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무명배우의 처절한 인생과 이루지 못한 꿈을 현실감 있게 담아낸 작품이다.
연기파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위해 가족을 등지고 상경한 36세 노총각 성순표씨의 궁상맞은 자취방이 극의 무대. 주인공은 TV 시사 프로그램 등에 출연해 실제 사건을 재연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10년째 이름도 얼굴도 없는 서글픈 신세다. 방송은 충격적인 사건의 주인공들을 직접 촬영한 것처럼 보여주지만, 실은 다 사기이며 배우가 재연하고 모자이크 처리한 뒤 내보낼 뿐이기 때문이다. 진짜 배우로 성공시켜주겠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꼭두각시 노릇을 하던 주인공은 결국 배신감과 절망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순수한 청년의 절망스러운 몸부림은 배우와 관객 모두를 눈물 흘리게 만든다.
작품의 원작은 지난 199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희곡 ‘대역배우’(김나영 작)다. 10년 동안이나 숨을 고른 <대역배우>는 남궁연 씨 연출로 극단 ‘예군’의 연극 ‘성순표氏 일내것네!’로 돌아왔다. 스물여섯이었던 작가는 성순표와 비슷한 나이로 성숙했고 그만큼 <대역배우>도 원숙해졌다. 무모하고 억지스러울 만큼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서른여섯 노총각 성순표. 삼류극장 옥상에 혼자 살며 희망을 품고 사는 그는 TV 재연 배우로 얼굴마저 가려지는 거짓 증언자 역만 한다.성순표와 그의 창고방에 매일 담배를 피우러 오는 스물다섯의 오지선은 서로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온갖 궂은일을 하며 배우의 꿈을 키우는 가난한 대역배우 성순표는 어머니 제삿날 외로워하는 지선을 위로하며 서로 의지가 되어 준다. 지선에게 자신의 직업을 숨기는 성순표. 성순표의 새로운 배역은 자살을 앞 둔 무능한 30대 가장 역이다. 인기를 위해 사건을 조작하고 만들어내는 대역 프로그램 PD 차영수는 이번 역만 잘 하면 드라마 PD에게 소개시켜준다고 말한다. 다혈질인 카메라맨 이종후는 자살 연기를 할 그의 창고방에 카메라를 설치하며 이번 역으로 성순표의 대역 인생도 끝이고 앞으로 차영수에게 버려질 것이라 말한다. 오직 하나만 바라보다 그 하나를 잃어버린 사람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과 같다. 성순표는 바보 같은 자신을 탓하다가 차영수에게 매달려 보기도 하고 현실을 부정하기도 한다. 그는 마음을 추스르고 사랑하는 오지선 앞에서 생애 최고의 연기를 펼친다.

심사평-김우옥 이강백
희곡 심사를 맡은 우리는 예년에 비해 대폭 증가한 응모작품들 수효에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했다. 또한 양뿐 아니라 질에 있어서도 상당히 만족하였다. 강적들끼리 만나게된 형국이어서 심사하는데 어려움이 컸다. 오랜 숙고 끝에 우리는 "블랙홀에는 공룡이 산다"(박정영) "찬란한 유언"(장진영) "대역배우"(김나영)등 세편을 당선권 안으로 압축시켰다. "블랙홀에는 공룡이 산다"는 연극적 상상력이 참신하고 자유분방하다. 공연을 하면 이 작품은 읽을 때보다 더욱 연극적 재미를 만끽하게 해 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흠은, 주제가 명확하지 않다는데 있다. "찬란한 유언"은 장례식에 모인 세명의 인물들이 희화적으로 보여주는 삶의 이중성이다. 살아있을때는 정작 하고싶은 말을 단 한마디도 못했던 사람이 죽은 뒤에 유언으로 솔직한 심정을 밝힌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당혹하여 분노하고, 변명하다가, 유언 자체를 관과 함께 묻어버린다. 타인의 죽음 앞에서 자신의 삶을 은폐시키는 이러한 아이러니를 장진영은 매우 솜씨있게 극화해 놓았다.
"찬란한 유언"이 희극이라면 "대역배우"는 비극이다. 언제나 사소한 대역만을 했던 배우에게 모처럼 굉장히 큰 역할이 맡겨진다. 그것은 자살한 사람을 연기하는 것이다. 그는 이 기회에 대역이 아닌 진짜 자신의 역할을 하고싶다.. 이런 절박한 심정은 현재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두 작품을 공동 당선작으로 뽑을까도 생각하였으나, 아쉽지만 하나만을 택해야했다. 결국 우리는 "대역배우"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이 작품의 시의성이 적절하기도 하고, 구성의 치밀함이 더 돋보였기 때문이다. 한 가지 이 심사에 있어서 덧붙여둘 말이 있다. 당선권 안에 든 작품이 심사위원들과 연관되어 있기에 최종심사를 하기전 미리 신문사에 사의를 표명하였다. 즉, 김나영은 연극원 극작과 출신으로서 그가 당선될 경우 우리 심사가 괜한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문사의 입장은 작품이 탁월함에도 오해받기 싫어서 탈락시키거나 심사를 기피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에 최종심사를 하고 양심에 따라 당선작을 택하였다.

당선소감-김나영
흑백 필름처럼 어렴풋하게 남아있는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이었을까? 아니면 더 이전의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느날 어머니는 우리 세 자매를 대학로라는 낯선 곳으로 데려가셨다. 전철이 다니지 않았던 때였던가, 버스를 두어번 갈아타고 갔던 기억이 난다. "표가 세장 뿐이다, 엄마는 밖에서 기다릴테니 너희들끼리 보고 오너라. " 어머니를 남겨둔 채 언니 손을 잡고 난생 처음으로 들어가본 어두컴컴한 극장 안. 하지만 그날 본 연극에 대한 기억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극장을 나와 어머니와 함께 사 먹었던 풀빵에 대한 기억만이 오래도록 남아있을 뿐이다. 이제 대학로는 더 이상 낯선 곳이 아니다. 나는 그곳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연극을 보았고, 언젠가는 내 작품도 그들 가운데 나란히 서리라는 꿈을 꿔왔다. 이제 그 꿈이 실현될 때가 왔으니 기꺼이 어머니 손을 잡고 함께 극장으로 들어가리라. 미흡한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지도해주신 연극원 여러 선생님들께 가슴 깊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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