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뒤렌마트 '스트린드베리와 춤을'

clint 2015. 11. 2. 18:52

 

 

 

 

이 작품은 스위스의 희곡 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1921-1990)가 스트린드베리(A. Strindberg)의 비극 '죽음의 춤'(1901)을 재해석하여, 블랙코미디로 만든 것이다.
1971년 미국 뉴욕의 링컨센터에서 초연되어 찬사를 받았으며, 이듬해 영국 뉴캐슬에서의 공연을 시작으로 유럽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죽음의 춤' 이란 중세 때 교회 묘지에서 추던 춤이며, 무덤에서 나온 해골이 손을 잡고 윤무 하는 모습으로 종종 형상화된다.
희곡에는 자신을 이 희곡의 작가가 아닌, '안무자' 라고 써놓고 있다.
원작<죽음의 춤>은 스트린드베리가 가장 좋아했던 작품으로 이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관을 표현하였다. 죽음의 춤이란 중세기 화가들이 즐겨 쓴 표현으로 무덤에서 나온 해골들이 손을 잡고 춤을 추는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할 수밖에 없고 불가피하다는 인간의 강박한 관념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희곡<죽음의 춤>은 본시 감옥이었던 탑에 사는 포병대위와 옛 여배우였던 아내가 고독하게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 사랑과 미움을 그린 극으로 여배우의 예전 호감을 느꼈던 쿠르드가 나타나며 반전을 꿈꾸지만 결국은 아내의 얼굴에 침을 뱉고 죽은 남편에게 평화가 깃들라고 합장하는 아내는 남편이 미움이었지만 사랑도 함께했다는 엄숙한 반려자라는 것으로 막이 내린다. 이 극은 인생의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보여주는 희비극으로 자연주의 극 계통을 이은 작품이다.

 

 

 

스위스의 극작가 뒤렌마트는 세상을 부조리하게 보고 있으며 인간의 상황을 기괴함으로 느끼고 있다 브레히트의 영향을 받은 작가는 서사적인 연극수법을 사용하였고 현대자본주의 사회를 개인이 소멸되는 사회로 말하였다. 그가 스트린드베리이의<죽음의 춤>을 블랙코미디로 재해석하여 만든<스트린드베리와의 춤을>은 1971년 뉴욕을 초연으로 유럽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요한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Johan August Strindberg, 1849-1912)는 '여성 혐오자', '스웨덴의 깃발', '북구의 Zola', '근대 연극의 아버지', '민중의 대변자', '국민이 수여한 Anti-Nobel 수상자', '천재', '미치광이'등 그에게 주어진 다양한 수식어는 다재다능하고 호기심 많은 그의 성격과 천재성을 대변해주며 특출한 영혼의 소유자인 그의 투쟁적 인생행로를 충분히 감지 할 수 있다. 또한 배우, 연출가, 극작가, 교사, 기자, 사진기자, 화가, 사회비평가, 과학자, 의학도 등 스트린드베리이가 일생 동안 몸담아 일했던 직업들을 통해 그의 높은 지적 수준과 정신적 방황을 느낄 수 있으며 다양한 종교적 세계를 답습한 파란만장했던 삶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는 이 모든 분야에 있어서 진실을 찾으려 논쟁하며 지속적으로 고독한 투쟁을 해나가는 동안 많은 갈등과 고뇌를 겪어야만 했다.
단 하루도 글을 쓰지 않고는 살 수 없었다는 스웨덴이 낳은 세계적인 극작가 스트린드베리는 1849년 1월 22일,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지명도 높은 부르주아 가정에서 7남매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청년 스트린드베리는 웁살라(Uppsala) 대학 문학부에 진학했으나, 동경하던 학문의 자유와 목마름을 채울 수 없었다. 또한 그곳은 생의 충만함을 안겨줄 곳이 아니라는 판단에 이른 그에게, 경제적 난관까지 겹쳐 학업을 중단해야만 했다. 그런 후, 몇 해 동안 교육자, 의학, 연극, 신문, 잡지 등 다양한 분야에 투신하기에 이른다. 한 사람의 자유인으로, 생존을 위해 격렬한 투쟁적 삶을 살며 '끊임없이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투지로 새로운 세계에 도전했다.

