. 원래 발렌틴에게는 누나와 두 형이 있었다. 그러나 누나는 태어난지 몇 달 후에 사망했고 두 형 또한 8세와 6세 때 디프테리아로 죽었다. 때문에 발렌틴의 부모는 유일하게 남은 막내인 그를 응석받이로 키웠다. 장난이 심했던 어린 시절 발렌틴은 학교를 싫어했다. 그는 “학교 다니던 시절은 내게 7년간의 징역형이었다.”라고까지 술회한다.
1902년에 발렌틴은 노래와 곡예 등 버라이어티 쇼 형식의 대중 공연예술인 바리에테 (Variety)를 3개월간 집중적으로 배우면서 배우가 될 준비를 시작한다. 그는 1907년에 자신이 직접 제작한 자동악기 오케스트리온(Orchestrion)을 가지고 북독일로 공연하며 다녔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 후 뮌헨에서 민속음악 가수로 데뷔했고, 1인 즉흥극<수족관>을 ‘프랑크푸르트 호프' 경가극 극장에서 공연해 처음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여기에서 나중에 연기 파트너가 되는 여배우 리즐 카를슈타트{Liesl Karlstadt, 본명은 엘리자베트 벨라노(Elisabeth Wellano), 1892~1960)를 만난다. 그는 1911년 그녀와 처음으로 뮌헨의 카바레 '짐플 리치시무스' 무대에 선 이후 1922년까지 뮌헨의 많은 카바레 무대에서 그녀와 함께 공연했다. 리즐 카를슈타트는 즉흥연기와 음악에 재능이 많았던 여배우로 발렌틴에게는 이상적인 연기 파트너였다.
카를발렌틴은 1924년 '익살꾼 카바레' 무대에 서게 되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 이후 취리히, 빈 등에서 초청공연을 했다.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 후반까지 그는 베를린에서 초청배우로 공연했고, 1939년에는 직접 뮌헨에 카바레 '기사 주점'을 열고 스스로 그 무대에 서기도 했다. 1942년, 나치에 의해 활동이 정지당하면서 그는 다시 뮌헨 근교 플라네크 (Planegg)의 집으로 돌아와 다시 가구 제작 일을 했다. 1947년 12월부터 그는 리즐 카를슈타트와 함께 다시 뮌헨의 카바레 '화려한 주사위'에서 초청 배우로 활동 했고, 이후 1948년 1월까지 뮌헨의 카바레 '짐플리치시무스’에서 공연했다. 그는 1948년 2월 9일, 감기로 인한 폐렴과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카를 발렌틴은500편이 넘는 단막극, 촌극, 1인극, 시나리오 텍스트를 남겼다. 또한 그는 1910년부터 영화 제작자이자 영화배우로도 활동했다. 발렌틴이 스스로 작성한 공연 목록에 따르면 26개 작품의 전체 공연 횟수가 5969회에 이른다. 이는 발렌틴이 엄청난 대중성과 인기를 누렸음을 증명한다. 발렌틴은 오늘날의 쇼 비즈니스라 할 당시의 오락사업에서 성공한 대중적 예능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희극인이 아니었으며 인간의 삶이 가진 모순을 정확하게 들여다보고 이를 웃음을 통해 비판했던, 철학과 창작력을 겸비한 예술가였다. 발렌틴은 표현형식에서도고 유한 기법을 사용해,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관련되어 자주 언급된다. 그는 1919년 뮌헨에서 브레히트와 함께 자신의 촌극<10월 축제에서>를 공연했으며 브레히트는 이 공연에 클라리넷 연주자로 출연했다. 브레히트와의 작업은 1922 년 '뮌헨 카머슈필레' 극장에서 브레히트의<한밤의 북소리>를 패러디해 공연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1922년 9월 30일, '뭔헨카머슈필레'에서<한밤의 북소리〉초연이 있은 후 브레히트는<빨간 건포도>라는 카바레 작품으로 심야 쇼무대를 열었고 발렌틴은 이 무대에 등장했다. 1919년경부터 발렌틴의 무대를 자주 찾았던 브레히트는 그를 "위트 그 자체"이며 "이 시대의 강렬한 정신적 인물 중의 하나" 라 평했다. 사실 발렌틴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스승으로 자주 언급된다. 자신의 역할에 거리를 둔 발렌틴의 연기는 브레히트가 요구하는 서사적 연기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발렌틴은 연기 형식에서 브레히트의 이론을 선취했고 그의 무대 또한 단순화된 형태로 관객이 환상에 빠지지 않도록 함으로 써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미리 실현했다. 서사극의 기본 원칙인 “생소화 효과”는 "발렌틴 효과”를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브레히트의 초기작<소시민의 결혼>은 발렌틴의 특색과 카바레의 형식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간주된다. 카를 발렌틴은<변두리 극장>,<제본공 바닝거>,<화려한 불꽃>,<레코드 가게에서>,<극장에 갈 때>,<사진 아틀리에>,<견진성사 받은 이>등의 단막 극 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변두리 극장(영화명: 오케스트라 연습>,<레코드 가게에서>,<극장에 갈 때>,<견진성사 받은 아이>는 영화로 다시 만들어졌으며 발렌틴은 이 영회들에서 주연배우로서 그만의 독특한 희극성을 유감없이 보여 준다.
