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귀재 조이스도 극작에서는 그의 뛰어난 소설 작품들에서처럼 그 천재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조이스는 노르웨이의 극작가 입센을 문학의 사표로 삼고 3편의 희곡을 썼다. 그러나 최초에 쓴 두 작품은 원고가 분실되고 『망명자들』만 현존하고 있다.
『망명자들』은 『젊은 예술가의 초상화』가 완성되고 『율리시스』집필을 시작하기 전 그의 가장 큰 수확의 해였던 1914년에 쓰여서 1918년에 출판 되었는데 이 두 소설의 교량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망명자들』의 주인공 리처드 로우언은 조이스의 분신과 같은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조이스는 1914년에서 1915년까지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에서 아내 노라와 결혼 생활을 하면서 아일랜드를 떠난 뒤 1년 만에 아들 조지오(Georgio)가 태어나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등 그의 자서전적 요소가 그대로 이 작품의 소재가 되고 있다.
『망명자들』은 스스로 망명을 택하고 조국을 떠나 로마에서 궁핍한 망명생활을 하다가 성공한 예술가로 귀국한 주인공이 겪는 의식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 리처드가 느끼는 사랑과 우정간의 딜레마, 육체와 영혼의 문제, 조국에 대한 회의, 기존사회 체제에 대한 그의 도전, 모자간의 갈등을 그 주제로 삼고 있다. 이 작품은 많이 읽혀지기는 해도 공연물로서는 그리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으나 1970년 핀터(Harold Pinter)의 연출로 크게 주목을 받게 되었다.
『망명자들』의 주인공 리처드 로우언은 『젊은 예술가의 초상화』의 주인공 스티븐 디덜러스 처럼 도덕적, 정신적 기존 질서를 전적으로 깨뜨리고 자신의 신념에서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려는, 외롭고 모험적인 일을 시도하였다. 로우언은 베아트리스 저스티스와 로버트 핸드에게 그의 개성의 자취를 남긴 채 버싸를 데리고 로마로 망명을 떠났다. 『망명자들』의 극적 요소를 이루는 것은 베아트리스와 핸드의 구속으로부터 우정과 사랑을 해방시키려는 로우언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망명자들』은 간통을 다룬 극도 아니고 버싸를 소유하기 위해서 로우언과 핸드간의 결투를 다룬 극도 아니다. 로우언이 이제 조국으로 되돌아 왔고 기대한 만큼 크게 인정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이 극의 제목이 잘못 붙여진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버싸, 베아트리스, 로버트가 리처드 자신이 생각하듯이, 기존 도덕성을 뛰어 넘어 그들이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위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망명자들』은 『젊은 예술가의 초상화』의 매력이나 『율리시스』의 풍요로움을 지니지 못하고 있어서 이 작품의 실제 특성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 하였다. 이 극은 후기 입센 극의 특징, 즉, 명확하게 정해진 형식, 대화의 회귀성과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망명자들』을 집필할 때 조이스는 이 극에 꽤 많은 주석을 달았는데, 이 주석에는 젊은 기질이 가득하고 일종의 긴 독백도 드러나고 있다. 주석에는 버싸와 대지의 여신을 비교하고 그녀를 달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주석의 한 부분에서 조이스는 버싸를 『율리시스』의 몰리 블룸(Molly Bloom)으로 취급하겠다고 밝힌다.
