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문화일보 하계 문예 희곡 부문 당선작.
인간 실존의 고민을 담아내는 작품 ‘중독자들’은 선욱현의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다소 길고 추상적인 대사들이 최근의 속도감 있는 전개와는 궤를 달리하지만, 선욱현의 기본적인 정서와 문학의 시원을 더듬어보는데 좋은 자료가 되는 작품이다.
2인극 "중독자들"은 마치 중독된 자의 일상처럼이나 지루하다. 그러나 석과 소녀의 대화는 어린왕자와 여우만큼이나 인상 깊다. 석은 쓰레기통 앞의 부랑자다. 쓰레기통의 쓰레기를 하나씩 꺼내며 그 쓰레기들 하나하나를 맛보고 이야기하며 의미 없는 철학적 수사를 갖다 붙인다. 석은 마치 미친놈처럼 아니 미친놈이므로, 부질없는 철학적 분석과 독백, 자신이 되뇐 단어들을 분석한다. 소녀는 집을 나와서 술집 삐끼로 전전한다. 석을 술집으로 유인하려다가, 석이 돈이 없음을 알고 포기하지만, 갈 곳이 없는 소녀는 석과 공원 쓰레기통 옆에서 시간을 보낸다. 소녀는 비를 기다린다. 소녀는 비에 감정적 위로를 투사한다. 소녀는 노란 우산 속에 자신을 숨기면서, 트라우마 속에 빠진 자신을 누군가가가 위로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석은 그렇게 비뚤어진 소녀를 위로한다. "우린 모두 모르페우스의 후손이야"
"이 담배연기를 봐. 연기들은 참 불쌍해 연기들은 너무 금방 사라지잖아. 옛날이야기가 있어. 그리스에 있던 연기들은 어느 날 자신들이 너무 금방 사라지는 게 엄청 억울했어. 담배연기 말고 그 신들에게 바치는 향 연기! 말이야. 신들이 원망스러웠어,
왜 이렇게 자신을 창조했는지 말이야. 그래서 연기들은 너무나 억울해서 숲속으로 도망을 쳤어. 숲속에서 그들은 온 세상이 연기로 가득 차도록 반란을 일으켰어. 그러자 화가 난 신들은 이 연기들을 모두 다 사람으로 만들어버렸지. 그 사람들은 평생 무언가 그리워하고 무언가 갈망하면서 사는 사람들인 거야. 모르페우스는 깜짝 놀랐어. 왜냐하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자신에게 몰려오니까. 그래서 모르페우스는 그 사람들에게 처방을 내렸어. 그래서 치료를 받은 사람들은 다시 연기로 피어올랐어. 그런데, 어딜 가나 그렇듯 그걸 거부한 사람들이 있었지. 그들은 영원히. 피어오르지 못했어. 피어오르지도 못하고 재가 된 거지." 그러나 석은 그런 소녀를 위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을 도피하며 피해자를 자처하는 소녀를 일깨운다. "너는 쓰레기통을 뒤지는 법을 알아야 돼! 봐!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라고!" 석의 윽박에 소녀는 우산을 버리고 뛰쳐 떠나고 그날은 소녀가 그렇게 기다리던 비가 내린다. 그리고 얼마 후 소녀는 집에 들어가고, 석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러왔다고 말한다. 석은 소녀에게 버리고 간 우산을 건네지만, 소녀는 버린 건데 뭘 다시 줍느냐 한다. 소녀는 떠나며 석에게 이제 그만 그 옷을 빨아 입으라고 말한다. 소녀가 떠나고 석은 '모든 버려진 것들은 아름답지..'라고 말한다.
석과 소녀의 대화는 우리의 삶이다. 중독된 자들의 상실된 마음은 그들의 외관과, 다양한 상징물들을 통해 드러난다. 모르핀을 많이 써 위로를 주는 병원도, 집처럼 똥이 마려운 공간이었지만, 소녀에게는 결국 진실 된 위안을 주지 못한다. 소녀는 비를 기다리지만, 소녀가 우산을 쓰고 있으면 비를 맞을 수 없다. 진실 된 위안을 받지 못한다. 소녀가 우산을 버리고 비를 맞으며 떠났을 때, 진정한 위로는 시작되었다. 소녀가 가지고 있던 우산은 결국 버려지지만, 그것은 성장과 치유의 흔적이다. 석이 뒤지던 쓰레기통과 석은 결국 쓰레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 쓰레기통에는 우산쓰레기가 하나 더 추가되었지만, 소녀가 버린 우산처럼, 가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삶의 흔적이자, 성장이 징표이며, 그것은 삶의 모습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석 또한 쓰레기가 아니다. 소녀의 말처럼 옷만 빨아 입으면 되는 말끔한 아저씨다. 우리 삶의 모습도 그렇다. 극은 사람을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말끔해 진다. 석처럼. 소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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