카를 발렌틴은 카바레티스트로서, 작가로서 특수한 경우에 속한다. 그의 예술 활동은 어느 장르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공연을 하고 글을 쓰면서도 또 다른 통로를 이용해 관객과 소통하고자 했다. 그것은 일상의 사물들을 새롭게 인식하고자 했던 작은 박물관이다. 성공하지 못하고 여러 번 문을 닫고 다시 개장하는 어려운 과정을 거치기는 했으나 발렌틴은 일상의 사물들과 공연 때의 소품들을 모은 박물관을 유지하고자 했다. 그는 일상의 물건들을 진열하면서 재미있는 제목을 달았다. 사괴에는 "아담이 베어 먹은 사과", 돌에는 “어린 성모마리아가 앉았던 돌”, 맥주잔에는 "만지지 마시오.”, 그리고 난로에는 "전시물이 아님. 그냥 여기 있는 것”과 같은 푯말을 달아 익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주었다. 이러한 발렌틴의 작업은 예술과 현실의 경계를 지우는 일이며, 공연이 가질 수밖에 없는 일회성에 영속성을 부여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그는 일회적인 자신의 공연과 즉흥연기가 제공할 수 없는 영속성을 박물관의 영속성으로 대치하고자 했다.
뮌헨의 민속 주점 무대에서 활동을 시작한 발렌틴은 초기에는 작가도 아니고 철학자도 아니며 민속음악 가수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몰이해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1920년대 중반, 베를린의 '익살꾼 카바레'에 등장하면서부터 주목받기 시작했고, 특히 지식인들은 그에게 열광하기 시작했다. 겉으로 무의미하게 드러나는 사물이 현실에서 어처구니없는 새로운 의미로 전도되고, 그 가운데 해학을 통해 민중이 삶에서 겪는 모든 불합리의 가면을 벗겨내는 그의 연기와 작품은 문학과 민중극을 연결시킨 독특한 예술이었다. 당시의 지식인들은 그의 예술을 카바레라는 분야를 뛰어넘는, 그리고 모방할 수 없는 하나의 현상으로 간주했다. 그의 연기는 전형적인 카바레 연기에서 벗어나 지역과 시대에 밀접한 그 자신만의 독특한 양식을 지니고 있었다. 한편으로 그는 카바레티스트, 희극배우로서 다다이즘과 표현주의에 가까이 가있다. 일상의 잡다한 일, 동시대의 삶 등과 끊임없이 싸움을 벌이는 그의 희극에는 어느 면에서 비극성과 비관주의가 담겨 있다. 카를 발렌틴은 스스로를 해학가, 익살꾼, 극작가라 불렀다. 글쓰기와 연기를 함께 한 20세기 최초의 독어권 핍 예술가, 민중 희극 인으로서 발렌틴은 카바레뿐만 아니라 희극 자체의 지평을 넓힌 전 방위 예술가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