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극장 공간사랑에서 연장공연되었던 극단 완자무늬의 <하나님, 비상예요>(박재서 작, 강영걸 연출)은 비교적 관객의 많은 호응을 얻은 공연이었다. 우의적인 표현을 빌면 구구하고 감칠맛이 있는 공연이었다. 공연하는 배우들과 구경하는 관객이 서로가 호흡이 잘 맞는 분위기를 이루었다. 웃고 즐기는 관객의 반응이 마당극에서처럼 공연자체의 극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본 공연에는 어떤 새롭고 의미 깊은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그저 일상에서 특히 TV에서 보고들은 우리 생활의 주변문제들을 주제화했다. 훌륭한 작품이라고 반드시 새롭고 의미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술작품의 질적 평가는 내용이나 대상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이를 구현한 방법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문제는 관객으로 하여금 어떤 대상을 얼마나 새롭고 깊이 체험하고 경험케 하는가에 있다.
본 공연 <하나님, 비상예요>도 내용면에서는 별로 새로운 것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서장의 <별 볼일 없는 사람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의자에 앉아 그날의 신문을 들고 신문에 나온 내외의 특이하거나 문제된 기사들을 읽으며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예컨대 중공의 고위 당직자가 자식을 많이 두어 산아제한 정책을 역행했다고 당직에서 쫓겨났다든가, 교회를 매각하는데 신도의 수와 하루 현금의 총액을 언급한 기사, 혹은 학원 안정법의 기사 등 이들 내 용은 관객의 현실과 직접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이미 그 자체 관객의 관심을 끌 수가 있다. 본 공연 작품의 줄거리라 할 수 있는<목사의 구타사건>이 등장 인물이 펴든 신문기사로서, TV를 통한 뉴스로서 픽션화되어 중계된다.
교회 헌금관계로 목사와 싸우다 목사로부터 맞아서 수족이 뒤틀어진 남자를 부인이 기도원으로 데려가 기도로 치료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물론, 이 사건을 계기로 사회의 비리를 직접 간접으로 다양하게 풍자한다. 제1장 마지막의 노래는 본 공연의 주된 사건을 주해하고 있다. “그냥 모여 기도하고 예배보면 그만이지, 교회건축한답시고 집집이 평지풍파···하고 많은 일 중에 목사님이 하실 일 그것밖에 없나요? 교회짓는 일 고작 버스 사는 일 고작 묘지 사는 일인가요? 멀쩡한 교회헐고 더 크게 짓고 그것밖에 없나요?”
이러한 사건이, 이 같은 사회 현실의 비판이 재미 있는 놀이와 볼거리의 형식으로 제시되었다는데 바로 본 공연의 성과가 있었다. 특히 무대와 객석을 하나의 공간으로 하는 마당극의 형식과 요인을 유효적절하게 활용하면서 신문, TV 등의 현대적 매체를 무대의 소도구를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창(唱)이나 허수아비놀이 등 민속적 전통물을 공연형식 및 분위기에 잘 어울리도록 적용했다. 특히 창의 경우 그것은 인상적이었다. 부부의 애절한 작별에서 사랑을 통해 서로가 자신을 초월하는 상황을 그토록 감명 깊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창의 독특한 가락이 아니고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해준다. 뒤틀렸던 손발이 풀어지는 기적이 조금도 기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창의 효과는 이 작별의 장면을 관객으로 하여금 세속을 초월한 숭고한 절정의 순간으로 체험케 할 수 있었다.

연출 노우트에서 연출은 우리의 고유 문화전통을 강조하고 있다. 그간 실용과 실리를 앞세운 서양문물에 눌려 압사, 빈사 상태를 만났던 소위 우리 문화란 것이 이제는 만족치 못한 상태이긴 하지만 그런대로 인식의 대상에 끼게 되었다. 본 공연에서 신나는 놀이의 분위기를 이룬 효과는 바로 우리 문화전통인 마당극의 기반이라 본다. 서장에서 신문물을 펴들고 임의의 기사를 읽으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즉흥극적’인 요인, 사이 사이에 관객과 함께 노래하며 관객을 극의 분위기에 끌어들여, 관객을 극에 적극 참여케 하는 형식(공연 중 양산 등 필요한 소도구를 관객에게서 구하기도 한다).꼭둑각시 놀이에서 꼭둑각시들 속에 함께 놀이하는 인간꼭둑각시, 진짜 남편 목사를 가려 내기 위해 꼭 같게 설정한 두 남자의 남근을 조사하고 자신의 멘스일자를 묻는 부인과 여인-이 같은 형식 및 착상은 우리 민속극의 원색적인 특성을 드러내 준다.
