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의경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clint 2018. 3. 30. 21:08

 

 

60년 전의 관동대지진과 한국인 학살을 다룬<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는 무대자체만 보면 친일적이다. 그 무대는 반일적인 것도 아니고 친일적일 수도 없는 한일 국교정상화 20주년 기념과 관동대지진 60년을 기념하면서 역사에 묻힌 기억의 먼지를 턴다. 우리는 반일적이 아니면 대체로 친일적이라는 흑백논리에 익숙해 있다. 따라서 ‘관동대진재’에 희생된 6천여 명의 조선인 대학살 사건을 다루면서 중립 감정으로 처리하는 극적 진행 자체도 반일 감정으로 봐서는 친일적으로 보인다. 이데올로기적으로 보면 용서할 수 없는 일본 제국주의의 와중에 보여준 일본인의 휴머니티조차 용납될 수가 없다. 그런 감정론과 주관주의도 해방 40년, 한·일 국교정상화 20년 그리고 ‘관동대진재’ 60년쯤 되면 청산할 정도로 우리 의식이 성숙한 것일까. 그것은 성숙의 문제가 아니라 문제 파악에 대한 태도를 달리한다는 것이고, 분노와 용서의 감정을 달리 처리한다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 김의경(金義卿)의<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는 ‘잃어버린 세대’의 방황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작가의 역사의식을 표출한다 할 것이다.
이 작품에 무슨 역사의식이 있느냐 하는 힐난도 있다. 그것이 역사의식이 아니라면 학살의 현장에 있었던 조선인 사냥이라는 집단망상의 역사적 전개라고 해도 좋은 것은 그런 역사적 음모가 세계 도처에 있었고 또 있을 수 있는 맥카시 선풍의 변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역사가 꾸며진다면 그런 역사의 허위의식을 벗겨가는 작업이 바로 문학적 역사 의식이라 할 만하다. 관동대진재라는 표현은 일본식 명명이고, 우리는 그냥 ‘관동대지진’이라는 것이 부르기 쉽다. 지금부터 60년 전이므로 그 참화 가운데서 살아 남아 증언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을 그 미증유의 대참사가 자연 발생적인 것이면서 문명적인 의미를 갖는 것은 그것이 학살이라는 조선인 사냥을 곁들였기 때문이다. 참화와 불행과 비극을 겪으며 교활한 인간문명이 만들어낸 정치공학은 민심수습이라는 미명 아래 제2, 제3의 참화와 불행과 비극을 조장하고 유도하고 연출시켜 절망감과 공포심을 증오와 살육본능으로 돌려 눈앞의 상황을 호도하는 것이다. 그런 인류의 죄는 중세부터 마녀사냥으로 나타나 있고 유대인 사냥 등으로 현대적 집단망상에 이르기까지 전쟁과 파괴의 광기가 되어 있다.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는 한국과 일본으로 봐서는 피의 부채를 들먹이는 셈이 되고 우리들 자신으로 봐서는 정치공학이 만들어낼 수도 있는 집단망상의 엄청난 결과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관동대지진이라는 참회를 극복하기 위해서 표적을 마녀사냥처럼 조선인에게 두었던 당시 일제의 내무대신 미즈노와 경시총감 아카이케는 치안질서 확보와 그들에게 돌아올 비판의 화살을 ‘부정조선인’이라는 스케이프 고트에게 돌릴 만큼 정치술수를 작동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큰 규모의 구상 속에 사적(私的)인 차원에서 선한 일본인 타나카노인이 나오고 그의 아들 도시유키가 한국여인 김순기와 그녀의 아버지, 오빠와 함께 잃어버린 역사 속에서 재생한다. 어쩌면 그런 비극을 잉태한 무대치고는 오히려 연출이 축제적이다. 무대공간과 시간은 과거와 현재로 바뀌는데, 이 일본의 혈채(血債)는 도시유키의 증손녀 히데코에게로 이어지고 역사를 캐는 한국의 추궁은 김태수라는 취재기자로 옮겨져 냉엄한 역사의식으로 꽃피기보다 취재형식의 약간은 허황된, 약간은 고양된 상태에서 사실을 밝힌다. 비극적 결말은 결국 조선인은 버림받고 학살되고 정신병원 신세가 되는 것으로 끝난다.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그 사적인 조형들은 인간이 아니라 도형에 지나지 못하므로 큰 중심배우를 내세우거나 만들어 낼 수가 없다.

 

 

 

 

막이 오르면 가즈요시가 한국 지사 근무 발령을 받고 떠나는 손자 히데유끼에게 다나까 집안의 정통 무사 가문의 내력과 가보를 알려준다. 나리따 공항에서 히데유끼는 동생 히데꼬에게 일본인의 자존심을 고취시키며 한국으로 떠나가고 관동대진재의 조선인 학살 사건 취재차 일본에 온 신문기자 김태수는 히데꼬와 만나게 된다. 김태수는 진재 때 오오지마쵸오를 대표해서 재판을 받았던 도시유끼를 취재하던 중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조선인 노무자 김동기란 노인을 알게되고 그에게서 도시유끼의 아버지며 양심적인 일본인이었던 다나까의 일기가 있다는 사실과 그의 일기가 도시유끼의 증손녀에 의해 출판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잡지사 기자인 그의 증손녀는 바로 공항에서 만났던 다나까 히데꼬였다. 김태수는 히데꼬로부터 도시유끼의 젊은 시절의 얘기를 통해 도시유끼의 집안과 동기의 아버지 김진도 집안의 얽힌 얘기를 풀어 나간다.

