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의 전래 무속신화 가운데 '바리데기 설화'가 있다.
먼 옛날, 내리 6공주를 얻은 왕이 아들을 낳기 위해 온갖 치성을 드린다.
그러나 일곱 번째에도 딸(바리데기공주)이 탄생하자 화가 나 강물에 띄워 버린다.
바리데기는 뱃사공 노부부에게 발견돼 무럭무럭 자란다.
어느 날 중병에 걸린 왕에게 청의동자가 찾아와 바리데기가 구해오는
불사약을 먹어야만 살 수 있다고 알려준다. 왕은 신하에게 당장 바리데기를 찾아오라고 명한다.
소식을 들은 바리데기는 온갖 고행을 견딘 끝에 불사약을 구해와 부왕을 살린다는 효녀담이다.


연극<에비대왕>(홍원기작,이기도연출)은 바리데기 공주의 아버지인 왕을 에비대왕으로 설정해, 두 설화를 절묘하게 결합한 창작극이다. 에비란 우리가 전통적으로 뭔가 두려운 존재를 가리키는 말,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에비야!'라는 소리에 울던 울음도 그치며 자랐다. <흉가에 볕들어라>로 백상예술대상 작품상 후보에 오르고 신인 연출상(이기도)를 수상한 극단 인혁의 작품이다. 연극에서는 왕이 저승사자에게 자신은 아들을 볼 때까지 죽을 수 없다고 버티고, 결국 자신의 하루 연명마다 백성 30명의 목숨을 바꾸는 거래를 한다. 홍파와 청파로 갈린 사위와 딸들은 부와 권력을 위해 피붙이끼리의 전쟁을 불사한다. 아들 선호와 부자세습이라는 봉건적 악폐에, 우리 민족의 분단현실을 은근히 대입했다.


질곡에 찬 근현대사의 이기적 욕심에만 탐닉하는 현실사회에 대한 통렬한 풍자인 셈이다. 이 작품은 우선 재치있는 상상력과, 그 상상력을 뒷받침하는 탄탄한 대본이 돋보인다. 무대는 극장 한 가운데를 대각선으로 갈라 전후면이 따로 없이 입체감과 현장감을 준다. 문어체 대사로 고풍스런 맛을 살린 대본과 의상, 그리고 총 27명에 달하는 배우들의 완벽한 앙상블을 창조한 연출력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관극 포인트다. 또한 이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생동감, 음향과 무대의 웅장함,
긴박한 상황전개, 폭소를 자아내는 저승사자의 능청맞은 연기 등이 어우러져, 관객을 새로운 형식의 서사비극의 강력한 에너지와 감동으로 쉴틈없이 몰아간다는 것이다.

줄거리
역사가 공존하던 청동기 시대. 옛 조선의 어느 때.
딸 일곱을 난 에비대왕은 일곱째 딸(바리데기)을 강물에 띄워 버린다.
황천강의 뱃사공 할배와 할미가 바리데기를 발견하고 그녀를 키운다.
한편 에비대왕에게 저승사자(일직사자, 월직사자)가 나타나 수명이
다되었으니 그만 세상을 하직하고 같이 갈 것을 명한다.
하지만 에비대왕은 왕위를 물려줄 아들이 없으니,
그 아들을 볼 때까지 죽을 수 없다고 고집한다.
저승사자는 에비에게 "아들을 낳을 때까지 죽음을 유보해주되
왕의 하루는 평민의 한 달과 같으니, 하루에 삼십 명씩 백성들을
대신 죽이겠다"고 조건을 제시한다.
에비대왕은 아들을 볼 욕심으로 저승사자의 조건을 수락한다.
이로 인해 전국에 전염병이 돌고 사고가 연발한다.
왕은 충직한 신하(마별사)를 불러 바리데기를 찾아오라고 명하고
이들은 바리데기를 찾아 황천강 어귀에 도착하지만,
아귀병에 걸려 끊임없이 먹어대는 할미를 살리기 위해
바리데기는 쌀 세가마에 스스로 몸을 팔아 팔도꾼에게 시집을 가는데...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박찬홍 '신은 인간의 땅을 떠나라' (1) | 2018.05.06 |
|---|---|
| 김동기 '아비' (1) | 2018.05.05 |
| 김명곤 '아빠의 청춘' (1) | 2018.05.05 |
| 김태웅 ' 이' [왕의 남자] (1) | 2018.05.05 |
| 김인경 '염쟁이 유씨' (1) | 2018.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