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프리드리히 헵벨 '마리아 막달레나'

clint 2015. 11. 2. 18:34

 

 

 

 

 

 

'마리아 막달레나'는 헵벨의 靑年期 작품의 하나로서 '헵벨이 뮌헨에 있을 때 유숙하고 있던 가구장인 집의 생활에서 소재를 얻어 처녀의 정조문제를 취급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1846년에 라이프치히에서 처음으로 상연되어 성공하였다.
이 작품은 고대의 전설을 취급한 것이 아니고 현실 生活을 기초로 한 市民 悲劇이다.
가구장인 안톤의 딸 클라라는 프리드리히라는 청년과 서로 사모하는 터이었는데, 이 청년이 대학에 입학하기 위하여 클라라와 헤어진 다음 아무런 소식이 없다。그래서 남자의 헛된 약속을 믿고 그 여자를 비웃는 사람도 있고 또 대학을 졸업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면 목수의 딸과 결혼하겠는가 하고 그 여자를 타이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클라라의 어머니는 그 여자한테 신분에 알맞은 레온하르트라는 젊은 사람과 결혼하기를 열심히 권한다. 그녀는 레온하르트한테는 애정은 없지만 어머니한테 복종하는 마음과 프리드리히에게 복수하는 마음에서 레온하르트와 약혼을 하였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프리드리히는 대학을 마치고 관리가 되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프리드리히는 클라라한테 여전히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레온하르트는 그 여자를 영원히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 여자의 정조를 빼앗고 말았다. 그 여자가 결혼도 하기 전에 더욱이 애정도 없는 남자한테 몸을 허락하는 것은 비난을 받을 일이지만, 어쨌든 이 사실이 그 여자의 비극의 실마리를 만들어준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그 여자의 오빠가 절도혐의를 받고 경찰에 구속되고, 또 그 여자의 지참금이 다른 데 소비된 것을 알아챈 레온하르트는 그 여자와의 결혼을 거부한다. 이때 그 여자는 이미 임신한 몸이 되어 있었다. 여기에 어머니는 자식이 절도혐의를 받고 경찰에 구속되었다는 말을 듣고 기절해서 죽는다. 그리고 완고한 아버지는 자식이 절도의 혐의로 가문을 더럽히고 딸까지도 남부끄러운 짓을 하면 살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래서 클라라는 레온하르트한테 결혼식을 올리고 자기의 죄를 감추려고 한다. 그러나 레온하르트는 무정하게도 결혼을 거절한다. 그래서 클라라는 절망해서 우물에 투신자살을 한다.
대체로 이러한 내용인데, 이전에는 레싱이나 실러의 비극이 귀족의 비극을 주로 한 작품이었는데, 이 작품은 독일에서 최초로 이루어진 市民悲劇이다. 작품 전체를 통해서 구성이 조화되어 있으며 이성의 감시가 공상을 최대한으로 제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째 작품인 헵벨의 '마리아 막달레나'(1843년)는 독일 시민 비극의 절정으로 볼 수 있다. 레싱의 경우 감상적 유형인 주인공, 유혹에 능수능란한 주인공의 연적 등 영국 비극무대의 영향이 드러나고 있으며, 실러의 경우 시민계급과 귀족 계급간의 간격과 대립을 비극의 동인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에 반해 헵벨은 시민비극의 무대를 소시민의 생활권으로 제한했다. 작가는 말한다. “시민 비극을 갱신하고 극히 제한된 영역에서도 처참한 비극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이 나의 의도였다. 오직이 영역 자체에 속하는 적절한 요인들을 기반으로 비극을 도출할 수 있을 때만이 그와 같은 비극이 가능하다.” 작가의 이러한 의도는 의심할 나위 없이 실현되었다. 필연성의 엄격한 사건 진행으로 충격적인 비극의 효과를 가능케 한 이 작품은 '시민사실주의'의 대표적인 모델로 간주되며, 작가의 빼어난 극작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독일 희곡의 걸작에 속한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시민 비극에 속한다. 구조적으로 정치에 참여 할 수 없는 시민 계급을 주인공으로 하는 비극은 사적인 공간, 즉 가정을 무대로 하여 국가의 중대사가 아닌 개인적인 사건들을 다루게 된다. 최초의 시민비극 '미스 사라 샘슨' (1755)에서 한 가정의 비극을 다룬 레싱은 '에밀리아 갈로티'(1772)에서 피지배 시민계급과 권력을 쥔 귀족 사이의 대립으로 시민 비극의 폭을 확대하였으며, 실러가 '간계와 사랑'(1784)에서 이를 답습하고 있다. 헵벨은 계급간의 대립이라는 모티브를 버리고 주제를 소시민계급영역에 한정시키고는 좁은 세계 속에 갇힌 채 어려운 문제들을 타개하지 못하는 인간들로부터 비극성을 도출해 냄으로써 시민비극을 개혁하려고 시도한다. 즉, 인간이라는 존재자체 속에 이미 그 비극성이 들어 있다고 본 것이다.
목수 안톤은 여러 가지 장점들을 가졌지만 소시민적 편협성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다. 작품 속에서는 모든 일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해진다. 가장에게 지배권만을 인정하는 전통적 집안구조 때문에 딸이 도덕적 의무감에서 자살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아버지가 가정을 지배하고 대외적으로 그 가족을 대표하며 가족 전체의 명예를 책임지는 구조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이 비극은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집안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는 가장의 지나친 체면의식이 곧 비극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안톤은 가족 구성원들 각자의 생각이나 양심, 또는 자식들이 처한 어려움이나 필요한 도움보다 가족 전체의 명성에 더 관심을 가진다. 딸의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에도 불구, 죄의식은 고사하고 끝까지 내적인 동요조차 일으키지 않은 채 의연함을 견지하는 아버지의 태도에서 운명을 꿋꿋하게 견뎌내는 영웅적인 면모와 함께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편협성의 징후가 엿보인다. 이 양자가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때, 우리는 작가의 의도를 어렵잖게 읽어 낼 수 있다. 가정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의식이 팽배했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헵벨은 나름대로의 윤리적 토대를 마련해 줌으로써 가정이라는 사회 제도를 보존하려고 했던 것이다.
신약성서 누가복음 7장36절에서 50절까지의 구절을 연상시키는 '마리아 막달레나' 라는 알레고리적 제목은 클라라를 심판하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로서, 내적 신조보다는 외적 체면을 중시하는 집단적 도덕관을 바리새인의 위선으로 비유한 것이며, 그리고 그것으로부터의 전환을 촉구하고자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