 

 

 

이 연극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기억으로의 긴 여로’라 부르고 싶다. 입 안 가득 모래가 씹히고 여덟시 반 드라마에는 절대 나오지 않을 가족사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와 비교해 볼 때 이 작품은 그 서걱거림을 가뿐히 넘어준다. 오닐이 아내와 아이들에게 배척되는 가장의 모습을 기본적인 극의 구성안에서라도 보여준다면 스트린드베리는 사소한 친절함조차 베풀지 않는다. 게다가 사랑과 신뢰의 대명사라고 공교육 내내 세뇌되었던 부부 관계를 그 실상에 포커스를 맞추어 일말의 여지도 없이 불편함을 반복한다.
무대 위에서 사흘로 요약되는 에드거의 삶은 늙고 병든 퇴물 군인의 몸부림에 불과하다.
‘나는 완벽하게 건강해’, ‘의사가 20년은 끄떡없다더군, ‘마을 사람들은 나를 보면 벌벌 떨지’, ‘대령은 나를 존중해’ 등 끝없이 되뇌는 문장들은 얼마 못 가 실체를 드러낸다. 그의 삶은 정반대로 비루했음을, 그것도 아주 오랜 시간 남루하고 초라할 뿐이었음을, 누구나 심지어 그가 완벽하게 길들였다고 믿는 아내까지도 알 수 있다.
스스로의 기억을 왜곡시켜 어떻게든 버텨보려 발버둥치지만 죽을 때 꼭 신고 죽겠다고 선언하는 권력과 권위의 상징인 낡은 군화는 더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구운 고등어 위에 뿌려진 레몬 한 조각 – 에드거는 먹거리에 병적으로 집착한다. 후반부에 ‘살고 싶다’고 쉰 소리로 꺽꺽대는 처절함으로 에드거는 삶을 향한 욕망을 드러내고 그 욕망은 끝없이 먹을거리를 탐한다. 에드거가 탐하는 게 단지 음식일까. 식탁을 둘러싼 대화, 온기, 궁극적으로 소통은 아닐까. 파산한 생계 때문에 식료품을 얻으려 몸을 파는 엘리스, 엘리스의 머리채를 잡으며 패악을 부리는 에드거와 그런 일련의 넌덜머리나는 반복을 ‘우아한 착지’라는 말로 포장하려는 엘리스를 보면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러다 문득 이것도 두 사람이여서, 자아와 타자여서 벌어지는 일임을 이해한다. 내가 나만이 아니어서 타자와 함께 있는 존재여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상투적이고 뻔하지만 늘 그리워하고 갈구하는 그것 - 애정과 관심, 인정이다. 따뜻한 불가에 옹기종기 모여 적은 음식이라도 나누고 시답잖은 농담이라도 나누며 고단함을 위로하는 말 한마디, 마음 한 조각 말이다.
엘리스의 기억이 여배우였던 시절에, 에드거의 기억이 당당한 군인이었던 시절에 머물러 있고, 다른 기억이 왜곡된 채로 나타나는 건 결국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는 소박한 마음일 뿐이다. 혼자만 다룰 줄 아는 텔레타이프에 의존해 바깥세상과의 소통은 엘리스에게 불가능하다고, 세상으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는 자신이라고(엘리스는 텔레타이프를 능숙하게 다루는데도)믿는 에드거의 마음조차 내 옆에 있는 단 한사람에게 만이라도 그런 사람이 되고픈 욕망이 아닐까.
에드거는 엘리스에게 피아노 연주를 강요한다. 강요를 원할 사람이 어디 있는가. 거짓으로라도 사랑을 원하는 게 인간이다. 원하는 바는 이미 나와 있다. 자신만을 위해 ‘나의 노래’를 부르는 아내와 그녀의 ‘귀족의 입장’에 맞춰 춤을 추는 남편이 되고 싶지만 실상은 결혼 25주년을 맞아 아내는 남편이 어서 죽기를 원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연금이 상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혼을 요구한다. 에드거와 엘리스 모두 철저하게 외롭다.
‘스트린드베리와 춤을’은 우리 나약함의 근원이며 우리를 평등한 자리로 이끄는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다. 외로움은 서로 확인하지 않는데서 출발한다. 귀찮음을 이겨내는 건 외로움을 넘어 설 훌륭한 해결책이다.

 

오만하고 냉소적이며 사람을 믿지 않는 요새 포경 대위 에드거, 그리고 그의 아내는 결혼 전 여배우였던 엘리스. 서로 애증이 얽힌 엉망진창 결혼 생활 끝에 은혼식을 눈앞에 두게 된다. 에드거는 심장병의 발작으로 매번 의식을 잃고 쓰러지면서도 또 다시 의식을 회복한다. 엘리스는 남편 에드거가 의식을 잃고 쓰러질 때마다 죽은 줄 알고 기뻐하지만 매번 허사가 된다.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의 전쟁이 이뤄지고 있는 이곳에 과거 엘리스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던 먼 친척인 커트가 신설된 검역 소장이 되어 부임해 온다.
커트가 오자 자기 지위에 마음속으로 불안을 느낀 에드거는 커트가 아메리카를 유랑하다 큰돈을 번 것을 알게 되고 커트의 지위를 노리다 흡혈귀적 본능을 발동시키며, 또 아내 엘리스는 엘리스대로 커트를 의지하여 남편으로부터 빠져 나가려고 정열을 기울인다.
그들의 사랑과 미움의 게임은 점점 열기를 더해 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