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성수 '나마스테'

clint 2018. 5. 6. 19:39

 

 

 

가구공장에서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온갖 학대와 인종적 차별을 받으며 일했던 네팔인 나바라즈는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공장을 점거하려 한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동식은 부당한 이유로 해고당한 뒤 술에 취해 공장에 들어온다. 얼떨결에 나바라즈는 한때 자신을 무시하고 학대했던 동식을 인질로 삼고 사장에게 밀린 임금과 보상금을 요구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냉혹하기만 하다. 인질과 인질범으로 재회한 둘은 서로의 위치가 뒤바뀐 처지에서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면서 외국인 노동자인 나바라즈와 동식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결국은 다르지 않다는 현실을 깨닫게 된다. 잔인하고 냉담한 현실 앞에서 나바라즈는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하는데...

 

 

 

 


1994년, 그다지 주목하지 않던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부각시키며 관객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던 작품.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협조 속에서 풍부한 사례를 효과적으로 녹여내었고, 문제의 근원인 혈연주의의 문제와 인권, 노동권의 문제까지 정확하게 짚어내어 노동극 중에서 유래없이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해 민족극 한마당에 출품되어 입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공연 중 출입국 관리소와 국가정보원의 압력 및 수많은 자칭 애국자들의 전화 테러에 시달리기도 해 더욱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표정과 몸짓은 상대의 마음을 읽어 내거나, 상대가 살아온 날들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겁에 질린 듯 두리번 거리는 눈동자, 무슨 말을 하면 웃음으로 반응을 보이지만 결코 웃겨서 웃는 게 아닌 얼굴 표정, 어깨를 쫙 펴지 못한채 꾸부정한 자세로 다른 사람을 대하는 모습, 상대의 표정과 몸짓만으로 그 사람에 대해 저절로 알게 될 때가 있다. 아무리 그 사람이 얼굴로는 '헤헤' 거리면서 웃고 있다고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본다면 그의 표정과 몸짓에는 감추고 싶은 마음, 과거까지 숨김 없이 나타난다. 조그마한 체구에 구릿빛 얼굴 색깔, 크고 깊은 눈을 지닌 사람이 포스터에 들어있는 것을 보고, 일행에게 농담삼아 "너희 이웃들이 나오는 연극이니 보러 가야 되는 거 아니야?" 라고 말했다. 일행 역시 나마스테라는 연극에 나오는 김세준(나바라즈 역)과 조금은 이미지가 비슷한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극을 보기 전 일행과 그렇게 농담섞인 말을 했지만, 연극을 보고 난 후, 일행과 여러말을 나누지 않았다. 다른 연극을 보고 이러 저러 이야기를 나누웠던 경우와 비교해 보면, 조금은 다른 현상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할까? 감명 받았다고 말하기엔 너무나 상투적인 표현이고, "에이, 예상대로 외국인 노동자들의 뻔한 이야기야"라고 단정짓기도 원가 좀 허전한 구석이 있다. 우선, 우리가 언론에서 들었던 신문기사나 뉴스에서 접했던 것과 달리 단순히 현실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는 점에 플러스 점수를 주고 싶다. 한유진(코러스1), 최문희(코러스 2)가 관객들에게 사건을 보고하는 형식으로 극이 이어진 점 역시 좋았다. 동식(원춘규)과 나바라즈(김세준)만으로 극이 이어졌다면 극이 다소 무겁게 흘러 자칫, 관객들 역시 조금은 부담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내용은 어둡지도 웃기지도 슬프지도 않다. 그러나 같이 공연을 관람한 사람들 중 아줌마들 눈에는 이 연극이 한국인들을 너무도 나쁘게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을 수 있다.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그들은 "한국엔 나쁜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는 좋은 사람들 역시 많다"는 말을 여러번 강조했다. 극중에서 사장만을 보면 한국인들이 때려주고 싶도록 밉다는 동식을 보면서 처음엔 얄미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속에 감추어진 동식의 인간적인 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을 보고, 듣다 보면 동식이 불쌍해지기도 할 것이다. 급기야 한국인의 찐한 '정'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엔 사장만 있는 것도 아니고 동식만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외국인 노동자 중에는 극중 나바라즈 같은 대우만 받는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 할 것이다. 막연한 동정심으로 불법체류자를 보호해주어선 안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정부에서는 산업연수제도라는 명목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을 모시고 와 산업역군이 될 수 있다고 치켜세웠다. 이용 이용한 악덕 기업주들은 싼 값에 그들의 노동력을 이용했다. 그러나 몇몇 악덕 기업주들이 임금체불을 서슴없이 자행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비인간적 대우를 함으로써 그들에게 한국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물론 양심적인 기업주들도 많다.

 

 

 

 

 

우리나라 정부의 대책들은 고용주에게 유리하게 되어있고,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여전히 불합리한 요소가 가득하다. 2003년 외국인 노동자 고용허가제가 실시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의 법적인 보호 장치는 희망적이지 않다. 이 연극을 보고 나면, 단순히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주위를 둘러보게 될 것이다. 나바라즈가 계속 "투 래잇 투 래잇(too late. too late)"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극중에선 병원을 너무 늦게 가서 그 대사가 나오지만, 그 대사는 다른 의미로 나의 머리를 자꾸 때리는 듯 했다. 그동안 소외받는 사람들에게 너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나바라즈의 큰 눈망울이 나의 속마음을 훤히 보고 있는 듯 해서 더욱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그동안 난 몰랐어, 정말 몰랐다'고 말하는 것으로 미안함이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극중에서 나마스테가 "모르면 끝이야?"라고 말했듯이. 원 대본에 나온 "귀신 씨나락 까먹는다"는 대사를 동식은 "국회의원 자원봉사 하는 소리"라고 하고 있다. 그 대사를 다음엔 어떠한 대사로 바꿔치기해서 재치를 보여줄지도 궁금해진다. "나도 큰 소리 못내는 우리나라에서 왜 니가 큰 소리냐구?"라는 동식의 말 역시 뜨끔했다. 자국의 정부와 국민들에게 큰소리 내지 못하니 외국노동자들에게 큰 소리를 내고 거드름을 피우고 싶어하는 감춰진 속마음을 들켜버린 듯 했다. 지성인은 폭력보다는 좋은 말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의사소통 수단인 말은 통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약자들에겐 더더욱. 과거에 폭력을 했사했던 동식이 궁지에 몰려 말로 해결하자고 제안하자 나바라즈가 "말로 통한다? 넌 언제 나한테 말로 했니?"라고 묻는 대사 역시 계속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