버싸는 『더블린 사람들』의 마지막 단편 <사자들>에서 주인공 게이브 리엘 콘로이(Gabriel Conroy)의 아내 그레타(Gretta}의 전신임이 분명하다. 그레타는 그녀 때문에 죽은 한 젊은 청년에 관하여 그녀의 슬픔을 드러낼 때만 존재한다. 그러나 버싸는 그녀의 상냥함, 그녀의 자부심, 그녀의 과거에 대한 슬픔을 통해 존재하는데 이것은 또한 망명의 슬픔이고 그녀 자신의 순진무구함을 인식하는데서 오는 그녀의 분노심이라고 할 수 있다. 버싸는 울 수 있고, 우리가 그녀의 눈물에 동정할 수 있는 여인이다. 왜냐하면 그 눈물은 회복할 수 없이 상실된 일들에 관한 것, 즉, 오염되지 않은 청춘의 사랑을 위한 눈물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원칙에 관심이 없고 철학적인 담론을 남자들의 방랑하는 마음을 매혹시키는 놀이로 간주하는 여인이다. 그녀는 자신이 자라 온 질서를 리처드가 깨뜨리려고 하거나 새로운 질서 창조에 그가 헌신하는 것에 충격을 느끼거나 가슴 설레지도 않는다. 그녀는 자신 속에 태고의 보편적 질서를 지니고 있는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베아트리스는 어떤 것도 아낌없이 내줄 수 있는 여성이 아니다. 그녀가 리처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마음이 그녀 자신의 억압된 일부이고 그녀의 자존심이자 그녀가 냉소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리처드가 망명함으로써 그녀의 인생은 두 동강이 났다. 그녀는 그의 망명으로 병이 들고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채 이후 그녀의 삶은 회복기의 삶이 될 것이다. 신교도로서 그녀는 사람들의 가치관을 바꾸려는 리처드의 시도에 겁먹지 않는다. 리처드는 그녀와 9년에 걸쳐 서신왕래를 하였다. 버싸는 망명생활 중 외롭게, 남편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간직했던 여인을 생각해 왔다. 버싸는 그녀를 만나고 남편을 매혹시킬 수 있는 그녀의 지성과 교육 수준에 질투심을, 아니 질투라기보다는 시기심을 느낀다. 그리고 버싸는 자신의 슬픔을 잊고 그녀와 우정을 나누게 된다. 이제야 리처드는 베아트리스를 한 헌신적인 친구로 둘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마 리처드는 그것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연극 초반에 그는 주도면밀하게 베아트리스가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또한 그녀와 같은 양심을 가진 사람은 그의 곁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베아트리스는 극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리처드와 저스티스의 관계에서 그는 편협한 도덕가로 드러난다. 그가 그의 인생에 불러들이려는 사람은 유쾌한 아버지가 아니라 근엄한 어머니이다. 『망명자들J에서 비도덕적인 인물은 로버트인데 그는 관습적으로 만 그럴 뿐이다. 베아트리스는 그녀의 사촌오빠 로버트가 리처드의 희미한 그림자가 되어 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리처드는 로버트를 자신의 스승을 배신할 제자로 여긴다. 리처드에게 두 사람의 갈등은 결국 스승과 제자간의 유대, 버싸에 대한 그의 사랑의 안정성의 유대를 깨뜨리게 만든다. 그러나 버싸가 그녀 자신 속에 지니고 있는 질서는 리처드가 파괴할 질서나 그가 창조할 질서보다 더 근본적인 것으로 드러난다. 리처드 자신이 자초한 상처를 치유하게 되는 것은 기존의 가치관을 바꾸는 수단으로서 남게 되는 부성에 대한 리처드의 인식과 남편에 대한 버싸의 다정한 마음이다.
『망명자들』은 주인공 리처드와 그의 친구이자 신문기자인 로버트, 리처드의 아내 버싸, 로버트의 사촌 여동생 베아트리스가 중심이 되어 극을 전개시켜 나간다. 조이스의 분신인 리처드만 지나치게 복잡한 인물이고. 나머지 인물들은 지나치게 단순하게 그려져 있다. 버싸, 로버트, 베아트리스는 리처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리처드 자신은 이들 세 사람을 이해하는 데 무관심하다. 결국 리처드는 아내 버싸에게까지 낯선 사람으로 남게 된다. 『망명자들』은 조이스의 소설보다 자서전적 요소가 덜하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자서전적 요소가 농후하다. 극의 배경이 더블린이고 시기는 조이스가 아일랜드를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1912년이며 어머니의 죽음, 아들의 사랑의 도피 등이 극에서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고국에 정착하여 모교에서 로만스 어(라틴어에서 분파된 불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등)의 교수직을 받아들일 것인가, 그리하여 아일랜드를 유럽화하기를 시도할 것인가, 아니면 스위프트처럼 비참하게 정신적 소외의 상태에 처할 운명을 감수할 것인가? 