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태웅 ' 이' [왕의 남자]

clint 2018. 5. 5. 13:21

 

 

 

‘이(爾)’란 조선조때 왕이 신하를 높여 부르는 호칭으로 극중에서 연산군이 자신이 아끼는 궁중광대 공길을 부르는 호칭이다. 천민 광대의 신분으로 임금에게 이(爾)라는 호칭을 받은 '공길'이라는 인물은 역사적 실존 인물로서, 연산군일기 60권 22장  <배우 공길이 논어를 외워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니 비록 곡식이 있은들 먹을 수가 있으랴"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조 제 10대왕 연산은 중종반정으로 왕위에서 물러날 때 까지 12년간 재위하였다. 재위기간동안 무오, 갑자사화를 통해 엄청난 인명을 죽이는가 하면, 자신을 비판하는 무리는 단 한 사람도 곁에 두지 않는 전형적인 독재 군주로 군림했다. 또한 성균관, 원각사 등을 주색장으로 만들고, 민간의 국문 투서 사건이 발생하자 훈민정음의 사용을 금지하기도 하는 등 광적인 폭정을 일삼았다. 죽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채울수 없는 모성결핍으로 뒤틀리고 비뚤어진 인간 연산. 연산의 결핍을 채워주고 위로하는 궁중 코미디언 공길. 연산의 연인이자 어머니였으며, 공길의 연적이었던 질투의 화신 녹수. 연산, 녹수, 그리고 공길. 이 세 명의 역사적 실존인물이 등장하는 연극 "이(爾)"는 이 세 명의 실존인물을 역사에서 끌고 나옴으로써,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역사극을 보는 것과 같은 착각 속에 빠지도록 유인한다.

 

 

 

 

줄거리

조선 연산군조, 궁중배우 공길은 연산의 가학적 성희의 상대자 역할을 한다. 공길은 몸과 웃음을 바치는 대가로 희락원의 우두머리가 된다. 공길은 그렇게 입고 싶어 하던 비단 도포를 연산으로부터 하사 받는다. 공길은 금부에서 관리하던 우인(배우)들을 희락원에 편입시켜 관리한다. 공길의 친구이자 또 다른 남색파트너인 장생은 공길이 권력에 눈이 멀어 놀이의 본질을 변질시키는 것을 질타하며 공길을 떠난다. 녹수는 공길에게 연산의 애정을 빼앗기는 것을 시기하여 경회루에서 잔치가 한창일 때 공길의 옷을 벗게 하여 모욕을 준다. 이에 공길은 녹수의 하수인인 형판의 비리를 들추어내는 놀이를 하고 이를 통해 그를 제거한다. 이에 녹수는 홍내관과 짜고 공길의 필체를 모필하여 연산과 녹수 자신을 비방하는 언문 비방서를 작성한다. 언문비방서 사건에 화가 난 연산은 범인을 찾는데 혈안이 된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공길은 언문으로 된 글들을 모두 불살라 버리고 판세를 뒤집을 생각으로 입궐, 연산에게 비방서 사건을 기화로 언문의 사용을 금할 것을 청한다. 이를 안 녹수는 공길이 쓰다가 버린 파지를 들고 들어와 비방서와 파지의 필체가 같다는 것을 증거로 공길을 잡아 들이게 한다. 공길을 떠났던 장생은 전라도에서 반정을 도모하는 이과, 유손의 통문을 한양의 불만 세력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언문비방서를 보게 되고 그것이 공길의 필체임을 알게 되는데......

 

 

 

 

 

웃음의 본질은 무엇인가? 연극하고 있는 나, 광대의 지배력은 무엇이고 그것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이 작품에 담겨 있다. 삶은 결핍투성이고, 구멍투성이고 고통스럽고 엄혹하다. 그러나 이런 삶의 시련이나 결핍에 고사되어 허무 혹은 체념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은 생명력의 활기를 스스로 고갈시키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삶의 고통과 결핍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삶에 대한 지배력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광대에게는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결국 내가 이 작품을 통해 증명하고 싶은 명제는 ‘광대의 세계에 대한 지배력은 세속적 권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놀이와 광대의 정신을 실현하는 데서 온다’이다. 진정한 웃음과 놀이의 핵심은 생에 대한 긍정과 그 생의 기쁨을 왜곡하고 억압하는 모든 어처구니없는 것들에 대한 비판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자기형식을 갖게 하고 자기 길을 걸어가게 하는 것이 광대들의 고결성이 아닐까?  - 참고: 2001년 공연 프로그램 작가의 말

 

 

 

 


(……)<이(爾)>가 다른 연산군 관련 작품들과 구별되는 것은 공길이라는 한 아웃사이더의 삶을 조명했다는 점이다. 두 번의 사화와 근친상간으로 포악한 군주요, 패륜아라고 낙인 찍힌 연산 또한 당대에는 아웃사이더에 다름 아니다. 현실의 아픔을 감당하지 못한 그는 현실 속 도피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우인(優人)들의 세계, 아웃사이더의 공길에 빠져든다. 무대 뒤편 커다란 탈을 쓴 배우들의 몸짓이 펼쳐지면서 도피공간으로의 액자가 열리고 액자 속 현실이 무대전면으로 등장한다. (……)
대본이 참 뛰어난 작품이다. 소재와 드라마적 요소도 그렇거니와 그 추구하는 주제도 이전의 연산군 류(類)와 맥을 달리한다. (……) -<한국연극>, 2002년 12월, 손병호

 

 

 

 

 

(……)<이(爾)>는 역사적 사실과 허구적 인물이 절묘하게 구성된 작품이다. 이번 공연에는 녹수에 대한 좀더 심층적인 모습이 그려지는데 여성성에 대한 인식과 함께 첫 공연에서 다소 평면적으로 그려진 이 인물에 대한 작가의 고심의 흔적이 배어 나올 것이다. 결말 부분에 있어서도 연산과 공길의 죽음으로만 처리된 부분이 주변인물간의 복잡하고 견고해진 갈등으로 한층 완성된 구조로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담고 있는 광대와 그로 인해 유발되는 웃음의 미학은 끝까지 고수될 것이다. 작가의 말을 빌자면 풍자의 시선만큼 이 세상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것도 없다고 한다. (……)
<이(爾)>는 역사 표피에 그려진 권력구조의 이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내부에 담겨진 역사원칙에 대한 풍자를 그린다. 그리고 권력집중의 핵심인 연산이 우인(優人) 공길을 통해 찾고자 한 것은 광대의 삶을 통한 인간의 희·비극적 존재상황에 대한 긍정과 포용이다. 웃음이 유발시키는, 공간과 시대를 초월하는 강력한 힘이 광대의 그릇임을 이 작품에서는 역사 이면의 진실로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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