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의
무대와 일상의 객관적 거리, 그리고 만남
(하나) 무대현실과 일상현실이 얼마만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살아있는 리얼리티"를 창출할 수 있는가, 그리고 여기서 무대현실과 일상현실은 또 어떻게 분명한 차이와 독자성을 지니면서 무대 형식화 되는가, 에 대한 현실과 무대의 객관적 거리를 탐색하기 위하여-일상적 삶의 한 단면 (이 일상적 모습은 몰의식적 습관적 반복과 무정형의 느낌으로 묻혀있다) 을 떼어내어 무대 위에 올려놓았을 때 그리고 이 생생한 일상을 무대 구성적 특성으로 재구성했을 때, 일상과 무대는 어떠한 관계로 자리 놓이는가. 작자는 여기서-일상적 삶의 단면으로 드러나는 엄숙성과 비극적 긴장의 느낌이 무대 위로 떼어내어 올려 졌을 때, 새로운 느낌으로 창출되는 삶의 코미디가 될 수 있음을 증거 하려한다. 그러므로 이 극은 코메디다. 희비극적 구도도, 블랙 코메디도 아닌, 그냥 정통 코메디를 지향한다. 지금 이곳 우리의 무대현실은 코메디를 필요로 한다고 믿는다. 경직된 사회구조와 긴장의 삶을 가볍게 들어 올려 관객 스스로가 현실과 무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자연스러운 일상정서를 회복하므로 서 낙관적 세계변혁의지로 나아갈 수 있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둘) 이 극은 단절된 고통과 지금 이곳의 현실적 정서가 절묘하게 어우러질 수 있는 지점을 탐색하는 단서로 성립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전통과 현대의 접목 (예를 들어 70년대 "민예", 80년대 "목화" "미추" 등의 작업과, 마당극 운동 등)은 전통적 연희형식의 변용과 현실적 알레고리 구성을 통하여 전통을 현대로 끌어내리려는 노력을 보여주어 왔다. 그러니까 전통연희 형식과 오늘의 메시지가 결합되어 하나의 상징의 틀을 구성하는 방향이 압도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극은 전통과 현대의 접목을 상기한 바와 같은 수직적 접목(전통 연희형식과 현재적 메시지의 결합과 변용)의 탐색이라기보다, 수평적 발견의 방법을 선택한다. 바꾸어 말해서, 이미 오늘의 일상행위로 이어지지 못하고 보존적 차원에 의해 유지되는 연희형식을 무대에 끌어 들이는 게 아니라, 현재까지 생생한 일상정서와 행위로 대물림 해오고 있는 우리의 전통적 삶의 문법을 발견해 내고 무대화 시키는 것이다. 이 말은 이미 일상적 정서와 행위로 전통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일상속의 전통형식에 대한 몰의식과 무관심의 습성에 젖은 현대인의 의식(예술가의 의식까지 포함하여)이 얼마만큼 막연한가에 대한 반성적 질문의 형식이 되기를 희망한다는 뜻이다.
(셋) 이 극은 가장 한국적 정서적이면서도 세계시민적 정서로서의 보편적 공감대에 이르기를 희망한다. 관혼상제에 대한 형식은 서로 다른 전통적 양식미를 갖추고 있지만, 그 느낌과 축제성 구조는 공통분모 적 구성을 지닌다. 이 극은 한편의 장례구조를 지니는데, 이 장례구조는 세계 어느 민족이나 독자적인, 그러면서도 세계 공통적인 느낌을 창출한다.
넷) 일상의 연극행위에 대한 눈뜸, 연극행위는 무대 위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우리들 삶의 모습 속에서 흥미진진하고 민간정서적인 형식미를 창출하는 연극행위는 다양한 습속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일상 속에 묻힌 연극행위를 무대구조로 형상화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일천한 현대 연극사를 살찌우고, 단절된 전통에 출구를 마련할 수 있는 귀중한 단서가 된다고 믿는다.

