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범한 월급장이었던 조갑출은 퇴근 후에 텔레비젼 시청을 유일한 낙으로 삼고 사는 중년남자다. 그는 어느날 방송국의 저녁 9시 뉴스에 불쑥 얼굴을 내밀고 자신의 귀에 도청장치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가족들은 그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담당의사는 대화를 통해 조갑출을 치료한다.
의사는 조갑출과 대화를 통해 그의 지나온 삶을 말하게 한다. 갑출은 의사에게 자신이 다니던 회사의 노사분규 와중에 회사측의 교묘한 농간에 의해 실직되었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는 월남전 참전 경력이 있는 자신의 친구 규태가 광주항쟁때 시민군으로 나갔다가 사망한 이야기를 한다. 그는 자기 자신과 친구인 규태, 그리고 꿈과 현실 사이를 오가며 점점 심한 정신병 증세를 보인다. 의사는 조갑출이 횡설수설하며 노사분규니 광주항쟁이니 하는 말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조갑출이 근무했던 회사의 상사와 기관원에게 조갑출의 병 치유가 어려운 정신적 고착현상이라고 말해 준다. 조갑출은 퇴원후에도 정신병 증세에서 쾌유되지 못하고 길가던 행인을 자신의 친구인 규태로 착각하여 칼로 찔러 죽인다.

시민으로서 조갑출이란 어떤 인물일까. 표창감인 시민인가, 아니면 역겨운 프티 부르주아적인 소시민일까, 그 조갑출이라는 사나이는 그렇게 ‘시민’답사를 위해 문예회관소극장(1990.9.8~20일)을 찾아들었을 때 우리는 씁쓸한 자화상 앞에 연극 구경을 중간에서 그만두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곤란한 자아와 만나게 된다. 그렇다. ‘시민 조갑출’이는 겁 많고 비겁한 소시민 김아무개, 박아무개, 이아무개의 프로필인 것이다.
<시민 조갑출>을 보면 연상되고 비교되는 것이 바로 시민을 내세운 이윤택의<시민 K>(89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공연)이다. 그런데 그 시민은 카프카의 미스터리적 상황에 맞는 자화상 K를 연상시키면서 의식도 깨어있고 용감한 정의의 사나이였다. 폭력에도 좌절하지 않고 비록 타의에 의해 언론사에서 쫓겨나도 타협하지 않는 그는 표창받을 수 있는 그런 ‘의식’의 시민이었다.
이에 비해 극단 맥토의 박구홍 작, 엄기백 연출의<시민 조갑출>은 표창받을 수 없는 겁쟁이 소시민의 전형이다. 그는 꽉 짜여진 조직의 폭력 앞에서 무능을 능욕당하며 마침내 정신질환으로 파멸하게 되는 가련한, 그러나 선량한 시민인 것이다. 그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모범적인 가장이며, ‘새 집을 마련하여 술상을 봐주는 아내와 더불어 편안하게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꿈의 전부이다. 좀더 나은 집, 술도 소주에서 맥주로 그리고 양주로, 직위도 만년 평사원에서 과장이 되었다가 잘돼서 부장자리에라도 오르면 만족하며 죽을 수 있는 평범한 시민의 한 사람이다.
그런 시민 조갑출이 운명의 장난으로 간첩혐의를 받는다. 이 거대한 현대사회의 조직기구 속에서는 한 번 혐의를 받으면 그는 영원한 수의(囚衣)를 벗어던질 수가 없다. 그것이 조직사회의 폭력이다. 자의와는 상관없이 타의라는 폭력에 의해 혐의는 뭇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오염시키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피의자는 의심의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거기에 정치폭력이 얽혀 들면 사태는 더욱 악화된다. 단순한 혐의가 간첩을 만들고 혐의를 받았다는 사실만 해도 억울한데 혐의의 딱지는 그를 조직 속에서 지배세력의 프락치가 되지 않을 수 없게 하며 선량한 시민일수록 양심의 갈등이 그의 정신을 좀먹게 되는 것이다. 조갑출은 간첩혐의에서 벗어나지만 주변에서 미심쩍은 인물로 낙인 찍히고 그런 혐의에서 벗어나려는 작은 꿈틀거림이 낙서로 나타났다가 그것이 꼬투리가 되어 노조의 프락치로 들여보내진다. 그는 제대로 프락치 노릇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배신자 덕으로 노조를 팔아먹지 않았는데도 승진이 되고 승진 혐의로 그는 배신자로 낙인 찍힌다.
그는 적극적으로 상황에 대처하지 못했다. 그것이 그의 죄과였다. 표창감의 시민이 되려면 적극적으로 상황과 대결해야 한다. 그러나 일반시민들은 소극적으로 혹은 현실을 회피함으로써 상황과 타협하고 그 죄과로 비겁한 소시민으로 타락해 가는 것이다. 그의 갈등은 광주항쟁이라는 비극의 와중에서 죽은 친구를 적극적으로 돌보지 않은 양심의 소리와 오버랩된다. 그는 돌진하는 친구의 뒤를 따르지 못하고 숨어서 목숨을 부지했지만 죽은 친구의 비명이 그의 정신을 좀 먹는다. 그것이 현실 외면이라는 그의 죄에 대한 대가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피해망상증 환자가 된다. 그것은 선천성의 질환일 수도 있고 선량한 시민의 비겁한 행동에서 생긴 양심의 가책이라는 후천성 질환일 수도 있다.
정신질환은 점점 심해져 귓속에 도청장치가 설치되어 있다는 식의 강박관념으로 치닫게 되고 그 강박관념은 죄없는 이웃을 자신을 못살게 구는 죽은 친구로 착각해 살해하게 된다. 소극적으로 비겁하게 회피해 왔던 현실의 상황이 그를 파국으로 몰아간 것이다.
결국 <시민 조갑출>은 소시민의 자기 탐닉이 그를 덮어 씌우는 올가미였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연극인 것이다.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고 싶어서 상황을 회피한다 해도 현대의 거대한 조직기구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그럴 바에는 표창감인 용감한 ‘의식’의 시민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시민 조갑출>의 연극적 재미는 그런 역설을 보여주는 쪽으로 돌려져야 했는데 그것을 정신과 의사의 정신 진료 프로세스로 보여주고, 이인철이 분장한 조갑출이라는 한 인물의 코믹한 행적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작품 자체가 진짜 소시민의 비극으로 끝나게 되었다는데 아쉬움을 남긴다. 무대배경의 깔끔함, 적절한 조명의 명암처리와 서사적인 장면처리 등은 빠른 템포로 한 소시민의 행적을 명쾌하게 우리 앞에 제시해 준다. 그런 점에서 엄기백 연출은 최근 들어 흔해 빠진 사회의식이라는 너울을 비교적 소담하게 연극 형식에다 담아내는데 성공했으며, 그 뼈대가 된 희곡도 웰 메이드 플레이로서는 일종의 시사극적인 재미를 만들어내는 데 이바지한다. 그러나 시사극은 그 시사성이라는 한계에 머물고 만다.
프티 부르주아 계급의 현실 외면과 도피가 그의 비극과 직결된다는 사실이 제시되고 폭로됨으로써 역설적으로 소시민들을 의식 있는 시민으로 깨우는 촉진제로서의 연극이 되고 희곡문학이 되었더라면 하는 과욕은 글자 그대로 과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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