신문과 TV의 극적 활용도 못지 않게 훌륭한 착상이다. 다수의 등장인물이 무대에 한 줄로 앉아 각기 신문을 펴든 장면은 그 자체가 이미 관객의 눈길을 끌 수 있는 극적 효과를 충분히 가질 수 있다. 신문에 담긴 최신의 뉴스는 관객과 무대를 더욱 더 긴밀히 연결하는 기능을 한다. TV를 이용한 무대장면의 동시 중계는 ‘무대의 복제화’라는 측면에서 볼거리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중계화면의 초점을 무대의 인터뷰 장면에 맞지 않게 엉뚱한 시각에서 맞춤으로써 코미디적 효과는 물론 동시에 도식화된 인터뷰 중계형식 자체를 풍자하는 효과도 가질 수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극적, 마당극적 착상 이외에도 대치의 구성이나 시위적 구성(사탄을 쫓고 난 뒤 어둠 속에 비친 많은 십자가 등)이 본 공연의 극적 효과를 높을 수 있었다.
이 같은 모든 구성을 현실화하여 극적 효과를 낳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연기자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모두 자신감에 넘쳤으며 숙달된 여유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공간사랑의 극장구조도 본 공연의 분위기를 돋구는데 적지 않게 기여했다고 본다. 본 공연에서 아쉬웠던 점은 마당극적 느슨한 형식이 부분적으로 ‘무질서하게’ 작용했다는 인상이다. 예술은 어떤 형태이든 질서에 기반한다. 필요한 무질서도 질서의 한계를 넘어서는 안되겠다. 대사 하나하나에, 동작 하나하나에 보다 더 세심한 신경을 써주었으면 한다. 불필요한 동작은 가능한 피하고 대사가 관객에게 납득되도록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허수아비놀이>는 이 같은 결함의 예가 될 수 있다.
박 재서의 원작 '어떤 목사님'을 각색하여 '하느님, 비상이예요' 란 제목으로 85년 초연.
신문을 읽는 사람들이 등장하여 달동네 풍경과 기도원 풍경, 허수아비 놀이, 어떤 진실을 풍경으로 나타내려한다. 사마리아 사람이란 주제가를 부르며 막은 내려진다. 어느 변두리 동네에 한 목사가 찾아와 교회를 개척하게 되자 집집마다 난장판이 벌어진다. 무리한 교회 건축과 기도원, 교회묘지, 버스 구입 등 연속되는 교회의 외형적인 물량주의를 고발한다. 그리고 종교 본질과 거리를 둔 현실 교회의 역기능들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킨다. 이 작품은 대형화를 추구하는 일부 한국교회의 상업주의의 한 현상을 자기성찰과 다른 한편으로 갱신의 치료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사이코 드라마'의 형태로 조명해 준다.
1장
중풍에 걸린 남자가 아내와 목사를 비난하는 말을 계속 지껄이고 있다. 이 남자는 자기 아내가 목사와 놀아났다고 해서 목사를 때렸다가 그날 중풍에 걸린 사람이다. 그때 최목사 부부가 이 고장의 산을 사러 방문한다. 최목사는 오직 기도에 의해 자기 소원이 이루어졌다면서 원하는 일이 있으면 기도할 것을 권한다. 여집사는 교회의 부패에 대해 한탄하고 도망간 목사를 원망한다.
2장
산속 기도원에서 중풍 걸린 남자를 일으켜 세우려는 기도가 벌어지고 있다. 중풍 걸린 남자와 그의 아내는 서로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면서 서로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빈다. 그러다가 중풍 걸린 남자는 일어선다. 이것이 마치 기도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듯 사람들은 교회에 더 많은 헌금을 갖다 바친다. 사람들이 자신의 소원을 간청하자 목사는 오직 기도할 것만을 말한다. 그러면서 목사는 교회에서 사놓은 산에 기도원을 건립할 수 있게 해 달라면서 기도를 한다.
3장
허수아비 1이 우는 연습을 한다. 그러고서 그는 세상에 나가 정통, 보수 목사를 혼내주라는 명령을 받는다.
4장
목사 부인앞에 두 명의 목사가 있다. 부인은 진짜, 가짜를 가릴 수 없어 진짜든 가짜든 둘이 결정해서 한 명만 나서면 섬기겠다고 하고 사라진다. 그때 허수아비가 분한 목사가 자신은 하나님의 명을 받고온 가짜 목사라고 밝힌다. 여집사와 목사 부인이 같이 와서 다시 진짜 가려내기를 한다. 여러가지 질문을 하지만 둘의 대답은 똑같다. 마지막으로 설교로 가려낼 것을 결정한다. 허수아비가 분한 목사는 눈물을 흘리며 설교한다. 우는 자가 가짜라고 하면서 사람들은 허수아비를 불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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