(줄거리)
서막/노모와 아들 : 낮잠 자다 염라대왕을 만난 노모는 아들을 불러 저승 갈 준비를 해야겠단다. 아들은 "또 그 소리..." 하면서 노모의 습관적인 죽음의식을 무시하려 한다. 그러나 노모는 극락왕생을 축원하는 굿 한판 (산오구굿)을 벌여달라고 한다. 미신이니 후레자식이니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굿판이 벌어지는데...
1. 죽음을 위한 형식 - 산 자들의 연희
석출 (무당) 이 무녀를 월급주고 데려와 굿판을 벌이는데, 굿판 또한 시대와 함께 발맞추어 변천하는 까닭에 상당히 일상적이면서 흥겹다. 노모 가족과 동네 이웃이 함께 어우러져 신나게 흥을 돋우는 도중 노모는 "나 갈란다." 고승의 유머러스한 화두처럼 한 말 던지고 쓰러진다.
2. 죽음의 형식(1) - 몸 거두기
이 부분은 죽음을 물화시키는 과정으로 계승되고 있는 염습전통과 초상집 꾸미기의 과정을 무대에서 재현시키는 장면이다. 일반적으로 무섭고 꺼림직하다고 생각되는 습속인데, 무대 위에서 계산된 거리를 두고 진행시켜보면 상당히 재미있고 의미 있는 코미디가 된다.
3. 죽음의 형식(2) - 일상연극 행위로서의 초상
곡을 하고 조문을 받고 밤을 새우면서 벌어지는 일반적 초상집 풍경을 무대 위에 재구성 했다. 이 또한 면밀한 관찰과 계산된 거리 두기로 구성하면 삶의 역동성을 창출하는 코미디가 된다.
4. 죽음의 형식(3) - 일상으로 끌어내려진 저승
저승의 막연한 이미지를 일상화법으로 끌어내렸다. 그러니까, 저승사자들이 구체적 모습으로 초상집에 당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산 자들과 인사하고 초상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짠다. 촌지도 받고, 초상집에서 벌어지는 유산 상속의 갈등을 저승사자의 인격체적 판단으로 시시비비까지 가려준다. 이 장면 또한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코미디가 된다.
5. 산자를 위하여 - 싱싱한 난장(亂場)
초상집은 밤이 깊어갈수록 짙은 삶의 냄새, 소리, 빛깔로 두드러진다. 화투판은 개판으로 치닫고, 과수댁과 저승사자가 눈이 맞아 숯불 같은 정사를 벌이고, 손녀딸과 꼬마저승사자가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대한 철학적 문답을 벌인다. 이 각 장면 독립의 풍경을 석출의 창과 사설이 일관성을 지니며 이끌어 간다. 그리하여 새벽닭이 우는 시각 "잘 가세요 잘 가세요.." 대중가요의 흥겨운 후렴과 노모의 주검은 길 떠난다.

이윤택이란 작가 겸 연출가는 죽음 이라는 피치 못할 상황을 두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실들을 이 연극을 통하여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진지함을 강조하는 연극에서는 지나쳐 버리는 세속적인 면, 추한 면, 우스꽝스러운 면들까지 총망라해서 동서양을 망라한 보편적 사람들에게서 동의를 얻어내는 작품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오구」가 주기적으로 리바이벌 되어도 번번히 객석이 차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연극의 기원을 제식행사에 있다고 본다면, 우리 민족의 중요 제식 행위인 굿을 통하여 죽음을 한국적 의미로 풀어낸다는 것은 어쩌면 연극의 소재로써 제일 먼저 다루어야 할 것인지도 모른다. 반대편에 있어야 할 태어남은 작가가 다음에 제시해야 할 주제가 될 수도 있다.
