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은주 '시청각실'

clint 2018. 3. 31. 18:57

 

중앙일보 [‘98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젊은 여성 작가 답게 사이버 커뮤니케이션시대의 젊은이들의 애증과 인간성 상실을 묘사한 작품이다
물론 포커스는 젊은 남녀의 사랑에 맞추어져있다. 남자로 하여금 인간 각성을 요구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무대도 특이하다. 각종 전자기기로 가득찬 방이며서 산만하면서도 동화적이고 환상적이다
주인공들의 작희는 지극히 문명적이다. 사이버 시대의 새로운 한 전형이 될 작품이라 하겠다

 

 

 

 

 

이은주작 <시청각실>은 읽은 희곡보다는 보는 연극을 염두에 두고 쓰여진 작품이라고 하겠다. 등장인물과 그들의 움직임이나 무대의 배치까지 세심한 배려 속에서 무대장치를 직접하듯이 극화하고 있다. 이 작품은 극중 연인사이인 혜진과 동석의 전화통화, 여자와 남자의 만남과 사랑, 희경과 라디오 DJ의 독백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가 있는데, 처음에서는 등장인물과 극적 상황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동석과 혜진의 전화 내용을 통해서 그들은 만난 지 오백일이나 되는 연인 사이이고, 동석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이고 혜진은 잡지사 기자이며 바빠서 자주 못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이 전화를 끊고 나면, 여자는 혼자 발레연습을 하다가 우연히 지나가는 남자를 만나 포크댄스를 춘다. 희경은 컴퓨터 속의 가상 인물과 사랑을 나누는 상황을 독백하고 있는데 이러한 독백을 통하여 현대인의 사이버 사랑을 해설하고 있다고 보인다. 중간에는 동석과 혜진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보여주고, 이와 대조로 남자와 여자 사이의 인간적인 사랑의 심화와 그 힘을 보여주고 있다. 끝에는 갑자기 정전되면서 사이버 시대의 주된 원동력으로 대표될 수 있는 전기가 나감으로써 모든 것을 할 수 없게 된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막을 내린다. 이 같은 극 구조는 두 연인의 삶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기에 관객 입장에서는 이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선택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공연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 둘의 모습이 무조건 대조되기보다는 동석과 혜진의 전화통화 중간중간에 등장하게 되는 여자와 남자의 모습 속에서 진정으로 진실한 사랑을 찾고 있는 동석과 혜진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결국 이 두 연인은 둘이 아니라 한 연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동석과 혜진의 공간이 무대의 양쪽 끝으로 떨어짐으로써 갖게 되는 물리적인 거리감과 단절감이, 무대 전체를 활용하고 있는 여자와 남자의 공간이 놀이터로 연결되면서 감싸 안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심사평

올해도 1백편이 넘는 응모작들이 몰려 희곡분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함을 입증했다. 그러나 대부분 희곡과 연극의 기초를 모르는 체 컴퓨터 채팅식 대사의 나열에 그친 작품들이거나 어디서 본듯한 상투적인 모작들이어서 질적으로는 제자리 걸음이다. 그중 대여섯편의 후보작들을 어렵게 고르면서 전반적으로 긴장감의 조성, 복합성의 구축, 변화와 움직임의 창출등 극 구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경찰서를 배경으로 진실의 문제를 다룬 '양심에 관한 보고서' (강정임) 는 비교적 전통적인 극적 전개에도 불구하고 짧은 단막극의 압축된 시간성을 살리지 못한 점이 아쉬웠고 한 시인의 삶과 죽음을 다룬 '무엇이든 살아있으라' (권은중) 는 세련된 어휘구사가 호감을 주었으나 역시 지나친 서사적 전개 때문에 연극성의 본질에서 멀어졌다. 집단논리에 대항하는 개인을 그린 '나비꿈' (조태현) 은 신춘문예 응모희곡이 흔히 그렇듯 지나치게 경직된 관념성이 껄끄러웠다. 마지막으로 '쑥부쟁이' 와 '시청각실' 두 작품이 심사대상으로 남았다. 자신의 죽을 자리를 찾아다니는 두 걸인을 그린 '쑥부쟁이' 는 신인답지 않은 능란한 대사구사력이 놀라움을 주었으나 상황설정에 개연성이 부족하고 전체적 감각이 낙후되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지적되었다. 이 작가는 계속 정진할 것을 꼭 부탁한다. 현대적 커뮤니케이션의 범람 속에서 순수한 사랑의 의미를 되새겨 보려는 '시청각실' 은 주제가 다소 피상적이며 극전개면에도 산만한 흔적이 가시지 않은 작품이다. 그러나 다중적 공간 설정과 장면의 대비등 연극적 형상화를 염두에 둔 점과 감성이 때묻지 않았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보아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밀기로 했다. <심사위원 : 오태석.김방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