『망명자들』이 이러한 질문에 답 을 제시하지 않지만 아마 작가 조이스 자신은 그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망명의 불안을 감수하고 창작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확고하게 가정에 충실한 그의 자세에 있었다는 것을 『망명자들』은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소개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는 20세기 최고의 작가이자 가장 난해한 작가로, 또한 언어의 마술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조이스는 1882년 2월 2일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10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John Stanislaus Joyce)은 사교적이고 정치를 좋아하는 호인이었지만 낭비가 심해서 가산을 탕진해 버렸고 모친(Mary Jane Muray)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온화한 성격에 피아노를 잘 쳤다. 조이스의 음악에 대한 재능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으로 다른 작품에서와 같이 여기 『망명자들』에서도 엿보인다. 조이스는 어렸을 때 비교적 여유 있는 환경에서 자랐지만 가세의 몰락으로 사춘기에는 아주 형편이 어려웠다. 그러나 그는 명문 예수회 학교들(클롱고우드 우드 컬리지와 벨베디어 컬리지)에서 계속 교육을 받고 작문으로 자주 상을 받았다. 1898년 W. B. 예이츠를 중심으로 아일랜드 문예운동이 일어났으나 조이스는 이에 비판적이었다. 조이스의 흥미는 유럽 대륙의 문학 및 고전에 있었고 그는 노르웨이의 극작가 H. 입센에 심취하였다. 성직에 입문하라는 교장의 권유에 응하지 않고 벨베디어 컬리지를 졸업한 후 조이스는 유니버시티 컬리지(University College) 영문과에 입학한다. 그는 고고한 태도를 지니고 학우와의 우정을 피한 채 학교 근처의 국민 도서관에 파묻혀 지낸다. 이 시기에 조이스는 불어, 독어, 이태리어를 완전히 숙달해 버린다. 1902년 조이스는 더블린의 유니버시티 컬리지를 졸업하고 그 해 더블린에 대한 혐오가 심해져서 고국을 등지고 파리로 갔다. 그는 파리에서 잠시 의과대학에 적을 두었으나 경제적 이유로 중퇴하고 영어 개인교수를 함으로써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다. 조이스는 1903년 4월, '모친 위독' 전보를 받고 귀국하였으나 8월 어머니가 사망한다. 어머니의 죽음은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율리시스』의 중요한 모티프가 된다. 1904년 6 월 10일 조이스는 그의 아내가 될, 골웨이 출신의 노라 바너클(Nora Barnacle)을 만나고 10월 8일 노라와 함께 유럽으로 건너가 동거하여 아들, 딸을 낳았으나 결혼식은 1931년에 가서야 하게 된다. 1912년 인쇄된 '더블린사람들'이 출판업자에 의해서 파기되자 조이스는 스스로 영원히 추방자가 되어 고국을 떠난다.
조이스는 1914년 1월 '젊은 예술가들의 초상화'(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를 드디어 완성하게 되는데 이 작품은 초고를 쓰기 시작하면서 11년이 걸린 셈이다. 그 해 6월 『더블린 사람들』의 원고가 그대로 출판되게 되었다. 조이스는 『망명자들』을 1914년부터 집필하기 시작하여 1918년 런던에서 출판하였다. 그 동안 그의 생활은 극히 곤궁하였으나 그는 영국, 위버 여사(Harriet Shaw Weaver)와 믹코믹 부인(Harold McCormic)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게 됨으로써 『율리시스』집필에 전력할 수 있게 되었다. 8년 간 노력의 결실로 1922년 세기의 소설 『율리시스』가 출판되고 조이스는 왼쪽 눈이 녹내장에 걸려 실명 직전에까지 이르렀으나 이후 8년 간 10회에 걸친 수술로 실명만은 면할 수 있었다. 조이스는 1922년 여름에 ‘피네건의 경야' 첫 구상을 하고 나서 1938년 11월에 이르러서 완성한 후 이듬해 2월 2일 초판을 출판하게 된다. 1941년 조이스는 복막염으로 장 수술을 받고 1월 13일 58세의 나이로 취리히의 묘지에 묻히고 그의 아내 노라는 1951년 별세하였다.
조이스는 『더블린 사람들』 『젊은 예술가의 조상화』 『율리시스』 『피네간의 경야』와 같은 소설로 현대 문학에서 수많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조이스는 1904년 이후일생을 거의 외국에서 보냈으나 그의 마음은 항상 고국에 있어서 그의 작품의 모든 내용은 더블린과 아일랜드에 관한 것이었다.
'더블린 사람들'은 15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단편소설집으로 그의 첫 소설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할 무렵 그는 아일랜드가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마비상태에 빠진 듯이 느껴졌기 때문에 아일랜드를 떠났고 정치, 사회, 종교 등 모든 면에서 마비의 중심지로서 더블린을 제시하고 마비를 주제로 『더블린사람들』을 썼던 것이다. 자서전적 소설인 『젊은 예술가의 초상화』, 난해하기로 이름난 대작 『율리시스』와 『피네간의 경야』 에서 조이스룰 사랑하고 연구하는 학자들은 끝없는 도전 정신으로 이들 작품에 임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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