인간의 기본정서는 같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그래도 분명한 동서양의 차이점을 파악해 본다면, 인도, 중동 등 힌두, 모슬렘 문화권과, 중국, 일본, 한국 등 불교, 유교 문화권들이 공통적으로 낙천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코미디 형태의 연극이 주류를 이루는 결과를 가져온다. 산스크리트(Sanskrit) 드라마의 걸작이라는 4~5 세기 인도작품 사쿤타라(Shakuntara)나 소설 형식이지만 우리나라의 춘향전, 중국의 Peking opera 들도 모두 사랑의 승리거나, 정의의 승리와 악인의 패배 등, 해피엔딩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동양의 무대에서는 서양 연극의 영향을 받기 전의 주제는 전부 해피엔딩, 즉 코미디 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반면 서구 연극은 고대부터 내려온 제식적인 면모는 동양과 유사하다 하더라도, 적어도 중세이후, 기독교 사상과 경험주의, 유물론의 영향으로 보이는데, 인간상황을 비극적인 것으로 보는 경향이 코메디와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대표적으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보더라도, 5대 비극이니 하면서 죽음을 모든 것의 끝으로 보는 어두운 것들이 많지 않은가. 서구인들은 생을 일회적인 것으로 보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구」의 강점은 서양적 인식방법으로는 비극으로 생각될 죽음 이라는 주제를 굿판을 통해 걸쭉하게 할 말 안할 말 다 섞어 풀어 내면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통과해야 하는 하나의 제식으로 보여주고, 납득시키는 일을 해 냈다는데 있다. 이렇듯 죽음마저도 받아들여야 할 하나의 통과의례, 나쁠 것도 좋을 것도 없는, 존재의 일부라고 보는 자세는 동양 특유의 윤회관에 기인하는 것으로 본다. 어차피 수레바퀴 돌듯이 다 겪고 또 겪는 과정인데 겁내서 무엇하랴.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나 기왕이면 웃음을 곁들여서 견딜만한 것으로 바꿔 생각하자는 자세가 연극전반에 흐르고 있기 때문에 연극끝에 유행가 가락이 잘 가세요. 잘 가세요. 와 잘 있어요. 잘 있어요. 를 주고 받아도 관객이 거부감이 없이 미소지으며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그 미소는 그저 재미있다는 미소는 아닐 것이다.

서구의 비극 작품들이 무거운 분위기로 이끌어 나가다가 잠깐 기분전환을 위한 Comic Relief 라는 기법을 동원하여 웃음을 끼워 넣는다면, 「오구」는 그 반대로 시종 입담과 과장, 우스운 내용으로 가볍게 전개해 나가다가 잠깐식 심각한 말을 던지는 구조를 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공연예술이 다 해학적인 것은 아니겠지만(예:궁중음악, 궁중예식) 여기서는 주로 서민적인, 그러니까 남사당패거리나 탈춤 등의 대중적 분위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수시로 등장하는 요즈음 유행이나 풍조의 언급(예: 동남아 여행 보내드리기, 전두환이, 피박, 대박 하는 것 등)도 관객이 웃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작은 아들이 부의금을 빼돌리는 것이나 부동산을 미리 팔아먹는 것, 며느리가 억지 울음을 만드는 것, 과수댁의 요상한 짓거리, 저승사자 들의 지극히 세속적인 작태들도 모두 해학적인 분위기를 부추긴다.
그러면서도 장례식의 절차는 착착 진행되고, 시체를 염하는 행위, 상복입는 절차, 곡하는 일 따위가 빠짐없이 보여진다. 당연히 겁나고 우울하기만 할 장면들이나. 이들은 죽은 노모가 이건 실제 상황이 아니다. 라고 한다든지, 무당 석출이 자 이제 의상을 갖췄으니 각각 역할로 들어가자. 라고 하는 등의, 브레히트(Brecht) 식의 소외기법 (alienation)을 자주 사용하여 적당히 완화해 나간다. 초상집의 분위기에서도, 상주와 문상객간의 오가는 대화가 일단은 형식적, 가식적으로 우습게 전개되지만 무당은 이 분위기에 단전에 힘을 넣어 곡을 뽑으라 고 정곡을 찔러주기도 한다. 거창한 명함을 보이는(실은 복덕방쟁이) 문상객과 소주를 마시며 화투판을 벌이는 장면은 죽어도(사실이니까) 고, 쓰리고 라는 현실에 대한 풍자가 멋지게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저승사자들도 잿밥(?) 과 촌지(부의금)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다. 결국 말썽은 부의금을 몰래 챙겨넣은 둘째 아들 때문에 죽은 노모의 통장과 집문서등 재산싸움으로 비약된다. 끝내 노모의 시신이 일어나 재판(?)을 하고 저승사자가 설교조로 통역을 해주는 부분이 해결을 제시한다. 난장판 속에서의 진리라고나 할까.