과거로 돌아가서 다나까가 공장장으로 있는 공장에서 해고된 일본인 산노스께가 김진도 일행에게 행패를 부린다. 힘이 센 김진도에게 되려 당한 산노스께는 복수를 다짐하며 도시유끼에게 끌려 나간다. 다나까는 조선인을 동정하나 아들 도시유끼는 마지못해 아버지를 따른다. 검도 연습을 하는 도시유끼 앞에 진도의 딸이자 동기의 누이인 순기가 나타난다. 도시유끼는 순기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이 광경을 목격한 동기는 조선인과 일본인은 합칠 수 없으며 순기에게 조선 여자임을 명심하라고 경고한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히데꼬와 김태수가 다도를 나눈다. 히데꼬는 도시유끼를 화산에 다나까는 굳은 용암에 비유하며 일본의 정신은 도시유끼형(形)의 유산이라고 역설한다. 과거로 돌아가면 다나까와 도시유끼가 대작을 한다. 칼과 피에 대한 향수가 젊은 도시유끼를 충동에 떨게하고 다나까는 일본인의 외곬수 집착 증세라고 치부하며 순기에 대한 감정도 단순한 소유욕이라며 도시유끼를 타이른다. 장면은 연못으로 바뀌며 가즈요시가 신나게 연못에서 붕어를 건져낸다. 연못에서 나오라고 소리지르는 도시유끼의 어머니 요오꼬, 이때 지축을 흔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드디어지진이 휩쓸고 지나간다.

 

 

 


폐허된 거리는 피난민들 로 가득 메워진다. 김태수는 김동기노인의 증언을 듣고 한국인 학살은 당시의 내무대신 미즈노 렌따로와 아까이께 경시총감의 술책이었다는 심증을 갖는다. 그들은 조선인을 모함하는 유언비어를 날조한다. 이에 일본인은 군, 경 외에도 민간인들로 구성된 자경단까지 조직하여 조선인 학살을 시작한다. 그리하여 그들의 관심은 지진에서 조선인 학살로 옮겨지고 일본은 경찰력의 확립과 일본인의 새로운 단결을 이룩한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진도일행은 피신할 방법을 강구한다. 진도일행은 다나까에게 순기를 맡기고 떠날 것을 부탁한다. 다나까는 이 기회에 서로 사돈이 될 것을 제안하나 요오꼬의 반대에 부딪친다. 불타는 동경시내를 바라보며 도시유끼와 순기는 불안한 사랑을 불태운다. 도시유끼는 순기에게 가족을 잊고 자기의 아내로서 일본인으로 행세할 것을 종용하고 순기는 도시유끼의 사랑보다 가족이 선행하는 것이라고 이를 거부하며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이때 나타난 다나까와 요오꼬 다나까는 떠나려는 순기를 만류하나 순기는 아버지를 부르며 뛰쳐나간다. 그러나 요오꼬는 절망하는 아들 도시유끼를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쉰다. 학살의 동기는 알았지만 그 상황을 파헤치고 싶은 태수와 계속 사실을 부인하려는 히데꼬와의 갈등이 잔잔하게 배어 나온다. 화마에 싸인 오오지마죠오에 집착하는 태수와 착검한 군인들과 죽창을 든 자경단원의 모습이 교차된다. 학살, 학살! 광란한 무리들은 조선인을 무조건 살해하며 심지어 조선인과 비슷하게 생긴 일본인까지 무차별로 학살한다. 그 와중에서 진도와 먹쇠는 부상을 당한채 자경단에 잡히고 동기와 헤어진다. 감방, 잡혀온 순기가 군인들 에 의해 윤간을 당하고 정신착란 상태에 빠진다. 순기가 갇혀있는 감방에 진도와 먹쇠가 들어온다. 숨막히는 해후, 이때 경찰서장의 석방명령이 내린다. 그러나 증오에 불붙은 산노스께가 이끄는 자경단원들이 밀어닥치고 경찰을 몰아내고 진도와 먹쇠를 끌고 나간다. 처참하게 죽음을 당하는 진도와 먹쇠 그 소리를 들으며 순기는 서서히 미쳐가고 순기의 피맺힌 웃음소리가 온 감방을 뒤흔든다.

 

살육의 시간은 썰물처럼 빠져 나가고 홀로 살아 돌아온 동기가 비척거리며 걸어들어온다. 집에 남아 있을 줄 알았던 순기마저 부재한 것을 알자 동기는 도시유끼를 원망하며 오열을 참는다. 참회의 뜻으로 매일 시체를 치우던 다나까는 조선인의 혼백을 달래기 위한 비목을 만들어 도시유끼에게 오오지아쵸오의 조선인 매장지에 꽂아 달라는 부탁을 남기며 바랑을 메고 속죄의 길을 떠나간다. 장면이 바뀌면 취재의 마무리를 짓는 태수. 잊혀진 참혹한 역사에 대한 마지막 원고를 읽어내려간다. 이때 히데꼬로부터 걸려오는 전화, 도시유끼의 임종을 알린다. 순기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 요꼬하마의 국립 정신 병원에 있다는 사실을 남긴다.

공항, 떠나는 태수, 배웅나온 히데꼬는 태수에게 묻는다. 태수 원고의 마지막 부분인 "우린 이제 일본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다음에 하고 싶은 얘기가 무엇이었냐고. 태수는 망설이고 난 뒤 "우린 시작이오"라고 대답한다. 비행기의 이륙 소리, 무대 중앙에 '조선인 순사자 정령 보제탑'이란 팻말이 천천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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