극의 마무리 역시 지극히 세속적인 화투판을 벌이지만 상주의 말에 의하면 곡하는 것보다 화투가 더 힘들다.는 것처럼 죽음 못지 않게 산다는 것도 힘든 행위라고 작가는 보고 있는 것같다. 게다가 저승사자는 무당이 거들어 주어서 과부 아낙네와 재미까지 본다. 이는 죽음 뒤에 오는 생명탄생의 전조를 주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분히 윤회설을 염두에 둔 작가의 의도라 하겠다. 그래서 인지 끝에 무당이 할머니 찬가(?)를 부른뒤에 손녀딸이 저승사자에게 커피를 대접하며 결국은 모든 것이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임들 밝히는 부분은 관객이 웃을 수 만은 없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숙연한 깨달음도 돈을 딴 맏 상주가 엄마 ~ 나 돈먹었어. 하고, 손녀딸이 잘 가세요~ 노래를 부르는 행위로 해서 장례식을 다룬 연극 전체가 하나의 즐거운 의식처럼 끝을 맺고 만다.

이윤택의<오구-죽음의 형식)(1993.12.8-94.1.9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은 완성도가 높은 굿의 연극으로 발돋움하는 재공연 작품이다. 자유소극장이라는 자유로운 실험공간에서 공간의 다층적인 배치와 섬세한 조명을 구사하며 양식화된 한옥구조를 기본으로 이승과 저승을 설정한 무대장치 자체가 연극적이다. 연극적이라는 표현은 줄거리 전개에 따라 무대가 가변적으로 작용한다는 말이다. 그만큼<오구-죽음의 형식>은 양식화되어 있다.
노모 역인 남미정 한 사람만 제외하고 거의 전원이 교체된 이번 재공연을 보면서 우리는 연극공연이 연기자들의 예술인가, 아니면 연출의 예술인가를 새삼 되묻게 된다. 서툰 연기자들은 서툰 대로 신선한 느낌을 주고, 노련한 연기자들은 서툰 연기 사이의 허점을 메우면서 앙상블을 이루어 나간다. 물론 기본적인 공감은 ‘오구굿’을 통한 전통제례의 형식적 분할에 대한 계산이 맞아떨어졌음에서 비롯된다. 이른바 죽은 망자의 넋을 정화시켜 극락왕생시키는 ‘진오귀굿’과 산 자의 사후복덕을 비는 기복(祈福)신앙인 ‘산씻김굿’을 교묘하게 연계시킨<오구>는 결국 우리의 생사관을 반영시키는 거울이다. 그 거울에 비친 굿의 제차(祭次)를 서막과 1장에서 현실적으로 보여주다가 2장에서는 주검을 물화(物化)시키는, 염 관행에 대한 객관적 서술을 시도하고 3장에서는 사회적 관행을 풍자하며 4장에 이르러 저승사자의 극중극 형식을 도입한다. 커다란 양물(陽物)을 단 저승사자들의 등장과 그들의 언동은 죽음에 대한 우리의 잠재의식을 놀이화한다. 따라서 그것은 일종의 극중극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4장의 저승사자들이 풍기는 섹스 심벌은 굿의 풍요제의적 성격을 강조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장난기가 5장으로까지 연장될 필연성은 없어 보인다. 5장은 산 자들의 활기 있는 배웅으로 끝나는 여정의 출발이 되었으면 오구굿의 연극적 양식화가 더욱 두드러져 보였을 것이다.
굿(제의)의 신성성은 사라진다. 이제 연극의 굿이 새로운 신성성을 확보해야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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